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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대리기사의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한 움큼의 희망을 얻어 가시길.[편집자말]
대리운전을 하는 차 안의 공기는 대부분 고요하다. 손님과 정다운 대화 같은 것을 주고 받는 일은 거의 '사건'이라고 부를만치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서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일상이다.

대리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개인의 성향이 감히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손님 오늘 아주 기분 좋게 드셨나봐요?'라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로 대화를 시도한다?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이것이 개인의 성향보다 더 큰 중력일지도 모르겠는데, 주체성이 상실 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태운다고 해서 본인의 주체성이 상실되지 않는다. 택시는 손님이 주체가 되어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택시라는 차 자체는 택시기사의 소유(회사 포함)이니, 타인의 공간으로 손님이 들어가는 셈이니 말이다. 얼마든지 손님에게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대리기사는 다르다. 이것은 완벽한 타인의 공간으로 착륙하는 일이다. 내 차가 아니다. 앉는 순간 운전대만 내가 잡았을 뿐이지 주체성은 아득히 상실된다. 말은 주체성이 선명할 때 날개를 달곤 하니, 침묵이 자연스러운 옷이 될 뿐이다. 성향상, 정황상, 불편한 일은 결코 아니다. 살짝 묘한 구석이 있을 뿐이다. 다만, 가끔 앞서 말한 '사건'이 일어난다.
 
운전하는 풍경
 운전하는 풍경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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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혹시 뭐하시는 분이세요?"

대리기사를 하면서 받았던 가장 이상한(?) 질문이다. 나는 지금 뻔히 당신의 차를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데 뭐하시는 분이냐니.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닌 본질을 묻는 질문인걸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함의다. 첫째, 대리기사라는 일은 '주업'이라기 보다는 '부업'이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본다면, '낮에는 주업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내가 동안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보다 5살 정도는 어려보이는 동안이어서, 그리고 운전을 할 때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보니 거기서 더 어려보이는 보정 효과가 일어났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되는 것 같다. 즉, 해석해 보면 '이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확실히 어려보이는데 혹시 어떤 사연이 있나요?' 정도가 되겠다.

'주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나는 누구일까. 목사일 수도 있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일 수도 있고, 인생을 배워가는 학생, 글을 쓰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 주로 애용하는 '나'는 작가다(목사인 나는 지금은 딱히 교회나 기독교 문화권에서 적극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좀 희미한 편이고, 목사라는 직업이 워낙 종교적 프레임이 강한 직업이다 보니 말하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말을 들은 손님들은 마치 무릎을 탁 치며 '역시, 사연이 있었군'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라는 이름은 꽤 그럴싸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이름으로 트여버린 대화의 물꼬는 즐겁기도 했다.
 
작가
 작가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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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손님은 자신도 글을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면서, 지금은 노년을 맞이해서 한국에 있는 모든 산들을 다 등반하는 것을 목표로 돌아다니는데 그 여정들을 글로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읽어주시기까지 했는데 나는 무척 좋은 글이라고 꼭 계속 쓰시라고 했다. 내릴 때는 '오늘 작가님을 만나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라고 하시며 명함과 팁까지 주셨다.

어떤 손님은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협지를 읽으며 자라왔고, 지금은 웹소설 마니아라고 하면서 나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그런 영역도 열어놓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몇 개의 스토리들을 들려드렸는데, 너무나 좋다고 하시면서 이런 부분이 보완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도 주셨다. 이 손님은 집이 무려 양평의 어느 깊은 곳에 있었는데, 나갈 때 꼭 택시를 타고 가라며 택시비와 팁까지 챙겨주셨다.

자주 찾아올 리 없는 행운 같은 일이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주체성 상실의 연속인데, 이런 경험은 주체성을 더 진하게 만들어준 것 같은 기분이다. 문득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 듯 '그래서 나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었나?'가 따라온다.

수많은 꿈들이 있었다. 변호사, 축구선수, 호텔리어, 관광가이드, 등등. 꿈은 돈이라는 현실에 거세게 부딪히며 낭만을 잃어버린, 그러나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업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바뀌었다. 다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진짜 나의 꿈은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었다.

"Who Am I and So How Many? _ 나는 누구이며, 또 몇 명인가?"라는 독일의 속담이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 속담을 말하며, 자신은 작가, 기자, 방송인 등 여러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제일 사랑하는 김중혁은 '소설가 김중혁'이라고 했다.

여러 명의 김중혁 중에서 소설가 김중혁을 가장 좋아하기에 제일 아껴주고 싶고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김중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좋아하지 않더라도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평생 돈 걱정 없이 글만 쓰도록 '지켜주고 싶다'라고 했던 말이 무척 감동적이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나의 대리운전'에 제일 어울리는 옷은 주업이나 부업이 아닌 '생업 –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겠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쓰는 나를 지켜주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그 지켜주고 싶은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지켜주고 싶은 내가 언제까지나, 여전히 제법 괜찮은 나이길 바란다.
 
쓰는나
 쓰는나
ⓒ 김정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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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리운전, #김대리, #대리기사, #대리, #달려라김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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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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