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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산 태조봉 아래 너덜바위 둥구터 어귀
 성수산 태조봉 아래 너덜바위 둥구터 어귀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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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성수면에는 아침재, 왕방리, 수천리, 상이암과 삼청동 등 여러 지명과 유적지가 고려말 황산대첩의 주인공인 이성계 장군의 역사와 설화를 전승하고 있다. 아침재에서 왕방리를 거쳐 수천리에 이르는 태조로(太祖路)는 성수산 왕의 숲에 연결된다.

성수산의 구룡쟁주 명당터를 품은 삼청동 계곡은 유서 깊은 천 년 고찰 상이암과 태조 기도터가 있다. 이 산의 성문동 계곡은 태조봉(905m)으로 곧바로 이어지는데, 길은 끊겨 있고 한적하다. 3월 말, 진달래의 연분홍 꽃잎을 반기며 성문동 계곡 입구에서 물길 따라 바위들을 넘어서 태조봉으로 올랐다.

태조봉으로 오르는 성문동 계곡 약 1.5km 구간에서 계곡 물길이 끊어지고 한참을 오르면, 폭 70m 길이 200m의 넓은 너덜겅 지형이 나타난다. 완만한 경사로 계곡 따라 둥글게 말아 올라가며 평평한 지형이어서 등구터라고 전해 온다. 가파른 바위 능선이 좌우로 천연 성채를 이루었고, 넓은 둥구터에 자리한 수많은 너덜바위에는 선태식물과 지의류가 튼실하게 자리 잡았다.

지역에서 구전되는 향토 지명
 
둥구터 너덜바위 선태식물
 둥구터 너덜바위 선태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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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현의 향토 읍지인 雲水誌(운수지, 1730년) 산천조(山川條)에 '현의 동쪽에 위치한 성수산은 성적산(장수 팔공산)의 기세가 처음 뭉친 곳이다. 그 형세가 특수하고 영험하고 기이함이 가장 드러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청동 계곡의 구룡쟁주의 형세는 천 년 전부터 명당의 명성을 이어왔다. 고려와 조선을 건국한 왕건과 이성계가 이곳에서 '왕이 되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 설화는 백성들의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염원과 새 왕조 건국의 정당화인 용비어천(龍飛御天) 의도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전승되었다.

성문동 계곡의 태조봉 아래 등구터는 현재까지 거의 숨어있는 영역이다. 태조봉(905m)을 비롯한 연봉들이 높은 산마루로서 즐비하고, 계곡을 좌우로 호위하며 내려뻗은 암릉이 천연의 성채로 우람하다. 너덜겅 지형의 수많은 바위들이 너른 등구터를 형성하였다. 이곳 등구터 지형에서 태조봉, 천연 성채의 암릉, 너덜바위 등구터를 국가 성립의 3요소인 주권, 영토와 국민을 상징한 지형으로 대응시켜 보았다.
 
둥구터 너덜바위 지의류
 둥구터 너덜바위 지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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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봉 아래 등구터는 험한 암릉을 자연 성곽 삼아서, 평온하고 넓은 터전이다. 1907년부터 전국적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불길처럼 일어날 때, 임실 이석용 의병부대가 이곳 성수산에서 출발하여 진안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석용 의병장의 의진일기에는 그가 이끄는 의병 부대가 이곳 성수산 등구터로 추정되는 장소에 머물러 의병 부대를 다시 편성하고 부대 훈련을 하였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군사를 정돈하여 성수산에 올라갔다. 다시 부대를 편성하고 선봉 김운서를 중군으로 삼았다. 상이암에 당도하여 점심을 먹었다. 재를 넘어 팔공산 서쪽 비탈을 지났다. (정재선생호남창의록(靜齋先生湖南倡義錄) 1907년11월14일 기록)
 
둥구터 너덜바위 지의류(dog lichens)
 둥구터 너덜바위 지의류(dog lich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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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산에서 성문동 계곡 지명은 고문헌 기록에 나오지 않고, 지역에서 구전되는 향토 지명이다. 물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의 성문동(聲聞洞)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석문이 있는 골짜기인 석문동(石門洞)에서 성문동으로 음운 변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태조봉 아래 자연 성채에 자리잡은 둥구터를 보면서 성문동(城門洞)으로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성문동 계곡에 예전에는 인삼을 재배한 삼밭골이 있었고, 계곡 중간에 돌로 쌓은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봄이면 산나물과 약초를 캐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성수산에 임도가 뚫리면서 성문동 계곡은 오랜 침묵에 잠겨 들어 잊힌 영역이 되었다.

성수산이 하늘의 계시를 받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영웅 설화의 장소로 알려졌는데, 태조봉 아래에서 나라의 기본이 되는 백성들의 삶의 터전인 마을의 의미를 간직한 지명인 둥구터를 재발견할 수 있어 의미가 새로웠다.

오래된 마을에는 으레 둥치 큰 정자나무가 있어서 둥구나무라 불렀다. 둥구나무는 그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의 공동생활이 펼쳐지는 두레의 터전이었다. 둥두렷한 고갯길을 둥구재라고 했단다.

임실 성수산의 등구터에는 정겹고 향토적인 정서가 머물러 있었다. 둥구터 너덜바위에 자리 잡아 세월과 풍상을 이겨내고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선태식물과 지의류가 성수산 역사와 설화의 진정한 주인으로 보였다.
 
성수산 등산지도(태조봉 성문동 등구터 표기)
 성수산 등산지도(태조봉 성문동 등구터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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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사 "임실 성수산 깃대봉에서 떠올리는 일제의 침략 역사(24.03.24)"의 내용과 관련됩니다.


태그:#임실성수산태조봉, #성수산태조봉둥구터, #임실성수산삼청동성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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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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