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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간판이 즐비한 가리봉 시장. 때로는 이 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조차도 헷갈린다.
ⓒ 나영준
푹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요 며칠 다시 한파가 몰아친다. 아침저녁으로 속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얄궂기 그지없다. 게다가 해는 늦게 떠서 일찍 진다. 겨울은 한 잔의 유혹이 못 견디게 감미로운 계절인 것이다.

이런저런 연말모임이 지나가고 새해가 열렸지만 모주꾼들에겐 그마저도 술자리의 좋은 핑계거리다. 반가운 얼굴과 웃음을 섞고, 한 잔 술에 1년을 가늠해본다.

며칠 전 자고나란 동네의 죽마고우들과 신년 술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서울 가리봉동 시장, 한때는 속칭 '가리베가스(서울 가리봉동을 일컫던 은어)'로 불리던 곳이었다.

'침 좀 뱉던' 10대 시절부터 드나들던 그 곳. 80년대 심야만화방이 '바다이야기'로 넘쳐나던 변화상을 지켜본 곳. 너무 잘 알기에 막상 어느 곳으로 갈까를 망설이며 친구들과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장소가 있었다.

세월의 변화에서 비켜선 천 원짜리 파전집

▲ 김치전과 생선전. 모든 음식은 예외없이 천원이다.
ⓒ 나영준
"야, 오늘은 오랜만에 1000원짜리 파전집 한 번 가보자."

친구들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신년 초부터 춥고 낡은 곳을 가려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누구는 회나 먹자고 했고, 다른 친구는 "공돌이 시절 생각나서 싫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럴 때 예전 생각도 해 보자"는 나의 집요한 설득에 모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리봉 1동 사무소 앞을 지키는 가게. 이름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리고 그 곳은, 세월의 변화에서 비켜서 있었다. 언제부터 천원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얼마를 받았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파전·김치전·생선전·동그랑땡·두부전·햄·산적 등 모든 메뉴가 천원짜리 한 장이다. 거기에 담백한 콩나물국과 듬뿍 집어주는 김치까지 곁들여진다. 맛있다. 양 또한 푸짐하다. 혼자 두 가지 이상은 먹지 못할 정도다.

술값도 싸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2천원이다. 만 원 한 장이면 서너명이 술과 안주로 거나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값이 싼 이유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술집이라기보단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하는 가게다. 때문에 대부분은 속을 채울 수 있는 막걸리를 찾는다.

저녁시간이 지나서인지 가게는 한산했다. 4개의 테이블 중 우리 일행까지 2개만 임자를 만났다. 난로 따위는 없다. 술에 의지해 온기를 찾을 뿐. 춥다며 입이 한자나 나와 있던 친구는 포기했는지 넙죽넙죽 막걸리를 받아 넘긴다.

공사현장에서 목수를 하는 친구, 조적(벽돌 쌓기) 일을 하는 친구, 역시 노동을 하다 몸이 안 좋아 고시원(가리봉 지역 고시원은 거의 일용직 노동자의 숙소 역할을 한다) 총무를 보는 친구 등이 모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의 보물 같은 이들이다.

낭만이 아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찾는 곳

▲ 재개발 예정지인 가리봉 시장 주택가. 양 쪽으로 이른바 '벌집'들이 남아 있다.
ⓒ 나영준
자연스레 사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예전 가리봉에서 일용직 노동을 할 때 지겹게 오던 곳이라는 이야기에 막걸리를 가져다 놓던 주인아주머니가 슬쩍 웃음을 흘린다.

"사는 게 전쟁이야. 그래도 이 가리봉 바닥 뜬 게 얼마나 다행이야. 얘가 고시원에 있으니까 여기 온 거지, 솔직히 짜증난다. 여기는… 막장이야. 너 지금 이 가게가 왜 한산한 지 알아? 여기는 며칠째 일 못 나간 사람들이 밥 먹는 데야. 돈은 똑 떨어졌지. 배는 고프고 술도 먹고 싶지. 그러니까 여기 오는 거야. 낭만? 여긴 그런 거 없어."

▲ 이미지가 안 좋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전철역은 '가리봉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 나영준
친구들은 그간 수십 번은 들었음직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들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기술이 있는 탓에 용역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공사현장으로 나가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기술이 없던 '초짜' 시절엔 가리봉동의 용역사무실을 이용했었다.

