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기록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

내가 작성한 댓글

* 소셜댓글 도입(2013.07.29) 이후 오마이뉴스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남긴 소셜 댓글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소셜 계정을 이용해 남긴 댓글은 라이브리 사이트의 마이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나의 고향 대전에도. 좋네요. 축하합니다.
  2.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성락원의 연원, 조영시기를 설파하는 이런 기사나 논문이 먼저 나왔다면, 그래서 미리 연구가 잘 돼 있었다면 지금 겪는 것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돼 아쉽네요. 정승판서니 왕족이니 내시니 누가 살았다에 포인트를 맞추기 보단 조선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조영시기가 더 중요한 거 같네요. 성락원이 가지는 문화재로서의 가치와는 별도로, 문화재청의 무능과 안이함, 소유주의 비윤리성은 큰 문제고 큰 논란을 부름으로써 성락원의 가치에도 흠집을 냈다고 봅니다. 늦었지만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앞으로 진실은 진실대로, 허위는 허위대로 성락원을 둘러싼 여러가지 것들이 명명백백히 가려지길 바랍니다.
  3. 저 말미의 문장이 그냥 읽으면 약간 오해와 혼동을 부릅니다. 쓰신 분께선 조선말에 황윤명이 조성해서 `살았고 `이후에` 의친왕 같은 이가 별궁을 짓는 등 왕실별장으로 썼다는 의미로 쓰신 것 같은데, 그냥 읽으면 성락원 지역이 조선말에 왕실별장이 있었다라는 의미로 읽혀요. 그리고 제가 위에 쓴 것들은 이 기고문을 두고 쓴 말이 아니라 문화재청과 소유주의 지금까지의 행위에 대한 비판입니다. 쓰신 것처럼 성락원의 역사적 의미와는 별도로 문화재 지정과정에 어떤 오류와 잘못이 있었는지 확실히 조사되길 바랍니다. 저도 이 기사와 김세호 박사님의 글을 통해서 성락원의 연원이 1887년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인지했고, 쌍류동천, 영벽지, 각자, 인공폭포 등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4. 그리고 기존의 문화재청 입장도 그렇고, 위 기사도 그렇고요, 자꾸 `누가 살았다`에 포인트를 맞추는데요, 그보다는 얼마전 [환경과조경]에 실린 김세호 박사님의 글처럼, 조영시기가 1887년까지 올라가는 것이 문집 등 사료를 통해 확인이 된다, 그런 식으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위 기고와 다른 매체에 실린 기고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쌍류동천, 영벽지, 각자, 인공폭포 등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고 연대도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조선 후기로 올라간다는 점도 잘 이해했습니다. 늦었지만, 이런 건강한 논의들을 통해서 앞으로 진실은 진실대로, 허위는 허위대로 일반에 알려지고,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나서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길 기대합니다.
  5. 가나라임님, 지금까지 누구에 의해서 이렇게 잘못 알려져 있었는지, 무엇이 잘못 알려져 있는지 저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이 조목조목 파악해 보도를 했고요, 애초에 서울시에서 잘못된 보도자료를 내서 홍보를 한 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먼저 파악해 주시길 거듭 부탁합니다. 위와 같이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성락원의 연원, 조성시기를 설파하는 기사나 논문, 보도자료가 먼저 나왔다면 그와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겁니다. 성락원의 조선정원으로서의 가치와는 별도로 애초에 제대로 된 검증없이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점이 언론의 문제제기라는 점을 알아주세요.
  6. 가나라임님, 저는 이것저것 보도자료 짜집기하는 기자 아닙니다. 댓글 남기라고 시킨 사람도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글 함부로 쓰지 마세요. 그리고 향유고래님께선 연구용역 수행과 관련이 없다고 해도 이런 시점에 이런 호도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네요. 더구나 님께서 속해 계신 성북문화원의 상급기관은 성북구청 아닙니까. 황윤명이라는 서예가가 별장 짓고 살았을 정도의 이력이 이렇게 자세히 쓸 정도로 중요하다면 왜 애초에 보도자료내고 언론에 알릴 땐 그점을 강조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언론이 제기한 `핵심`은 이게 아니고 제가 맨아래 댓글에서 쓴 것들 아닙니까. 또 애초에 문화재 지정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는데, 이런 왕실땅 소유내력이 무슨 의미가있습니까
  7. 어쨌건 연구용역 수행한 곳에서 이런 기사 내는 건 처음 보네요. 학자들이 용역 보고서 내고 논문 쓰고 학회 가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해야죠. 아직 연구용역이 마무리된 것도 아닌데 언론에 기사부터 내다니. 누가 시킨 것인지 궁금합니다.
  8. 왜 기사 말미에서 갑자기 앞에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영벽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조선 말에 조성돼 왕실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분명하다`는 확정적 문장이 나오죠? 별장이었던 걸로 보인다, 추측된다도 아니고? 안타깝네요. 추사 김정희 글씨가 남아있는, 왕족이 터를 받아 별궁을 지을 정도로 경치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정도로 보도자료를 냈어도 충분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을 텐데요... 왜 1790년에 조성된 200년 된 정원이라는 둥, 의친왕이 35년이나 살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는 둥, 이조판서(장관급) 심상응이 별장을 지었다는 둥 오바를 한 것인지... 현재 소유주가 심씨다 보니 자기네 조상 중에 주사(정7품)벼슬한 심상응을 끌어들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네요.
  9. 전영자씨 미스 강원 출신인데 어쩌다 저렇게 철없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만나 속 썩고 산 것인지. 이외수 안 만났으면 더 잘먹고 잘살았을 텐데. 44년 무급 가정부 노릇하고 이제야 해방이라니. 이외수는 예전에 티비서 보니 전기밥솥 열 줄도 모르더라. 혼자 살면 굶어죽을 듯. 요리할 줄 모르면 이제라도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그냥 사 먹어라. 부인 무급 가정부 취급 말고.
  10. 누가 민족 자존심을 지킨다는 겁니까. 그것도 다 권력유지, 통치수단으로 하는 정치선전과 구호 남발인데 순진하게 그걸 믿습니까.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듯 북한도 중국에 의존하며 수십년을 버텨왔어요. 소련 무너지기 전엔 소련에 싸구려 담배와 통조림 갖다주고 원유로 받아오며 무역을 가장한 원조로 생존했고요. 또 극심한 양극화에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곳은 다름아닌 북한입니다. 북한에도 계급갈등과 소득불평등이 있어요. 당간부들은 인민들 피빨아 잘살고, 주민은 당국이 내리꽂는 각종 과제와 부역에 허덕입니다. 미국이 봉쇄를 해서가 아니고, 태생적으로 레닌주의 경제모델의 한심한 비효율성 때문인데 김씨일가가 개혁을 안하고 버티니 저모냥인겁니다. 북한지도부와 주민을 구분해서 바라보고, 남한만 양극화됐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