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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합천군 황강변에 조성된 '새천년생명의숲'. 합천군은 '새천명생명의숲'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명칭 변경을 놓고 최근 여론조사 실시했다. 마을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공원명칭 변경에 51.1%가 찬성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설마했다. 지난해 경남 합천군이 2004년에 조성한 '새천년생명의 숲' 공원 명칭 변경을 위해 '일해'라는 이름을 포함한 4개 명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들'도 상식을 가진 인간들인데 설마"하면서 애써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07년 새해 벽두에 발표된 설문조사결과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마을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일해공원'이 51.1%로 과반을 넘는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를 근거로 합천군은 공원이름을 광주 학살자 전두환의 아호인 '일해'로 기어이 변경하겠다고 확인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심의조 합천군수 왈 "군민들이 공원 이름 하나 짓는데 옆에서 밤놔라, 대추놔라 할 수는 없는 것"이란다.

"공원 이름 하나"? "밤"? "대추"? 좋다! 당신들이 역사에 도발했으므로 이제 응전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합천군이든 합천군민이든 나아가 본적이나 국적이 어디든 광주 학살자 전두환을 자랑스럽게 기리기 위해 '일해공원'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틀림없이 파시즘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이란 인간성에 대한 진보를 부정하고, 민족(지역)적 지배를 위해 학살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본에 의한 폭력적 지배를 자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에 물드는 것이다. 그들 파시즘에 물든 사람들은 예컨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이웃일 수도 있다.

지난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전두환을 합천 고향마을에서 안양 교도소로 구속 수감했다. <월간 말>(1996년 1월)은 그 당시 대구지역 <영남일보>가 해설기사를 통해 "법대로 처리돼야 한다는 여론"을 보도했다가 "주위에서 전부 전통이 잘했다카는데 니들만 왜 거꾸로 쓰노"라며 항의하는 '진짜 밑바닥 정서' 때문에 곤욕을 치른 사연을 싣고 있다.

다음은 이 르포기사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대구 민초들의 의중이다.

"그래도 사람들 말이 전 전 대통령 때는 서민들 살기는 편했다 안캅니까."
"전두환 씨가 잘못한 것이야 우리도 알지예,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절차가 있고 방법이 있는 것 아입니꺼. 이 나라엔 법도 없어요?"
"그럼요, 하다못해 아침밥이나 먹여서 델꼬 갔어야제."
"김대중이 죽일라꼬 전두환ㆍ노태우 씨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입니꺼."


법대로 구속 수감되는 학살자 전두환이 '아침밥'을 굶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 구속 수감을 '희생양'으로 보는 정치평론까지 하는 영남의 민초들이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는 영남인들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학살자를 바라보는 영남인들의 일반적 시선이 바뀌었다면 '일해공원' 따위나 원희룡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전두환 세배' 문제 따위는 결코 발생할 수가 없다.

▲ 한나라당 원희룡(오른쪽) 의원이 2일 오후 연희동 전두환 전대통령을 예방해 세배를 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큰절로 세배한 데 대한 비난여론에 대해, 4일 국회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여러가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분노들을 자극한 점에 대해 정말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 연합뉴스 조보희
설마가 현실로...'일해공원 만들자' 찬성 51.1%의 쓰라림

정치인들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지지를 얻고 싶은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전두환을 취임식과 청와대에 초대해 예우하고, 합천군수가 일해공원을 만들고, 원희룡 대선후보가 전두환에게 세배를 하는 따위의 행위는 유권자들의 기대에 대한 반응이다. 어떤 유권자들인가? 전두환의 '아침밥'을 걱정하는 유권자들이다.

이쯤에서 한번 물어보자.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물든 한국인이 아닌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외계인이 있다면 차라리 그가 좋겠다. 왜 호남에서는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의 '아침밥'을 걱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까? 왜 유독 영남에서만 '아침밥'을 굶은 전두환을 걱정하며, 일해공원으로 전두환을 기념하며, 군민들의 세금을 들여 전두환 생가를 정성스레 관리하며, 전두환이 만든 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일까?

만약 전두환의 광주학살이 지배논리가 고상하게 포장하는 것처럼 광주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전혀 무의미하며, 그곳이 어디든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의 한 대열에서' 발생한 우연한 비극일 뿐이었다면 왜 호남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위와 같은 파쇼적 사건들이 영남에선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아니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자행되는 것일까?

