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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편집자말]
이별은 언제나 어렵고, 매번 낯설다. 이건 아무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의 이별인 '치료 종결'이, 치료가 완료돼서라기보다는 기간의 경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인 듯하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환자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전원을 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치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목표만큼 도달했든 그렇지 못하든 전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종결이 되는 시점이 온다.

이 이별, 그러니까 전원으로 발생되는 '치료 종결' 은 내가 이 일에 종사한 지 꽤 오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익숙해지지 않고, 어색하다. 아마도 회복과 좋아짐으로 되는 치료 종결보다 치료가 더 필요하지만 퇴원으로 인한 강제 이별, 즉 나와의 치료가 종결이 되는 상황이 더 많았기 때문인 듯하다.   

오늘도 퇴원하는 환자와 마지막 치료를 하고 나서, 문득 1년 전 이 환자와 이름이 비슷한 환자 '영자씨(가명)'가 생각났다. 1년 전 그날도 영자씨와 나는 퇴원으로 인한 치료 종결을 했었는데, 좀 더 치료하고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영자씨는 뇌암이 걸려 딱 거기, 우리의 뇌 중에 베르니케라는 자리에 암이 생긴 분이다. 그래서 뇌암이면서, 베르니케 실어증과 아주 유사한 언어적 양상을 보였다(관련 기사: 치료사에게 욕하는 환자를 대하는 법 https://omn.kr/276lv)

영자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증상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치료 상황은 대부분 이런 맥락 없는 대화의 반복이었다. 가령 내가 "영자씨~" 하면 영자씨는 "네" 하고 대답하신다. 그래서 내가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그다음 대답은 "아이고 그랬다. 와그카노. 이제 어서 가자." 이런 전혀 상관없는 생뚱맞은 말을 하시는 거다. 

한두 번 치료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시간 중에 대부분의 우리 대화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치료사가 할 일은 이런 속에서 말의 가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니 꿋꿋하게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따라 말하기를 시키면서 치료했고, 그 시간이 어언 한 달이 다 되었다. 보호자가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면서 내일 퇴원이라고 말해주었던 날은 영자씨가 1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게 된 날이었다.  
병원(자료사진)
 병원(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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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씨는 '시각 실인증'도 있는데 그래서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안 보이거나 시각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지만,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손의 감각을 이용하거나 청각적 자극을 활용해서 접근했다. 안타깝게도 베르니케 실어증의 특성상, 소리는 들리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산 넘어 산인 식이었다.

"영자씨"
"네" (이 대답은 늘 기똥차게 잘 하시곤 했다.)
"자, 지금부터 영자님 이름을 말해보는 거예요. 영자님 이제 제가 말씀드리는 걸 잘 들으시고, 똑같이 따라 하셔야 해요.~ "
"김" 
"김"
"영"
"영"
"자"​
"자"​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영자씨가 내 말을 따라 했다.

"우와~ 방금 제 말을 똑같이 따라 하셨네요~! 정말 잘하셨어요!!! 최고! 최고! 우리 같이 파이팅도 말해봐요"
"파"
"파"
"이"
"이"
"팅"
"팅"
"어머, 어머(이쯤이면 내 호들갑은 하늘을 찌를 수준이다)~~ 김영자 님!! 너무 멋쩌요~~~~!!!! 자, 자, 이제 다시 제 말을 자~알 듣고 대답해 주세요.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김영자"​
"어머 어머 어머"


이런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애당초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너무 놀라서, 이 순간의 감동에 빠져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쳤다. 내가 박수를 치자 같이 박수를 따라 치는 그 분을 보며 나는 더더 신이 났다.

"너무너무 잘 하셨어요. 그래요. 환자분 이름이 '김영자'이죠. 세상에나~~ 드디어 이름을 제게 잘 말해주셨네요. 너무 좋아요. 영자씨~"

이 치료가 퇴원 전 마지막 치료라고 영자씨가 선물을 주고 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는 내 마음이 좀 가벼우라고 말이다. 다시 치료가 이어졌다.

"영자씨~"
"네."
"영자씨 이제 우리 이 물건의 이름을 말해볼까요? 이 물건의 이름이 뭘까요?"


나의 말이 무색해지게 영자씨는 갑자기 전혀 다른 주제를 꺼낸다. 

"정아, 이제 갖고 가자. 이래서 안카나. 가자. 아까 밥도 안 주고"
"네? 뭐라고요?"
"밥 먹고, 하나 더 먹자. 이거 갖고 가야지, 안가나"
"네? 영자씨~"
"그케가꼬 울지 마라. 울지 말라꼬~"


결국 맥락 없는 우리의 대화로 마지막 치료가 끝이 났다. 그래도 여러 번의 언어치료 날들 중에 드디어 내게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라 말하고, 자신의 전체 이름을 말하다니.... 내게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환자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간의 치료시간의 대부분은 맥락 없는 대화와 주고받기가 통하지 않는 시간들이었더래도, 언어치료의 과정 속에서 영자씨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거다. 1음절씩이라도 따라 말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었고, 오늘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 심지어 따라 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대답까지 했지 않는가 말이다.

세상에나~ 이럴 수도 있구나. 이제야 긴 터널을 지나서 조금씩 언어적 자극과 촉구들이 먹혀 들어가기 시작하는건가 싶었다. 

수백 명의 베르니케 실어증 유형의 환자를 만났지만, 늘 어려웠다. 듣지 않는 사람,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니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떤 날은 진이 쏘옥 빠질 만큼 힘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주 어쩌다가, 환자가 마법의 한순간처럼 내 말을 알아듣고 정확한 반응을 할 때는 늘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치료사인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백번 경험해도 백번 다 감동이었던 것 같다.

나의 영자씨는 뇌졸중으로 발생한 실어증 환자와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정말 신기할 만큼 깔끔한 구문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종종 눈앞의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고(물론 실어증 환자도 이럴 수 있지만)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따라 하지 않았다. 그랬던 영자씨가 노래의 첫 음절 정도는 따라하게 된 것이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들처럼 치료사를 통한 적절한 언어적 자극이 정확하게 환자에게 들어갈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화를 내지 않고 내가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 하면 "어이구 그랬나~" 하고 종종 상황에 맞는 대답도 해 주시는 분이라, 왜인지 말하기 양상이 다른 이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드디어 오늘, 이름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신 것일지도.

안타깝지만 영자씨의 뇌암은 공격적인 암이라서 이 이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제발, 제발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벌써 약 1년 전 일인데도 오래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나의 영자씨. 그 후론 다시 못 뵈었지만, 어디에 계시던 어서 좋아지셔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각색해서 다시 올린 글입니다.


태그:#뇌암, #인사, #나의영자씨, #베르니케실어증, #실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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