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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국정감사를 모니터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이번 국감에서도 정쟁, 폭로 등 과거의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민언련이 모든 상임위의 국감을 모니터하지 않는 만큼 국감 전반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화관광위의 국감만을 놓고 본다면 16대에 비해 일정 부분 진전된 측면이 있다. '정치공방'에 주로 관심을 쏟는 언론들로부터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비판과 정책 제안들이 나오기도 했으며,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물론 국감의 제도적 문제점이나 의원들의 구태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의원들의 노력에 따라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구태들이 반복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황당행태'들이 종종 돌출했는데, 때로 "이런 국감을 꼭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 정도로 인신공격과 색깔공세, 정략적 공방, 수준 이하의 발언을 쏟아내는 의원들이 있었다. 또 알맹이 없는 주장을 나열하거나 국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질의에 시간을 낭비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11일과 12일 문화관광위 국감에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를 떠나 '구태국감'을 재연한 대표적인 의원을 뽑는다면 한나라당 최구식, 심재철 의원이 아닐까 싶다. 최 의원이 '시간 낭비형 국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심 의원은 색깔공세와 인신공격, 고압적 자세 등 지금까지 '구태'로 지적되어온 국감 행태들을 망라해서 보여주었다.

'초선의원' 최구식의 구태

▲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교육방송과 MBC의 지배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국감이 열린 11일. 최구식 의원은 두 피감 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장들을 쏟아냈는데, 특히 방송문화진흥회 국감에서는 정권과 방송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거칠게 드러내는 데 13분의 질의 시간 대부분을 썼다.

이 과정에서 최 의원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답게 조선일보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와 낯뜨거운 주장을 펴기도 했다. (최 의원은 1985년부터 조선일보에서 몸담았으며, 정계에 진출한 2002년까지 정치부 차장으로 일했다. 정치권으로 옮겨와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씨의 언론특보를 맡았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공보수석을 거쳤다.)

그는 "언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혹독한 탄압을 받았고 굴종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언론인들은 행간에 한 자라도 국민의 소리를 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신문은 정권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했지만, 방송은 한 번도 어김없이 친여적이고 친정부적이었다"고 방송비난에 열을 올렸다.

또 자신은 기자 시절 "매일 16시간씩 일하면서 한 가지 확인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잠도 못잤다"면서 그에 비해 MBC는 '눈치볼 사람 없고, 월급많고 스트레스 없고, 정의도 독점하고, 권력도 가졌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정권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절에 '국민의 소리'를 담기 위해 어떤 '눈물겨운 노력'을 보였는지, 또 기자들은 한 가지 사실 확인을 위해 잠을 설쳐가며 일했는데, 왜 조선일보 지면에는 사실 왜곡과 거짓말이 넘쳐났는지 최 의원에게 묻고 싶었다.

12일 방송위원회 국감에서도 최 의원은 '신문은 탄압에 맞섰지만 방송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해, 피감기관은 달라도 질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방송위원회 이효성 부위원장에 대해 "학부 전공이 지리학인데 왜 언론으로 전공을 바꿨느냐", "조중동을 보느냐?"는 등의 쓸모 없는 질문을 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코드가 잘 맞는 방송계 최고 실세", "(방송위 부위원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용교수'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인식공격성 발언으로 18분의 짧지 않은 질의 시간을 허비했다.

최 의원은 초선의원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초선의원으로서 국감을 맞는 최소한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나라당 출입 기자로서 '인맥'을 쌓으면서 너무나 많은 정치권의 구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이 들었다.

조선일보에서 16시간을 일했던 그 열정으로 국감을 준비했더라면 '정책국감'을 위한 약간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측은지심 들게 한 심재철 의원의 '오버'

그러나 최 의원의 '구태'는 심재철 의원의 그것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심재철 의원의 질의는 한마디로 '황당버전', '색깔버전'이었다. 11일 심 의원은 EBS 국감 시작부터 '역사 관련 프로그램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켜야 한다', '이념사관, 자학사관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더니, 이어 고석만 사장을 향해 "6.25가 남침이냐, 군사적 충돌이냐 답하라"는 등의 '사상검증'까지 시도하면서 '공정한 역사 프로그램'을 주문했다.

