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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응급차가 환자이송을 준비하는 모습(자료사진).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응급차가 환자이송을 준비하는 모습(자료사진).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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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었다. 바닷가 돌 위에서 놀다가 넘어져 이마에 깊은 상처가 났다. 피가 많이 났고 어렸던 나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날 생애 처음으로 구급차를 탔던 기억이다.

어릴 때부터 구급차는 몸이 매우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만 타는 것이라고 배웠다. 커서 어른이 돼, 소방관이 됐을 때 구급 출동하면 출동의 절반 이상은 응급환자를 처치하고 병원으로 이송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내 생각은 틀렸다. 당시 구급 출동의 절반 이상이 비응급 출동이었다. 이가 시리고 아프거나 감기에 걸려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고 했다. 단순 치통이나 감기는 생명의 즉각적인 위협이 올 확률이 적기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보다 병·의원 진료를 받는 게 좋다고 안내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시민들이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의 차이를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응급환자란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로 급성 의식장애, 급성 신경학적 이상,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 급성 호흡곤란, 급성 심장질환, 중독, 급성 복부 질환이 있는 환자를 말한다. 비응급환자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에 따르면 단순 술 취한 사람, 단순 치통, 단순 감기, 단순 타박상, 만성질환자 검진 또는 입원 목적에 해당하는 환자를 말한다.

대부분 시민은 몸이 아파서 구급차를 이용하지만, 일부는 비응급인 것을 알고도 119구급대가 무료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술을 마신 뒤 병원 이송을 요구하거나 외래 진료를 위해 택시처럼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반말하다가 태도 바뀌던 40대 남성의 기억 

내가 5년 전쯤 119안전센터에서 소방관으로 일할 때였다. 상황실로부터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으니 구급 출동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신고 내용은 더운 여름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신고했다고 했다. 구급차를 타고 현장으로 갔다. 횟집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서 40대 남성이 새우처럼 쪼그려 누워 때굴때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나 지금 너무 아프단 말이야. 구급차가 왜 이리 늦어? 기어 왔냐?"
"죄송합니다. 몸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가면 된다며 배를 움켜잡고 걸어서 구급차에 탔다. 구급차 침대에서도 배가 아프니 귀가 아프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빨리 병원으로 가자던 그였다. 그런데,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하자 그의 태도는 갑자기 180도 바뀌었다.

그는 설사가 나올 것 같다며 잠시 화장실로 갔다 온 뒤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그가 향한 곳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배가 아프다'라고 했던 말은 쏙 들어간 채로 그는 화장실이 아닌 병원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서 물었다. 돌아온 답이 가관이었다.

"선생님, 아까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나 이제 배가 안 아파. 이제 집에 가도 되지?"


그의 태도에 황당했다.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한 것이었다. 병원 정문 앞에서 이송 거부 확인서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 속에서 불이 났다. 비응급환자 이송으로 같은 지역에 또 다른 응급환자가 발생했으면 어떠했을까?

이런 비응급환자나 상습 이용자에게 택시나 다른 이송 수단을 안내해 보지만, 구급대원에게 돌아오는 것은 민원과 언어폭력이었다. 이송 거절에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 경찰과 소방서의 제도를 활용하는데도, 실제 거절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악성 민원으로부터 구급대원을 보호하는 법도 정착되어야 한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분위기도 바뀌어 가고 있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5년 전에 비해 지금은 소방기본법을 개정해 허위 신고 시 과태료 상한을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여 법적 처분도 강화되었다. 벌칙 강화로 비응급상황 요청 사례가 감소하길 기대해 본다.

경증 환자의 119구급차 이용이 응급환자 황금 시간 확보에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응급실은 마비 상태이다. 비응급인데도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하게 되면, 정말로 피해를 보는 것은 시가 급한 응급환자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태에서 응급환자는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비응급환자 진료로 응급실에서는 더 이상 응급환자를 받아낼 여력조차 없다. 결국 제2의 응급실 뺑뺑이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비응급환자는 병·의원을 이용하도록 홍보하고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이용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비응급 구급 출동으로 정작 필요할 때 119구급대의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의 생명이 생존의 갈림길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비응급환자, #구급차이용,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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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시민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츄러스 작가입니다. 오늘하루도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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