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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30일이면 정연주 KBS 사장의 임기가 끝난다. 최근 KBS 안팎에서는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공론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 노조가 지난 3월 13∼22일 '공공적 사장선임을 위한 KBS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이남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이 KBS 구성원만이 아닌 시청자, 국민의 시각에서 방송의 공공성과 공공적 사장선임의 문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이 글에 대한 반론도 적극 환영한다. <편집자주>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사 전경.
ⓒ KBS 제공
방송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존재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개념이다. 특히 시청자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삼고 있는 공영방송이라면 시청자 복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존재 근거일 것이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KBS노동조합이 '공공적 사장 선임을 위한 KBS인 설문조사'를 했다. 오는 6월 30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정연주 사장에 대한 평가도 포함됐다. 노조는 지난 6일자 <노보>를 통해 설문조사 결과 중 일부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KBS 구성원의 절대 다수인 82.2%가 정 사장의 연임을 반대했으며, KBS 사장으로서 평가결과도 10점 만점에 평점 4.12점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KBS 사장은 방송 공공성 구현에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노조가 KBS 구성원들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묻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내용으로 볼 때, 노조가 생각하는 방송의 공공성은 시청자 상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공공적 사장 선임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노조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프로그램 경쟁력·업무자율성 ↑, 임금·후생복지 ↓

KBS <노보>에 실린 설문조사의 구체적인 항목과 설문조사 결과를 몇 가지 살펴보자.

정 사장에 대한 평가 결과는 ▲조직내 결속·응집력 나빠졌다 73.9%, 좋아졌다 4.3% ▲임금·후생복지 나빠졌다 73%, 좋아졌다 3.1% ▲경영성과 나빠졌다 62.7%, 좋아졌다 8.1% ▲노조와의 관계 나빠졌다 61.2%, 좋아졌다 6.4% ▲KBS 공영성 나빠졌다 31.7%, 좋아졌다 25.6% ▲자율성·민주성 나빠졌다 30%, 좋아졌다 30.6% ▲프로그램 경쟁력 나빠졌다 19.6%, 좋아졌다 43.2% 등이다.

노조는 지난 해 3월 동일한 설문조사 결과와 이번 결과를 비교하면서 정 사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위 항목을 살펴보면 방송의 공공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과 경영·복지로 묶을 수 있는 내용에서 응답결과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프로그램 경쟁력이나 업무 자율성, 의사결정의 민주성과 같은 항목들은 오히려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프로그램은 방송사와 시청자가 만나는 접점이자 방송 공공성이 실제로 구현되고 평가받을 수 있는 핵심 콘텐츠이다. 반면 나빠졌다는 평가가 두드러지게 나온 항목은 KBS 구성원들의 임금과 후생복지, 경영성과, 노조와의 관계 등이다.

그런데 이런 항목을 방송 공공성의 핵심요소로 꼽을 수 있는 것일까? 방송의 공공성은 방송사 구성원들의 높은 임금과 후생복지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시청자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질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KBS 구성원이 아니라 시청자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사뭇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공공적 KBS 사장의 조건은 무엇인가

▲ 정연주 KBS 사장
ⓒ 이종호
노조는 지난 2월 4일자 <노보>에서 정연주 사장의 경영이 존 버튼 BBC 전 사장의 시장주의 경영전략과 유사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번 설문조사 취지에 대해 '공공적 사장 선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공공적 사장의 조건이 무엇인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노조는 임금·후생복지, 경영성과, 노조와의 관계가 왜 공공적 사장의 필수적 덕목인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설문조사 항목을 보면 방송의 공공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영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연주 사장의 공영방송 철학의 부재와 '상업방송식' 경영모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구성한 설문항목은 상업방송과 다를 바 없는 경영성과와 사내복지에 집착하는 모순을 보였다.

실제로 KBS 노조는 설문조사 결과 분석에서 '정연주 사장 4대 연임 불가론'으로 ▲경영능력 부족 ▲조직갈등 증폭 ▲공영방송 위상 혼란 ▲방송에 대한 비전문성을 꼽았다. 이어 노조원 79%가 차기 사장의 조건 중 으뜸으로 경영능력을 꼽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와 주장은 석연치 않다. 사장의 방송에 대한 전문성이 그렇게 부족한데 어떻게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을까? 조직갈등이 심각한데 업무의 자율성과 의사결정의 민주성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조가 간절하게 원하는 경영능력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KBS 노조는 차기 사장이 갖추어야 할 공공성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명확하게 되물어보고, 이를 공개해 합리적인 공론의 장에 부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설문조사가 최소한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였는가를 짚어봐야 한다.

방송 공공성은 KBS 구성원만의 자가당착적 공공성이 아니다

지난 6일 <쿠키뉴스>는 이번 조사에서 기자와 PD 등 외근 직종의 응답률이 다른 직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KBS 사내게시판에서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설문항목의 구성과 배치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조와의 관계, 임금·후생복지 등 부정적인 응답이 예상되는 항목을 앞에 배치한 뒤 사장연임의 찬반을 물어 응답자들의 의견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KBS 노조의 떳떳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설문조사 결과의 원자료(raw data)를 가감 없이 공개, 쓸데없는 의혹이 증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사결과를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고 일부만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설문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차기 사장 적임자를 실명으로 묻는 항목이 있었고 김 아무개씨가 1위를 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이 항목의 조사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공공적 사장이 KBS의 차기 사장으로 선임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년 2개월간의 정연주 사장 체제를 공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 만약 정 사장의 방송철학이 상업주의로 경도돼 방송 공공성을 해쳐왔고, 앞으로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그의 연임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KBS 노조의 설문조사 결과는 정연주 사장보다 노조가 더욱 상업주의 방송철학에 매몰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방송 공공성은 KBS 구성원만의 자가당착적 공공성이 아니다. KBS 노조의 반성과 분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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