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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춘절 삼각의 하사월 초팔일, 연자, 나비는 펄펄, 수양버들 앉은 꾀꼬리 제 이름 제 불러. 이편은 우두봉, 저편은 좌두봉, 건너봉, 맞은봉, 좌우로 칭칭 을러, 아아 이루워. 그물을 맺아서 들어 메고 제비를 몰러 나간다, 복희씨 내신 그물을 에후리쳐 들어 메고 방당산으로 나간다.

방당산 기어올라 덤풀을 툭 차, 후여 훠훠훠 쳐. 저 제비, 늬가 어듸로 행헌다? 남비오작의 까치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춘일황앵의 꾀꼬리만 보아도 제빈가 의심. 연비여천에 소로기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떴다, 내 제비야,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마라. 천화일으 지은 집이로다. 화급동량이라, 내 집으로 들어오너라. 이루 내 제비.” 마참 이때를 당하야 수상헌 제비 한쌍이 거중 중천에 높이 떠, 이리저리 저리이리 놀보 집으로 행헌다.

- 판소리 <놀보가> 중에서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


▲ 모양성 입구에 있는 돌을 머리에 인 여인들 상
ⓒ 이승철

4월 22일 전북 고창읍내에 있는 모양성을 찾았다. 성으로 들어가는 주차장 입구 오른편에는 고창판소리박물관과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한 신재효의 고택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양성은 고창읍성이 본래의 이름이며 조선조 단종 원년에 쌓은 성이다. 바다를 건너와 수시로 출몰하여 우리 백성들을 해치고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호남내륙지방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라고 한다.

성 앞에 서면 문루는 보이는데 성문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성 모양이 특이한 것이다. 성에는 동, 서, 북문이 있는데 성문 앞에는 하나 같이 옹성이 있어서 성문으로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치기 좋도록 만든 것이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커다란 기구를 이용하여 성문을 부수고 성 안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모양성은 그런 공격을 막아내기 쉽도록 옹성을 만든 것이다.

▲ 공북문을 들어서면 입구 왼편에 있는 옛 감옥
ⓒ 이승철

우선 성 밖 입구에는 돌을 머리에 인 아낙네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모양성에서는 전통적으로 해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이면 성 밟기 행사가 벌어진다고 한다. 여자들이 머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하나씩 이고 성벽 위를 걷는 행사인데 한 바퀴 돌면 일 년 동안 다리 병이 없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라 한다.

옛날에는 성을 돌고 난 후 머리에 이고 들어갔던 돌은 성 안의 지정된 장소에 놓고 나왔는데 이것은 왜구들이 침략했을 때 좋은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 밟기 행사는 일종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돌을 비축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던 것 같다.

▲ 성 안 중앙 연못 길가에 있는 풍화루
ⓒ 이승철

정문인 공북루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왼편에 서 있는 감옥이라는 '옥(獄)' 현판을 붙인 작은 건물이 눈길을 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범죄가 있게 마련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넓은 마당가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와 성벽을 오르내리며 신나게 뛰노는 몇 마리의 다람쥐와 청솔모가 자유롭고 한가로운 옛 성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안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주변에 고인돌과 천연기념물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아담한 연못가에 날아갈 듯 멋있는 정자가 하나 서 있으니 풍화루다. 그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지방 관아였던 동헌과 빈청이 자리잡고 있다. 동헌은 지방관장의 집무실을 말하는데 집무실의 위치가 동쪽에 있다 하여 동헌(東軒)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지방관청을 동헌이라 부르는 것이 상례인데 이곳 동헌에는 평근당(平近堂)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평근당이라는 이름은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니 여간 좋은 이름이 아니다.

▲ 평근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동헌
ⓒ 이승철

그러나 평근당에는 6방 아전들을 거느린 위엄 있는 사또상과 함께 그 앞마당에는 죄인을 다스리는 으스스한 형틀과 곤장이 비치되어 있어서 좋은 이름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모양지관(牟陽之館)이라는 고창읍성 객사가 자리잡고 있다. 객사의 중앙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애경사시에 임금이 있는 대궐 쪽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고 한다.