수십 년을 듣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언론과 학자에게서도 명쾌하게 그 대답을 듣지 못했던 나의 질문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의 한 대열'에서 발생한 우연한 비극으로 규정하는 지배논리가 이데올로기적 거짓이 아닌 역사의 진실이라면 전두환을 바라보는 시선에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지역적인 편차'가 있는 것일까?!

진실은 덮는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다. '전두환 문제'는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다음 두 갈래 중 한 방향으로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다.

하나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고향 사람들이 그들을 기리며 파시즘을 옹호하면서 여타 지역민들과 대립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이라크의 경우처럼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쿠르드 족이 '후세인의 역사적 의미'를 둘러싸고 집단적으로 대립하는 경우다.

나는 전두환이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이해되느냐 아니면 후세인과 같은 인물로 자리 잡느냐에 따라 우리도 앞으로 같은 민족으로서 공동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이라크의 행로와 많이 닮아 있다.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식자들은 전두환 군사파쇼체제를 한가하게 역사 속 파시즘 일반의 문제였다고만 우기고 있다. 대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파시즘은 지역적 토대분석이 무의미한 '파시즘 일반'의 문제인가 아니면 영남패권주의가 극단화된 '영남파시즘'인가? 그 파시즘은 이미 끝난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영남파시즘의 유령'과 싸우고 있는가?

▲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 현재 군청 소유로 매년 800여만원을 들여 보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영남 파시즘'의 유령과 다시 싸워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파시즘은 '영남파시즘'이 그 핵심이며 지금도 그 유령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의 애초의 질문, 왜 호남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전두환에 대한 옹호가 영남에서는 대중적으로 자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전두환에게 통상적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하며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반드시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 대답 비슷한 것이 나오긴 했다. '전두환 세배'를 단행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반복되는 역사를 치유하고 통합하자는 측면에서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분명한 사실은 용서와 치유의 기적, 동서화합과 통합의 기적이 없이는 대한민국의 기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역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 원희룡 의원과 함께 각자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자. "동서화합과 통합의 기적"을 위해 우리 모두는 '전두환 세배'에 동의해야 하는가 아니면 "동서화합과 통합의 기적"을 위해 전두환에 대한 통상적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마음속에서 철저히 박탈해야 하는가?

적어도 난 "동서화합과 통합의 기적"을 위해 역사적 범죄자에게 세배를 하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하자는 원희룡 의원의 주장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대답에 극단적인 '지역적 편차'가 있다고 해도 난 지역문제 해결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문제를 쉬쉬하며 그들과 타협할 생각이 절대로 없다. 전두환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지역적 편차'를 해소하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지역문제의 해결이며 민주주의의 진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언제까지 역사에 도발하는 그들의 영남파시즘을 두려워하며 정신적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영남의 양심세력은 전두환을 옹호하는 영남인들의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을 호남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참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호남인들을 향해 지역주의적 퇴행을 일삼고 있다고 거꾸로 된 비난을 할 참인가?

내 장담한다. 광주학살 이후 이 땅의 민주주의가 대한민국 전체와 한줌도 안 되는 전두환 일당의 싸움을 통해 완성됐다면 지역문제는 진즉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땅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전두환 당'에 반대해 호남몰표를 던지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그런 호남몰표를 비난하는 자들의 싸움을 통해 전진해야만 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과연 대한민국은 앞으로 '영남파시즘의 유령'과 정면에서 맞서 싸울 생각이 있을까? '호남몰표'의 상징 민주당은 이미 타격했으므로, 이제는 일해공원도 만들고, 전두환에 세배도 하고, '전두환 당'의 법통을 계승한 한나라당은 계속 융성해 이 나라 정치의 '양대산맥'이 돼야 한다는 담론만이 넘쳐나는 데 이 땅의 민주주의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나는 '영남파시즘의 유령'이 전두환 주위를 맴돌며 '전두환을 추앙'하고, '광주해방구'를 상상해내는 이 땅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그 반동적인 유령과의 힘겨운 투쟁을 필요로 하는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역사에 도발한다면 그들이 누구든 처음부터 다시 싸우는 수밖에 없다.

태그:#전두환, #일해공원, #원희룡, #전두환 세배, #영남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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