방문진 국감에서도 심 의원은 MBC 몇몇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공정하냐 안하냐 대답하라", "타당하냐 안하냐 대답하라"는 등으로 방송문화진흥회 이상희 이사장을 추궁했다. 이상희 이사장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대답하기 곤란하다"며 답변을 피하자 심 의원은 "당당하지 못하다"며 윽박 지르기도 했다.

12일 방송위원회 국감에서도 심 의원의 행태는 반복되었다. 심 의원은 조선일보의 보도를 바탕으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SBS 퇴출'을 주장했다거나 방송위원회가 이들 단체에 '뒷돈'을 댔다는 등의 사실 왜곡과 악의적인 음해를 늘어놓았다.

또 방송위원회가 지원하는 시민방송RTV에 시민단체, 노조 관계자가 많이 출연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편파성'을 질타해 '퍼블릭엑세스 채널'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면서까지 이념공세에 몰두했다.

심 의원의 이런 주장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때 '민주주의'를 외쳤던 '학생운동가 심재철'이 '구태국감', '색깔국감'에 앞장서는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이다.('80년 서울의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5년 선고 받았으며, MBC 기자로 일했다.)

심 의원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대목에서도 경직된 표정과 큰 소리로 증인들을 몰아붙였다. 한때 '운동가'였던 사람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심 의원을 보면서 그가 혹시 '자기합리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들었다.

때로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 부끄러운 선택을 하고 나서,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으나 잘못된 선택을 한 그가 '내 선택은 옳았다'고 스스로에게 강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얽힌 일화가 떠올랐다.

법정에 선 '내란음모'의 피고들은 자신이 고문수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혐의를 시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술을 번복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내란음모'를 법정에서도 시인했다. 당시 김대중씨는 '죄'를 인정한 그 사람에게 "동지, 고생이 많았지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두가 '내란음모'는 조작이라고 주장할 때 그 혐의를 인정한 한 사람. 동지들과 민중들은 그의 선택을 '고문이라는 엄혹한 상황이 빚어낸 비극'으로 이해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용서하지 못한 채, 그 잘못된 선택에 남은 인생을 맞추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심 의원 행태를 지켜보며 '구태국감'의 현장에서 분노보다는 서글픔이 앞섰다.

민언련 "국감이 시민단체 성토장인가"
한나라당 의원 ‘홍위병론’에 "국감이나 품위 있게 하라" 반박

12일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시민단체에 대해 ‘홍위병론’을 들고 나오자 민언련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심재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방송위의 시청자단체 지원을 놓고 “방송위가 친여 성향의 방송개혁을 주도한 민언련과 언개연에 뒷돈을 대어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또 “언론개혁국민행동, 언개연, 언론노조, 민언련 등 친여 시민단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SBS 퇴출’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냈다”고 주장하며 ‘홍위병론’을 폈다.

시민방송RTV와 관련해서도 심 의원은 민주노총 및 시민단체 인사들의 출연과 시민단체들의 컨텐츠 제공을 문제삼았다.

그러자 민언련은 즉각 <‘품위있는’ 국감을 바라는 게 무리인가>라는 논평을 내고 심 의원의 주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언련은 심 의원이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놓고 “시민단체가 부당한 ‘뒷돈’을 받은 것처럼 몰고 있다”면서 “이들 단체들을 ‘흠집’내 언론개혁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와 보조를 맞추는 심 의원을 보며 어쩌다 국회의원이 일개 신문 주장을 되뇌는 존재로 전락했는지 서글프다”고 비난했다.

또 민언련은 방송위원회가 “정치적 외압에 약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민언련을 거론한 박형준 의원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합리적 의견을 내줄 것으로 기대한 박 의원에 대해 실망을 감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12일 국감에서 ‘민언련이 SBS의 방송발전기금 징수율 문제에 대해 성명을 냈고 방송위가 이에 대한 반응 차원에서 징수비율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박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6월 18일 SBS에 대한 방송발전기금 징수율을 법이 정한 상한치인 6%로 높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으나 방송위원회는 5.45%로 인상하는데 그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시민단체가 방송위원회에 의견을 제기한 것이 어떻게 “정치적 외압이냐”고 따졌다. /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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