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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지하 <유목과 은둔> 마산문화문고
ⓒ 창비
시 짓고
그림 그리고

가끔은
후배들 놀러와

고담준론도 질퍽하게
아아
무엇이 아쉬우랴만

문득 깨닫는다

죽음의 날이 사뭇 가깝다는 것.

-92쪽, '김지하 현주소' 모두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에 대해 새삼 그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그저 높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혹여 '흰그늘' 같은 저 마애불이 급기야 세월의 더께를 견디지 못하고 꺼져버리지나 않을지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근데, 그 마애불을 줄곧 감싸고 있던 그 '흰그늘'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등을 돌린 채 서로 다른 곳으로 달아나려 하는 것만 같다. '흰그늘', 즉 낮과 밤이 저만치 서서 서로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자리를 비껴주는 그런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 이제는 서로 영원한 이별이라도 할 것처럼 쓸쓸한 눈빛을 툭툭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애불, 즉 오랜 풍파를 이겨낸 마애불 같은 시인 김지하의 '흰그늘'이 이제 '흰'을 버리고 '그늘'로 자꾸만 옮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는 그말이다. "아하/ 알겠구나/ 나이 들어 끝내는 모두/ 죽어가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구나// 덧없는 저 하늘의/ 한 송이 흰 구름// 타다/ 타다가/ 저무는 하늘에/ 밤이 오는데."(죽음)처럼.

"아홉번째 시집인가 보다/ 아마 내 시집 중에서 가장 허름하고 가장 허튼 글모음인 듯하다./ 허름한 것은 '졸(拙)'이고 허튼 것은 '산(散)'이니 둘 다 혼돈에 속한다./ 뒤에 숨어 있어야 할 생각의 뼈대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천정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 허름하고 허튼 것들이 이상하게 가엾다."-시인의 말' 몇 토막

시인 김지하(63)가 자신의 아홉 번째 시집(시인은 선집을 빼고 말한 것 같다) <유목과 은둔>(창비)을 펴냈다. 이 시집은 시인이 2002년 여름부터 2년여에 걸쳐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과 요즈음 새롭게 쓴 전작시 30여 편을 보탠 시 94편이 회한처럼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번 시집은 제1부 '몸' '죽음' '병원' '전신두뇌설 근처에서' '삶' '선풍기 근처에' '김지하 현주소' '김지하 옛주소' 등 34편, 제2부 '흙집' '추사' '일본에서' '윤동주 앞에서' '천지 가는 길' '낙산 비탈' 등 29편, 제3부 '화엄' '새벽 난초' '삼소굴' 연작 9편 '솟대' '생명과 평화의 길' 등 31편이 실려 있다.

시인 김지하는 누구인가?
'흰그늘'의 미학을 가꾸어 나가는 생명운동가

▲ 시인 김지하
ⓒ창비

"김지하가 이 시집에서 죽음의 화두를 들고 나온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의 '사'가 생과 함께 하는 노와 병의 과정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점은 마찬가지이다."-이은봉 '해설' 몇 토막

시인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참여하면서 첫 옥고를 치른 뒤, 8년 동안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독재권력에 맞선 행동하는 양심으로, 한국 전통사상을 오늘의 현실로 재해석하는 사상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시집으로 <황토><타는 목마름으로><오적><애린><검은 산 하얀 방><이 가문 날의 비구름><별밭을 우러르며><중심의 괴로움><화개>가 있으며, <김지하 사상전집>(모두 3권) <김지하의 화두> 등 수많은 책을 펴냈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받음.

/ 이종찬 기자
김지하는 시인의 말에서 "행여 풀이 죽어 스스로 흩어져 없어지기 전에 (이번 시집을) 서둘러 묶는다"며 "날더러 할아버지라 부르거나 꼰대라고 손가락질하는 젊은애들 앞에서 혼자 빙긋 웃곤 한다"고 말한다. 이어 "시란 본디 자위(自慰)가 바탕이니 그만했으면 됐다"고 덧붙인다.

열여섯 살 때부터 목숨을 걸고 시를 썼다는 시인. "자유당 말기의/ 내 정신 풍경"을 "매독환자/ 아니면/ 아편쟁이" 같았다고 고백하는 시인.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은 "높고 휘황한 대금산!" 같다며 스스로 고개 숙이는 시인. "이제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고// 외로움밖에 없고// 후회할 일밖에 없으니// 참 개똥 같은 인생"(김지하 옛주소)을 살았다며 속내를 훌훌 털어놓는 시인.

