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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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봉렬 기자님, 기사 잘 읽었습니다. '외신'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버릇이나, 홍보자료 베껴쓰기 보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2. 우버 등이 플랫폼 노동으로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을 일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세계의 우버 기사들이 저임금으로 시위를 벌이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지급은 물론, '자유계약'이 아닌 직고용으로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버와 디디추싱 모두 고용악화의 주범이면서도, 수익은 커녕 '조'원 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요. 수익모델도 갖추지 못한 채 주가로 돈을 버는 좀비 기업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득권층 수호에 비판적이신데, 우버야말로 대다수 삶의 질을 악화시키면서 부유한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사업이므로 규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원격진료는 논점에서 다소 벗어난 주제입니다만, 말씀하셨으니 잠깐 말씀 드리지요. 원격진료를 허용한 미국과 중국이 한국보다 의료서비스가 더 좋은가요? 플랫폼 노동과 마찬가지로, 원격진료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돈 많은 사람들은 의사를 직접 만나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저가의 인터넷 진료로 내몰리고 있지요. 앞에서 증기버스가 "마차는 통행조차 할 수 없는 혹한기에도 무리없이 통행할 수 있었으며", "말들은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운행할수도 없었다”고 말씀하시며 증거로 링크를 올려주셨는데, 그곳에서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https://collection.sciencemuseumgroup.org.uk/people/ap22900/hancock-walter 혹시 다음 내용을 그렇게 해석하신 건가요? "...also demonstrated its usability by successfully ascending a frozen slope of 5 degrees where horse-drawn coaches were struggling." (말도 힘겨워하는 5도 경사의 빙판길을 오르는 데 성공함으로써 유용성을 입증했다.) 영국 도시 사이 단거리를 운행했던 증기버스가 '혹한' 상황에서 운행할 일도 없었거니와, 10km 마다 한 번씩 호수나 강에서 물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물이 얼어붙는 혹한기에는 운행하기 어려웠습니다. 보통 말은 화씨 0도(섭씨 영하 18도)까지 일할 수 있고, 시베리아나 몽고에서 기르는 말은 영하 40도까지도 마차를 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쭙습니다. “증기버스가 마차는 통행조차 할 수 없는 혹한기에도 무리없이 통행할 수 있었다”는 원문을 올려주시겠습니까? 또한 증기버스의 통행료가 “점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인상되었고 이것이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과도한 통행료가 폐업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부분의 원문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링크만 올리지 마시고, 해당부분을 복사해서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적기조례의 부당함을 입증하는 내용이라고 올려주신 링크에는 반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학술자료가 아닌 기업 홍보물이더군요.) “The Locomotive Act 1865 was introduced because, on a number of occasions, hefty fines were dealt out to the operators of self-propelled vehicles for driving dangerously on U.K roads. This irresponsible behaviour forced The Locomotive Act 1861 to be improved, putting further pressure on the industry.” “1965년 개정안은 영국의 도로에서 위험한 주행으로 높은 벌금형을 받는 운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도입되었습니다. 운전자들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1861년 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 결과 산업도 압력을 받게 되었지요. [...] 저희들이 귀하의 '붉은 깃발 기수’가 되어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기수가 되어 당신보다 앞서 걸으며 안전을 지켜 드리고…”
  3. 감사히 읽었습니다. 1865년에 제정된 도로교통법이 '적기조례'라고 불린 이유는 속도 등의 규제 이외에, 도시를 진입할 때 보행자나 마차 앞에서 앞에서 붉은 기로 경고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기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규정이 1878년에 사라지므로, "'적기조례'가 1896년까지 유지됐다"는 주장은 명확히 오류에 해당합니다. 위키피디아는 때로 유용하지만, 비전문가도 익명으로 쓰고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신뢰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교통사고가 1869년에 일어났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릅니다. 그보다 훨씬 이른 1834년에 증기버스가 주행중 폭발해 4명의 승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으니까요. “John Scott Russell (1808–1882) also had to close a promising steam-coach business when one of his buses exploded on 29 July 1834, killing four passengers. It was the world's first fatal car accident.”  https://www.explainthatstuff.com/historyofcars.html 이 사고가 있기 전인 1832년에 핸콕의 버스에 설치된 증기 보일러가 폭발해 기술자 리처드 아우트리지(Richard Outridge)가 사망했고, 이 사실이 신문에 대서특필됩니다. 그리고 2년 뒤 4명의 승객이 사망하면서 증기버스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사회 전역에 확산되지요. 실제로 증기기관은 매우 불안정한 동력기관이었습니다. 증기버스뿐 아니라, 증기열차, 증기선 등에서 폭발사고가 빈번히 발생했으니까요. 영국보다 늦게 프랑스에서도 증기버스가 운행되었지만, 역시 기술적 한계로 인해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곧 가솔린 버스로 바꿔 운행했습니다. 이 분야의 가장 정평있는 저서 가운데 하나인 "Moter-Bus Transportation" (Herman C. Schuette 저)의 프랑스편을 인용합니다. "증기차동차는 무겁고, 연료와 물을 자주 보충해야 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주행중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 이유로 증기 버스는 즉시 사라졌고, 그자리를 가솔린 버스가 차지했다." “Heavy steam vehicles, handicapped by their need for frequent supplies of fuel and water and destructive action upon roads, soon disappeared, and in their place came the mobile gasoline-driven bus.” (p. 16 “France.”)
