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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신부 머리에 쓴 거 저거 족두리랑 같은 거야?"
"신부가 입은 저고리 정말 예쁘다. 저거 이름이 뭐야?"
10살 딸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면서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결혼식이 너무 똑같다며 싫증을 잘 내던 아이인데, 알아보는 눈이라니... 그 날의 결혼식은 모든 게 달랐다. 신랑신부의 옷차림에서 식장 분위기며 식순이며 토요일 저녁이라는 시간까지.

신부는 한복 치마에 당의를 입고 머리엔 아얌을 썼다. 은은한 화장에 뒤로 정리한 머리, 아얌과 당의의 고운 색이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신부였다. 신부 곁의 신랑이 입은 한복 바지저고리와 검은 두루마기가 식장 분위기를 더욱 멋스럽게 했다. 웨딩드레스 만지고 따라 다니는 사람 없이 신부는 홀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다니고 있었다. 한복 치마도 발끝만 덮이는 길이라 따로 싸잡을 일도 없었다.

벌써 12년 전인 그 날, 내 결혼식이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국적불명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결혼식장의 내 모습. 신부의 상징인양 바라보던 웨딩드레스, 입고 보니 그건 비인간적인 '흉물' 아니던가. 도무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치렁치렁한 길이를 주체하지 못했었지. 혼자서는 한 발짝 떼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든지.(몸에 맞게 맞추어 입은 신부는 그렇지 않을까?)

신랑신부는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식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았다. 신부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 식을 기다리는 대신,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악수하며 웃고 이야기하는 신부가 보기 좋았다. 부케도 없고, 장갑도 끼지 않은 맨 손이었다. 신부와 악수를 하니 내 손이 감동으로 떨렸을 정도였다.

식장 입구엔 부조금을 받기 위한 책상 같은 것도 없었다. 양가 가족들도 하객들에 섞여 자리를 잡았다. 식장으로 쓴 곳은 작은 호텔의 소연회실이었는데 옆방에선 회갑잔치가 있었다. 둥근 탁자 여덟 개에 손님들이 나누어 앉았고 출입문 쪽엔 뷔페로 음식이 준비돼 있었다. 수용인원은 많아도 60명. 손님들은 양가의 가까운 가족들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로 제한했단다.

결혼식은 양가 어머니들이 화촉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윽고 신랑 후배인 사회자가 신랑 신부 입장을 알렸다. 손을 잡은 신랑 김종필 씨와 신부 임현숙 씨가 손님들을 맞이하던 그 출입문에서 들어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하객들을 향해 절을 하고 나란히 섰다. 사회자가 신랑신부의 맞절과 간단한 사랑을 맹세하도록 했다.

신랑 후배가 부른 축하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신랑신부는 손을 잡고 퇴장했다. 곧이어 신랑신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함께 축배를 들었다. 기념촬영이 있은 뒤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눌 때 축하의 분위기가 더 무르익었다. 신랑신부는 하객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이들 신랑신부는 결혼식만이 아니라 결혼비용도 간소화했다. 서로의 힘을 합쳐 사는 집과 살림살이를 해결했다. 한복에 든 130여 만원과 반지 두 개 30만 원이 결혼식 비용의 전부였다(이런 지출도 물론 없는 것보단 많겠다). 예식장이 겨울엔 값이 싸긴 하지만 이곳이 맘에 들었다. 예상 손님보다 여남은 명 더 많은 71명이 먹은 음식값은 양가 가족들이 우겨서 분담했단다.

"가장 마음에 둔 건 번거롭지 않게 하자는 거였지요. 장소도 사람들도 다 작게 하고 싶었구요."
신랑이 한 말이었다. 번거롭지 않게, 생각뿐이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식 뿐이랴. 번거로운 형식과 절차에 사람은 어느새 물건같이 휘둘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기로 한 걸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절차인 결혼식. 결혼 생활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보다는 결혼식을 어떻게 멋있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인양 법석인 경우를 얼마나 보는가.

'내가 못했던 걸 그대들은 드디어 했구나.'
다소 파격적인 그리고 간소한 결혼식에서 그런 기분까지 느꼈다면 너무 심한 걸까. 두 사람 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재혼이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두 사람 모두 부모들로부터 독립적인 삶을 살아온 '어른'들이었다.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결혼식보다는 둘이 살아야 할 삶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런 간소함을 실천할 수 있지 않았을까.

12년 전 나는 부모로부터 제법 독립적인 삶을 살며 잘난척 했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말하면 그건 아니었다. 능력 없으면 모든 형식을 생략하고 '조촐'한 결혼식을 해도 되었으련만. 나는 부모의 돈과 교회의 프로그램에 묻힌 결혼식을 해야 했다. 자기 일을 선택하고 결정할 '어른'이 못되어 했던 결혼식은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옷을 입고 '반여성적인' 방식에 지배받는 거였다.

평소 입지 않던 옷에, 전혀 낯선 분위기를 취하는 건 '중노동'이었다. 사람들이 구경하고 싶은 '얌전하고 아름다운' 신부가 돼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떨어야 했다. 폐백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다리에 쥐가 나도록 절을 하고 '절값'을 받았다. 결혼식이 끝났을 때, 나는 누군가가 벌여 놓은 무대에서 광대놀음 하고 난 기분이었다.

나이 서른이 다 된 어른이었으되 어른이 못되었던 그때. 지금 와서 그런 결혼식을 했다고 말하자니 정말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곤 한다.

"결혼식, 틀에 매이지 말고 전혀 새롭게 한 번 해봐." "이런 결혼식 어떠세요?..." 아니면 "치렁치렁 웨딩드레스 꼭 입어야 하나?" 그러다가 안되면 차라리 "여보, 우리 결혼식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었는데 그치?" 이런 식이다.

가장 멋진 결혼식은, 단 하루의 결혼식 이벤트 보다 그 후의 삶에 대해 준비가 된 것이리라. 준비된 두 사람이 자신에 맞는 방식과 내용을 결정하여 축제처럼 즐거워하는 결혼식이 아름답다. 신부도 신랑도 '비인간적인' 격식과 옷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결혼식이 멋지고 말고. 웨딩드레스 입지 않은 신부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눈에 또렷하다.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김화숙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다시 만나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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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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