예전엔
잘 몰랐지

몸이 무너지면서
몸을 알았지

아니
사실은
마음이 무너지면서
그 날카로운 아픔으로
몸을 알았지

그러매 사실은
몸이 곧 마음

-10쪽, '몸' 몇 토막


그 무엇이 반독재를 외치며 스스로를 헌 짚신짝처럼 이 세상에 내던진 시인에게 외로움과 후회밖에 없는 삶으로 내몰았을까. 그때 시인이 당한 고문과 투옥의 날들이 급기야 "아/ 나는 역시/ '산송장'이던가// 아아/ 나는 역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던가"(병원)처럼 몸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어디라도/ 고즈녁한 곳에 가/ 깃들이리// 비 맞은 새모냥 빗방울/ 털고 털면서/ 서 있으리"처럼 그 지독한 '그늘'을 지나 다시 '흰' 삶을 꿈꾸기 위해 '그늘' 같은 외로움과 후회를 일부러 곱씹고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삶은 그냥 오지 않고/ 허전함으로부터만 온다'고"(삶)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 때문에 시인은 그동안 "바람이 가는 방향/ 거기 언제나/ 내가 서 있다// 바람과 같은 방향은 아니다/ 바람에 맞부딪치는/ 역류의 길"에 섰던 것일까. 하긴 '그늘'의 깊이를 모르고서 어찌 '흰' 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그늘'야말로 시인의 "몸속에 깊이 박힌/ 생명의 외침"(바람이 가는 방향)일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늘엔
해 없고

먼 곳 흰 강물줄기 안 보인다

돌아가야 살 길
뛰어넘어야 숨쉴 틈


한 자리

타고 스며라 타고 스미듯
도리어
가야만이

산다

하늘엔
해 없고
먼 곳 흰 강물줄기 안 보인다.

-96쪽, '땅거미' 모두


이 시를 언뜻 읽으면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늘에 해가 없으니 어찌 흰 강물줄기가 보일 수 있겠는가. 그처럼 사방은 온통 어둠, 즉 죽음의 그림자로 짙게 드리워진 것처럼 읽힌다. "타고 스며라 타고 스미듯/ 도리어 가야만이// 산다"는 싯귀도 마치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니다. 이 시에서 김지하가 말하고자 하는 속내는 바로 '흰그늘'에 있다. '흰그늘'은 밝음도 어둠도 함께 얼싸안고 있는 그런 낱말이다. 그러므로 '흰'도 벗고 '그늘'도 벗고, 아니 '흰그늘'을 틈틈히 입고 벗어야만 진정한 '흰그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흰그늘'이야말로 시인이 꿈꾸는 영원한 삶의 길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타오르는 촛불에서도 '사방이/ 흰그늘이다' 라며 '흰그늘'을 찾아낸다. 그 '흰그늘'은 "타오르는 고요" 속에 있다. "오류 없는 권력의 빛바람이/ 창조적 개혁의 밀물이/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나마/ 이윽고 눈앞에 태어나" 듯이. 그때 시인은 "나의 단중에게 가만히 말을 건다// '틈!'/ '이제 필요한 것은 틈이다.'(촛불)라고.


거기 이제
오늘밤

솟대 하나 세운다
반석 하나 놓는다

환갑도 훨씬 지난
이 나이에

나이 들어서
늙어서
세월 가고 또 가서

고향 가까운
바로
여기에.

251쪽, '솟대' 몇 토막


시인 김지하의 아홉 번째 시집 <유목과 은둔>은 육십대 중반에 접어든 김지하의 삶과 일상의 속내가 허물을 벗듯이 환하게 드러난다. "노을엔/ 나를/ 똑바로 보지 마라// 노을엔/ 내 얼굴에/ 옛 끔찍한 시절/ 살아난다 하니/ 되살아난다 하니/ 노을엔/ 차라리/ 길고 긴 내 그림자 닿는 저쪽"(노을엔)이나 보아라는 것처럼.

유목과 은둔

김지하 지음, 창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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