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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미군 항공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로, 고사포는 항공기를 사격하는 데 쓰는 양각이 큰 포를 말한다. 고각포라고도 한다. 1937년에 구축한 고사포 진지를 1943 년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정비 했다.
▲ 제주 셋알 오름 일제 고사포진지 일제 강점기에 미군 항공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로, 고사포는 항공기를 사격하는 데 쓰는 양각이 큰 포를 말한다. 고각포라고도 한다. 1937년에 구축한 고사포 진지를 1943 년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정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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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알뜨르는 앞에 있는 벌판을 의미한다. 알은 '앞', 뜨르는 '들'에서 어원이 유래한 것 같다. 어렸을 때 고향에 가는 걸 '들'에 간다는 말을 쓰곤 했다. 절울이 오름(송악산)에서 최남단 해안로를 건너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한다.

태평양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은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 송악산 등 제주 전역에 진지동굴, 지하벙커, 비행장 등 군사 시설을 세운다. 송악산 일제 동굴진지 15 개소, 송악산 외륜동굴진지와 알뜨르에 조성한 비행장 등이다.

송악산 북쪽에는 알오름이 세 개가 있다. 동쪽 것을 동알오름, 서쪽 것을 섯알오름, 가운데 것은 셋알오름이라 한다. 셋알오름으로  향했다. 일명 바람의 언덕이다. 왼쪽으로  '제주 셋알 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있다. 

'제주 셋알오름 일제 동굴 진지'는 격자 미로형으로 구축되어 있고, 내부는 전투 사령실·탄약고·연료 보관·통신실 등 중요 군사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붕괴 위험이 있어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

처음에는 동굴 진지 이름 때문에 헷갈렸지만, 금방 이해가 된다. 제주 송악산 일제 동굴진지, 제주 송악산 외륜 일제 동굴진지처럼 일제 동굴진지에 지명이 들어간다. 유적지나 문화유산 답사 시, 해설사와 함께 하거나 안내판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여행기를 쓸 때 참고한다.

동굴진지에서 조금 가다 보면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고사포 진지' 앞이다. 고사포 진지는 일제 강점기에 미군 항공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다. 1937년에 구축하고, 1943년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정비했다. 국가 등록문화재 31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자리... 진혼비 세운 유가족들
 
뜨르 비행장 탄약고가 있는던 자리. 4.3 사건이 벌어져 많은 사림들이 희생을 당한 곳. 예비검속으로 집단 학살이 일어난 곳.
▲ 알뜨르비행장탄약고 뜨르 비행장 탄약고가 있는던 자리. 4.3 사건이 벌어져 많은 사림들이 희생을 당한 곳. 예비검속으로 집단 학살이 일어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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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또 하나의 아픈 현장이 있다. 섯알오름에 있는 탄약고 터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알뜨르에는 집단 학살이 일어난다. 제주 계엄 당국이 민간인을 법적 절차 없이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소위 '불순 분자'를 색출하기 위한 예비검속에 의해서다. 이를 '예비검속 섯알 오름 집단 학살' 사건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생각지도 않게 마을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집단학살 희생자 유족이라는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과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섯알오름 양민 252명이 공권력에 의해 집단 학살 당했고, 2015년 국가가 책임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났다고. 명예를 회복하고, 이곳에 명예회복 진혼비를 세웠단다.

알뜨르 비행장 탄약고가 있었던 자리다. 해방 후 미군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다. 탄약고를 지을 때 제주도민들이 피땀 흘려 일하고 해방 후에는'제주 4.3 사건'이 벌어져 많은 사림들이 이곳에서 희생을 당했다. 그리고, 예비검속으로 인한 집단 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농민들이 임대하여 놓사를 짓고 있는 알뜨르비행장.
▲ 알뜨르 비행장  농민들이 임대하여 놓사를 짓고 있는 알뜨르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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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임대하여 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땅을 갈아놓은 모습
▲ 알뜨르 비행장 땅을 임대하여 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땅을 갈아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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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탄약고 터를 뒤로 하고 비행장로를 따라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한다. 제주도에 이토록 너른 들판이 있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그 흔하디 흔한 현무암 돌담도 보이지 않는다. 밭두렁이 경계고 길이다. 통통하게 자란 무가 눈에 띈다. 수확시기를 놓쳤을까. 

트랙터로 밭갈이 해놓은 땅이 다랭이 밭 같기도 하고, 층리 절벽의 물결 같기도 하다. 무가 땅 위쪽으로 자라는 것이 신기하다. 텃밭을 가꾸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일제는 이곳 알뜨르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중국 본토 공략을 위해서다. 1935년에 594,000㎡를 조성하고 1943년에 1,320,000㎡로 확장했다. 현재 이곳에는 잔디가 깔린 초원이 넓게 펼쳐 있다. 오른쪽으로는 격납고가 보인다. 멀리 모슬봉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본토 공략을 위해 1935년 무렵 모슬포에 594,000㎡ 규모로 조성한 비행장을 1945년 무렵에 1,320,000㎡으로 확장
▲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대 중국 본토 공략을 위해 1935년 무렵 모슬포에 594,000㎡ 규모로 조성한 비행장을 1945년 무렵에 1,320,000㎡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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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무렵 건립한 알뜨르 비행장의 부속시설인 격납고다. 콘크리트 구조체를 만들고 위쪽에 돌무더기를 쌓아 동산처럼 만든 다음 나무 등으로 가려 숨겨 조성하였다. 밭가운데 3~4 개의 격납고가 들어선 지역을 놀래왓(놀랜 밭)이라 부른다.

밭길을 따라 걸었다. 질퍽한 농로가 계속된다. 관제탑이었던 듯 콘크리트 기둥 탑이 우뚝 서 있다. 우측으로 알뜨르 비행장 일제 지하벙커가 있다. 전쟁의 막바지인 1945 년 일본은 관동군 6~7만 명을 제주에 주둔시켰다고 한다. 당시 제주 인구가 약 25만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모 해수욕장 인근 잔디밭에 있는 조각 상, 활기차게 뛰어노는 제주 마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김상현의 '가족'
▲ 가족 하모 해수욕장 인근 잔디밭에 있는 조각 상, 활기차게 뛰어노는 제주 마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김상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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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을 지나 좁고 완만한 숲길을 가다 보면 최남단 해안로를 만난다. 바닷 가 쪽이 하모해수욕장이다.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한 곳이다. 조금 더 가면 종점인 하모 체육공원이다. 제주올레 10코스에는 알뜨르가 있다. 원래 알뜨르는 제주 도민들이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던 들판이었다.  

덧붙이는 글 | ※ 디지털 서귀포 문화 대전과' 예비 검속 섯알 오름 집단 학살' 유족인 상모리 주민의 설명을 참고했습니다.


태그:#알뜨르비행장, #송악산, #알뜨르고사포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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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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