  4. 아래 @이장주 님의 글에 대한 답변을 참고해 주십시오.
  5. 첫 문단의 '1978'년은 '1878'년의 오기입니다.
  6. 잘 읽었습니다. 먼저 신뢰할 만한 자료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위키피디아는 이른바 '붉은 깃발법'에 대한 오류를 확산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이거니와, 위에 올려주신 위키 자료에도 (1978년에 법개정으로 사라진) '적기조례'가 1896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잘못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영국의 월터 핸콕은 1833년 세계 최초로 증기버스를 운항하기 시작했지만, 이 실험은 1840년에 끝납니다. '붉은 깃발법'이 입안되기 15년 전의 일이지요. 도로 증기운송기관이 마차보다 높은 통행료를 내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버스사업을 접게 만든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과 안전 문제였습니다. 증기버스 역시 (이후에 등장하는) 증기트랙터와 유사하거나 더 심각한 문제(폭발위험, 비효율, 소음)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아래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증기버스는 고르지 못한 길에서 운항하기 어려웠고, 6마일(9.5km)마다 호수나 강에서 물을 채워넣어야 했습니다. "The steam bus, a brand-new technology, encountered trouble on even slightly rough terrain. The steering was rough, and on early models drivers needed to stop and haul water from a nearby pond or stashed water source every six or seven miles to keep the steam going."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steam-buses-horse-carriages-fight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안전 문제였습니다. 이미 증기실린더 폭발과 오작동 사고로 많은 희생자를 냈던 터라, 승객들이 증기실린더와 객차가 붙어있던 버스를 기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940년부터 증기기관과 객차를 분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그 결과로 진화한 것이 증기트랙터입니다. 증기트랙터라는 '동차'에 객차나 화물차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운항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증기트랙터는 기존 일체형 버스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통행료를 말씀하셨지만, 영국은 이미 17세기부터 마차의 종류, 말의 두수, 마차 바퀴의 크기에 따라 차등화된 통행료를 징수해 왔고, 증기운송기관에 대한 차등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얼마나 도로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도로에 얼마나 큰 무리를 주며, 다른 운행수단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고속도로통행료는 자동차 크기와 종류에 따라 차등부과합니다.) 당시 영국의회가 증기운행수단를 바라본 방식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이 새로운 기술이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으니까요 (4페이지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https://play.google.com/store/books/details?id=KLGO3hMOWdYC&rdid=book-KLGO3hMOWdYC&rdot=1 '영국의 규제가 내국 자동차 산업을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의 부당함은 기사도 다루고 있습니다만, 높은 통행세나 '붉은 깃발법'과 상관없이 영국 증기자동차는 20세기 초까지 계속해서 만들어졌고, 계속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물과 연료를 동시에 실어야 하며, 고압의 보일러를 가동시켜야 하는 증기기관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결국 사라지고 말지요.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전기자동차와 가솔린 자동차였습니다. 이 현상은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나 미국 등 다른 증기자동차 강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포드도 증기자동차를 만들었지만, 한계를 깨닫고 결국 이 분야에서 발을 떼고 맙니다. 결국 증기자동차의 소멸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증기를 사용한 외연기관의 기본적 한계때문이었습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만, 열린 마음과 신뢰할 만한 자료를 가지고 토론하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7. 책 제목입니다 - “Platform Economics: Rhetoric and Reality in the ‘Sharing Economy.’” (Eds.) Cristiano Codagnote, et al.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