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의 1주 차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2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코첼라는 대중음악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무대다. 지난해에는 걸그룹 블랙핑크가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로 공연하는 등, 최근 부쩍 한국 음악 팬들에게도 꽤 익숙해졌다.

올해에도 많은 한국 아티스트가 코첼라 무대에 섰다. 페기 구(Peggy Gou)는 이 무대에서 자신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는 디제이임을 입증했다. 한국의 멋을 강조한 보이그룹 에이티즈, 록밴드 더 로즈 등도 능숙한 퍼포먼스와 연주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비비와 타이거 JK, 윤미래는 레이블 88 라이징의 특별 스테이지 '88 라이징 퓨처스 스테이지'에 오르며 다시 코첼라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올해 코첼라 무대에 오른 한국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주인공은 걸그룹 르세라핌일 것이다.

르세라핌은 지난 14일, 코첼라 사하라 스테이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데뷔곡 'Fearless'를 비롯해 'Antifragile',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 등의 대표곡을 선보였다. 신곡 '10800-hot-n-fun' 역시 이 무대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Unforgiven'을 부를 때는, 이 곡에 피쳐링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마침내 조우하기도 했다. 르세라핌의 멤버들은 '꿈의 무대'에 섰다는 기쁨을 한껏 드러냈다.

데뷔 1년 반만에 세계 최대의 무대에 섰지만, 대중의 여론은 험악했다. NME, 빌보드 등의 해외 음악 전문 매체는 르세라핌의 공연을 성공적이라 칭찬했지만, 유튜브 중계를 통해 르세라핌의 공연을 지켜본 음악 팬들의 감상은 달랐다. 기대 이하의 공연을 선보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코첼라는 주요 공연을 유튜브로 생중계한 첫 번째 뮤직 페스티벌이다).

두 마리 토끼 잡지 못한 르세라핌
 
 그룹 르세라핌이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세 번째 미니앨범 '이지'(EASY) 발매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룹 르세라핌이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세 번째 미니앨범 '이지'(EASY) 발매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화려한 오프닝 영상, 밴드 연주와 함께 등장한 르세라핌은 보컬과 춤에 모두 역점을 두었다. 낯선 야외 페스티벌 무대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힘찬 추임새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격렬한 춤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르세라핌은 여러 차례 허점을 드러냈다. 메인 보컬 허윤진과 리드 보컬 김채원을 제외한 세 명의 멤버(카즈하, 홍은채, 사쿠라)의 보컬은 불안했다. 이들의 작은 목소리는 번번이 밴드 사운드에 묻혔고, 음정도 불안했다.

결국 공연 후반에는 과부하가 누적되었다.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곡인 'Fire In The Belly'에서는 다섯 멤버 모두 일제히 무너졌다. 한편 르세라핌 특유의 퍼포먼스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하이라이트 안무는 조명과 드라이 아이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르세라핌이 최근 국내 음악 방송의 앵콜 무대에서 여러 차례 가창력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에, 비판 여론은 더욱 거셌다. 네티즌들은 음 이탈이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재생산했다. 안정적인 댄스 라이브를 선보이는 타 아이돌 그룹의 영상에는 "르세라핌 대신 이 팀이 코첼라에 가야 한다"는 댓글이 자주 보다. 르세라핌의 사쿠라는 험악한 여론을 의식한 듯, "누군가의 눈에는 미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완벽한 사람은 없고 우리가 보여준 무대 중 최고의 무대였다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라며 소회를 고백했다.

3세대, 4세대를 거치면서 케이팝은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화되었다. 섬머소닉 등 아시아 페스티벌을 벗어나 코첼라, 글래스톤베리, 롤라팔루자 등의 영미권 초대형 해외 페스티벌에서도 케이팝 아티스트가 얼굴을 내민다. 앞으로 더 많은 페스티벌 무대에 케이팝 아티스트가 오를 것이다. 야외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공연은 국내 음악 방송이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이는 퍼포먼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르세라핌의 이번 공연은 르세라핌과 하이브, 그리고 케이팝 산업 전체에 많은 숙제를 남긴다.

그들은 어떻게 역경을 극복할까

지난해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유니버스 티켓'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가수 겸 배우 김세정은 "걸그룹한테 그렇게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무대에서 그 실력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모든 아이돌 그룹이 우수한 가창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케이팝은 보컬과 퍼포먼스, 외모, 세계관과 기획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채 소비자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산업이다.

이 과정에서 멤버마다 맡은 역할도 다르다. 따라서 '가수는 노래를 잘 해야 가수다'라는 도식이 언제나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단점을 최소화한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번 코첼라 공연은 케이팝이 제공해야 할 '완성형'의 환상을 채워주지 못했다.

코첼라에서 100% 라이브를 펼쳐야 한다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멤버들의 보컬 실력이 부족하다면 밴드 라이브와 AR을 어느 정도 혼합해 가며 퍼포먼스에 집중한 공연을 펼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안무를 줄이고 가창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퍼포먼스형 팝스타들도 모든 순간 춤을 추지는 않는다. 르세라핌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실패한 셈이다. 멤버들의 기량은 물론, 기본적인 공연 기획 단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르세라핌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 가운데에 있지만, 만회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 코첼라 페스티벌은 거의 동일한 라인업으로 2주에 걸쳐 진행된다. 르세라핌은 다가오는 20일(현지 시각), 두 번째 코첼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다친대도 길을 걷는다'는 'EASY'의 가사처럼, 르세라핌은 역경의 극복을 팀의 주된 콘셉트로 삼아왔던 팀이다. 이들이 지금 맞이한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코첼라 르세라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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