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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눈길 닿은 곳마다 목련이 피고, 벚꽃이 흐드러져 한참 호사를 누렸다. 이제는 봄잔치가 슬슬 마무리되려나 싶었는데 겹벚꽃까지 만개하여 꽃잔디와 함께 여전한 축제를 벌이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꽃바람 흩날리고, 햇빛 따사로운 이 좋은 계절에 둘째딸이 태어났다. 아이 태어나던 26년 전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어엿하게 해내니 감사할 뿐이다.

20대 중반, 내게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딸
 
벚꽃(자료사진)
 벚꽃(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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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꽃같이 아름다운 날, 생일을 맞이한 둘째 얼굴이 그리 밝지 않다. 워낙 유쾌하고 활달한 아이라 어느 때보다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태어남을 축복하는 '생일' 즈음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크다.

둘째가 근무하는 곳은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라는 곳이다. OECD 가입국 중, 자살률이 최고라는 국제적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 만든 사업의 일환으로 발족한 곳이다.

둘째는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의 사례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병원에 자살 관련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치료를 연계하고 복지팀(사례관리팀)과 의료진(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과의 협업을 통해 생명존중을 심화하고 자살시도자의 심리 및 안정을 돕는 일을 한다고 들었다. 자살시도자에 대한 치료 서비스와 자살 재시도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자원연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는 가치 있는 업무를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엄마로서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아직도 20대 중반의 앳된 딸이기에, 우울과 좌절을 가득 안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매일 만나 상담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만 봐도, 국내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연령대는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전 세대에 걸쳐있다. 이들의 자살 시도 이유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병원뿐만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자살위기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안타깝게도 그 관리 대상 학생들이 있기에 늘 둘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자살시도 사례자를 관리하는 일은 참 만만찮다. 상담 후 예후가 좋은 사례자들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자살 징후가 옅어진 사례자의 감사 전화에 환한 미소만 지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상담 뒤에도 끝내 목숨을 끊은 이의 마지막 소식을 전해 듣거나 지속적인 지역관리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할 때, 또는 상담을 청해오는 이들의 좌절과 고민 앞에서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둘째는 그럴 때 느끼는 무력감에 상심이 큰듯하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니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고 체력적으로도 지쳐,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하는 일이 살짝 버거워진 것 같았다. 

생일 당일, 둘째는 외근으로 조금 늦는다며 위촉장(위기청소년의 조기 발견 및 지역사회안전망 서비스 제공 협력을 위한 실무위원회)을 보여 주었다. 미역국을 먹고 출근하는 모습이 아침부터 지쳐 있었다.

나도 종일 일하고 퇴근한 터라  다소 피곤하고 분주한 저녁 시간이지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 두어 가지를 만들기로 했다. 바로 LA갈비와 삼색꼬치전이다. 지난 설에 갈비를 만들지 않아 못내 서운해하던 둘째를 생각하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LA갈비 2Kg을 준비에 찬물에 핏물을 뺀다. 기름진 부위를 떼어내고 물을 갈아가며 맑게 만든다.
- 양파(1개)와 배(1/2개)를 간다.
- 양념(간장 200ml+ 설탕 60g+올리고당 30g+ 탄산수 1/2c+소금, 후추, 참기름)을 만든다.
- 핏물 뺀 갈비에 양념과 간 양파와 배를 넣고 버무려 냉장고에 하루 정도 숙성한 후 굽는다.
 
자살시도자의 사례를 관리하는 업무로 지친 딸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생일을 맞아 소소한 음식을 준비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 딸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서둘러 만든 LA갈비구이와 꼬치전 자살시도자의 사례를 관리하는 업무로 지친 딸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생일을 맞아 소소한 음식을 준비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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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맛살, 햄 등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삼색꼬치 전은 명절마다 둘째가 담당하는 요리다. 쪽파와 꽈리고추를 추가해 한 접시만 후다닥 만들었다. 

음식을 마주한 둘째의 표정이 환해졌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LA갈비와 꼬치 전은 이미 둘째에게 진한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일상에 지친 둘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퇴근 후 지친 몸이나 설거지거리들이 쌓여 어지러운 주방 같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게 느껴졌다. 

문득, '누군가 나를 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먹거리 하나를 만들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충분한 용기를 얻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둘째가 가져온 자살예방키트 파우치가 눈에 들어와 물었더니, 그 쓰임과 효과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해준다. 심신 안정(숙면)을 위한 핸드크림, 피로를 푸는 마사지볼과 아로마오일 등. 이 작은 물건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생일 밥상을 먹고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바뀌어서는, 내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둘째딸을 꼭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사랑한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서 견디며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특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생명 또한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절대 잊지 말기를. 네가 지칠 때 항상 네 옆에 있을게, 맛있는 거 같이 먹자.

덧붙이는 글 | 송고 후 개인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생명존중, #자살예방, #생일축하,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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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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