좌우에 있는 넓은 방은 중앙에서 내려온 관원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성내에는 22개동의 관아 건축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직 다 복원되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 고창읍성 서문과 성 밖 꽃길
ⓒ 이승철

평일이어서인지 성내는 관광객들도 많지 않고 고풍스런 건물들과 줄기가 붉은 커다란 한솔 숲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모습이다. 성 입구에서 보았던 판소리 박물관과 신재효 고택을 보아서일까, 높직한 언덕 위에 날아갈 듯 서 있는 육각 정자에 올라서니 어디선가 구성진 판소리 한마당이 울려 퍼질 것 같은 느낌이다.

부녀자들의 성 밟기 코스를 따라 성벽 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성 위에 올라서니 고창 읍내가 눈 아래 펼쳐진다. 성 아래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 심어놓은 철쭉나무들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산책로 꽃길을 걷는 주민들의 발길이 싱그럽기만 하다.

산책로 옆으로는 성을 쌓을 때 지역별로 축성 책임이 주어진 구간마다 지역 이름을 적은 팻말이 서 있었다. 고부시(古阜始)는 고부지역 주민들의 성 쌓기 시작 지점이라는 표시이고, 고부종(古阜終)은 끝나는 지점 표시인 것 같다. 이를테면 요즘의 공사실명제와 같은 뜻인 셈이어서 흥미롭다.

▲ 기둥의 길이가 제각각 다른 공북루
ⓒ 이승철

성벽을 쌓은 돌은 자연석이어서 크기와 모양에 맞추어 정교하게 쌓았다. 조선시대에 쌓은 읍성들은 대개 평야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성문 위에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지휘소로 사용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 성은 바깥쪽만 돌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이용하여 쌓은 성내에는 관아만 있고 백성들은 성 밖에서 살다가 유사시에만 성 안으로 들어와 적을 방비하며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성 위를 걷다보니 어느 곳은 성 윗면을 시멘트 콘크리트를 하여 미관과 감촉을 흐리게 한다. 아마도 성 밟기 행사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감당할 수 없어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듯하였다.

▲ 고창읍성의 동문과 옹성
ⓒ 이승철

그러나 성벽도 자연도 잘 보존된 모양성은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채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와 함께 왜구들의 침략과 고달팠던 우리 민족의 삶의 역사를 증언하여 주고 있었다.

성을 나와 입구에 있는 신재효의 고택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자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정겹다. 복원된 사랑채라고 한다. 방 안에는 제자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선생과 제자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는데 판소리 흥보가 한 마당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리 신재효(1812~1884)는 그때까지 정리되지 못하고 제각각으로 불려지던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가루지기타령 등의 가사를 정리하여 여섯 마당으로 체계화한 사람이다. 광대소리 구전문학을 정리하고 집대성하여 판소리라는 오늘날의 사설문학이며 음악으로 승화시킨 인물인 것이다.

▲ 동리 신재효의 고택 사랑채
ⓒ 이승철
그의 고택이 있던 자리에는 고창판소리박물관과 동리국악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신재효가 후원하였던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들을 기념하는 일을 한다. 또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며 판소리에 대한 유-무형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신재효의 옛 고택자리에 세웠다고 하였다.

박물관 마당에서 50대 중반의 주민을 만났다. 신재효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그라믄요"한다. 할 줄 아는 판소리 있느냐고 하니 거침없이 "한자락 해볼까요?"하더니만 목청을 가다듬는다.

▲ 신재효 고택 방안에 설치된 판소리 공부하는 선생과 제자들 상
ⓒ 이승철

심봉사 좋아라 은자 이십량을 받아들고 저의 집으로 돌아오며, 온갖 생각을 두루헌다. 뺑덕이네를 어쩔그나 두고 간다 해도 안될테요 같이 따라가면 좋으련마는 마다하면은 어찌헐고 도르는 수가 옳다

"요기꺼정만 혀야지… 어떠요? 들을만허요? 허허허."
"아주 잘하십니다. 이곳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솜씹니까?"
"배우기능요, 기냥 등넘어로 배운솜씨랑게요 허허허."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 휘적휘적 걸어간다. 판소리를 잘 알지 못하니 얼마나 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핏 듣기에는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잘 보존되어 모양 좋은 옛 성과 판소리가 어우러진 고창읍성 모양성, 한 번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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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태산 두승산에 오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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