그리고 때때로 나 역시 친구들의 뒤를 따라 서투른 솜씨로 자재를 나르곤 했다. 차이점은 친구들은 삶을 위해서였고, 나는 용돈벌이였다는 것이다. 건네는 술잔에 이야기는 다시 일용직 삶의 노곤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삶의 희망을 꿈꾸던 이들, 이곳마저 없어진다면...

가리베가스의 새벽은 어느 곳보다 일찌감치 다가온다. 해는 뜨지 않아도 인력소개소에 최소한 새벽 5시까지는 도착을 해야 일을 구할 수 있다. 그나마 날이 차가워져 일감은 뚝 떨어진 상태고 일당마저 여름에 비해 낮아진다. 어쨌건 일을 나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자재 정리 등의 '잡부'로 하루해를 넘기고 손에 쥐는 것은 6만5000원 남짓. 하지만 인력사무실에 10%의 소개비를 떼줘야 한다. 기업화 된 인력소개소에서 이미 소개비 이전 돈을 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하지만 '세상이 그러하니' 감히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보통 상당한 거리에 일터가 위치한다. 일꾼들 중 승합차를 몰고 나오는 이에게 왕복 교통비로 3000~4000원 정도를 치르고 많게는 스무 명 가까이 짐짝 신세를 각오해야 한다. 결국 손에 쥐는 것은 5만 원 정도.

아무리 열심히 나간다 해도 한 달에 20일을 넘기긴 힘들다. 종종 '데마찌(현장사정으로 일이 취소되는 것)'를 맞는 것까지 감안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몸이 안 좋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게 크고 작은 질환을 달고 있다. 그 돈으로… 그들은 산다.

▲ 사무실로 탈바꿈한 구로 1공단의 모습.
ⓒ 나영준
건강하거나 친구들처럼 목수 등의 기술을 익힌 이들은 이 곳 인력소개소를 통하지 않고 팀을 짜 직접 현장으로 출근한다. 일당은 10~11만원 사이. 그래봤자 일요일을 뺀 날짜 중 20일을 넘기기는 힘들다. 작업농도가 일용직보다 고되다. 보통 부양할 가족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도 그 돈으로, 산다. 아니… 버티어 낸다.

"결국 여기는 힘없고 늙은 사람들이나 중국교포들이나 남는 거지. 아니 그렇게라도 살수만 있으면 좋은데, 이제 재개발한다니 가리봉도 끝이지. 이 사람들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

술기운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친구의 목소리가 착잡해진다. 그랬다. 개발의 바람은 이곳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이미 공단 지역은 대부분 휘황찬란한 공장형 사무실로 재개발이 끝났거나 진행 중이다.

이제 남은 곳은 가리봉 시장 부근 밖에 없다. 70~80년대는 공장에서 미래를 꿈꾸던 이들의 휴식처, 이후 일용직 노동자와 중국교포들로 넘쳐나던 이 거리도 어느덧 용도폐기 될 운명인 것이다.

"나는 연말연시만 되면 방송국이니 기자들 여기 찾아오는 게 젤 웃겨. 그 자식들이 뭘 아냐? 야, 걔네 인터뷰 어떻게 하는 줄 아냐? 일당 쳐 줄 테니까 얘기 좀 하자 그래. 옷에 흙 묻히긴 싫다 이거지. 이젠 여기 사람들도 약아서 두 배는 줘야 돼. 나 같음 안 한다. 돈 십 만원에 얼굴 팔 일 있냐."

이번엔 완연히 취기가 오른 듯한 친구의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코끝이 시려오며 가슴 한 끝이 찌르르해졌다. 그리고… 이후 그 날의 술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자판을 치는 손가락이 간지럽다.

▲ 파전집에서 나온 친구들의 뒷모습.
ⓒ 나영준
성냥팔이 소녀가 바라본 창가 안 세상은 따스하고 온화하다. 낭만과 여유가 꿀처럼 흐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안쪽 사람들의 이야기다. 창문은 두텁고 대문은 견고하게 잠겨있다. 누가 선택권 없는 이들의 과음과 한숨을 나무랄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살기 위해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이들. 겨울밤 한 잔 술이 추억을 끌어오는 낭만이 아닌, 세상사 모진 아픔을 달래는 환약인 사람들. 가리봉의 겨울밤은 무섭도록 시리고 비정하도록 차갑다.

태그:#가리봉, #가리봉 시장, #가리베가스, #파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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