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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 290번에 안장된 애국지사 최성모 목사의 묘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 290번에 안장된 애국지사 최성모 목사의 묘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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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사람은 있을까요? 독립유공자 제3묘역 290호에 안장된 최성모 목사가 유일합니다. 최성모 목사는 일찍이 서울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북감리교 목사가 되어, 해주의 남본정교회에서 목회자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전도와 신앙심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는데 노력했죠.

최성목 목사는 1919년 2월, 당시 중앙기독교청년회 박희도 간사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전해 듣고 이에 적극 호응하기로 했습니다. 2월 26일 이승훈·오화영·이필주·함태영·안세환·이갑성·박희도 등 기독교 측 대표들과 한강 인도교에서 만나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에 서명 날인할 기독교 측의 대표자를 뽑았습니다.

이튿날인 27일에는 그의 집에서 이승훈·오화영·박희도·이갑성·함태영·김창준·신석구·박동완 등의 기독교 측 대표들과 다시 만나 독립선언서와 기타 서류의 초안을 회람한 후, 이에 찬성하여 기독교 측의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했습니다. 28일 밤에는 재동(齋洞) 손병희의 집에서 천도교·기독교·불교 측의 민족대표들과 만나 독립운동계획을 최종 확인했죠. 드디어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의 태화관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쳤습니다.

이후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됐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최성모 목사는 출옥 후에도 민중교화사업과 전도 사업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노력했지만, 조국의 독립은 끝내 못 본 채 1937년에 63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최성모 목사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은 2006년 9월 7일이었습니다. 이날 최성모 목사를 포함해 방재구 애국지사(독립유공자3-285)부터 김고두쇠(독립유공자3-292) 애국지사까지 8위의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의 유해가 안장되었습니다. 8위의 유해들은 그 동안 전국 각지에 안장되어 후손들에 의해 모셔지고 있었는데, 그 충의와 위훈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영구히 추앙하고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 것이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는 서울현충원에...
  
민족대표 독립선언도
 민족대표 독립선언도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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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민족대표들은 어디에 안장되어 있을까요? 민족대표 33인에는 개신교 인사 16명, 천도교 인사 15명, 불교 인사 2명이 있었습니다. 이중 서울현충원에 15위가 모여져 있습니다. 천도교 인사로 권동진, 나인협,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8위가 있고, 개신교 인사로 이갑성, 오화영(위패), 이필주, 신석구, 박동완, 유여대 6위가 있습니다. 불교 인사로는 백용성 스님이 유일했습니다.

천도교 제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의 묘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산 28-1에, 개신교 인사 이명룡 선생의 묘는 수유리 통일교육원 내에 있습니다. 이들 묘를 비롯해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며 그동안 '수유리 애국선열 및 광복군 합동묘역'으로 불리던 묘역이 지난 2021년 2월에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서울 수유 국가관리묘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그 동안 망우리공동묘지, 망우묘지공원, 망우리공원으로 불리다가 2022년부터 망우역사문화공원로 조성된 곳에는 승려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 천도교인 오세창, 개신교인 박희도 3인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천도교 인사 박준승과 양한묵은 각각 전북 정읍과 전남 화순에, 개신교 인사 신홍식과 정춘수는 충북 청원에 각각 안장되어 있습니다. 천도교 인사 최린, 개신교 인사 이승훈, 김창준, 양전백, 길선주의 묘는 분단으로 인해 가볼 수 없는 북한 지역 내에 묘소가 있습니다. 천도교 인사 임예환, 홍기조, 개신교 인사 김병조의 묘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손병희, 한용운, 이승훈 3인은 1등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25명이 2등급 건국훈장인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개신교 인사 길선주는 2009년에서야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김창준은 한국전쟁 중 월북해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까지 지냈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3인은 3.1운동 이후 일제에 투항해 친일로 전향해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 3인은 2009년에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명되기도 했습니다.

친일인사의 묘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박희도의 묘. 그의 묘비 앞면에는 ‘기미년독립선언민족대표삼십삼인중’이라고 새겨져 있다. 뒤에 있는 묘는 그의 부모 묘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박희도의 묘. 그의 묘비 앞면에는 ‘기미년독립선언민족대표삼십삼인중’이라고 새겨져 있다. 뒤에 있는 묘는 그의 부모 묘이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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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최성모 목사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전해줬던 중앙기독교청년회 박희도 간사는 1930년대 중반 경부터 전향하여 일제 정책에 적극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1월 '내선일체 구현'과 '일본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동양지광사를 설립하고 일본어 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을 창간해 폐간할 때까지 동양지광사 사장과 동양지광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습니다.

박희도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여러 방면에서 친일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박희도는 해방 후 1949년 반민특위 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이후 육군정훈학교에서 출강을 하며 지내다가 1951년 9월 26일에 사망해 망우리묘지, 자신의 부모 묘 아래 안장되었습니다.

박희도의 묘비는 해방 후 육군정훈학교에서 강의했던 인연으로 1958년 7월 8일에 육군정훈학교 장병 일동이 세운 것으로 묘비 뒷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묘비 앞면에는 '기미년독립선언민족대표삼십삼인중'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도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삼십삼인 중의 한사람으로 항일투쟁을 하다 투옥되었으며 출감후에도 계속해서 민족의 신생활운동 교육사업에 이바지'하였다고만 새겨져 있고, 이후 변절해 벌인 친일 행적은 빠져있습니다.

한편, 박희도의 동생 박희성은 광복군 비행장교 1호로,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 314호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박희성은 연희전문에 다니던 중 "학교 다닐 때가 아니다. 미국에 가서 비행술을 배워 독립전쟁에 참가하라"는 형 박희도의 조언에 따라 1920년에 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1년여 간 비행술을 배운 박희성은 1921년 4월 10일 레우드 시티 비행장에서 항공 면허 시험을 치르던 중 추락하는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나, 5월 22일 다시 시도해 국제항공증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7월 1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회의에서 그를 육군비행병 참위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박희성은 비행기 추락사고 때 입은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 독립전쟁 참전의 꿈을 펴 보지도 못한 채 1937년에 사망했습니다. 박희성이 사망할 즈음은 형 박희도가 친일의 길로 전향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최성모 목사와 동생 박희성에게 독립운동의 영향을 끼쳤으나, 정작 박희도 자신은 중도에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친일로 전향했던 구차한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을 때까지 또는 독립을 이룰 때까지 헌신했던 다른 민족대표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삶이 얼마나 숭고한 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김영식,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그와 나 사이를 걷다>, 파이돈, 2023.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2>, 민족문제연구소, 2009.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국립대전현충원(보도자료) 독립유공자 합동안장식 거행(9.7)
"임정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유해 고국 품으로," <중앙일보>, 2010.07.03.


태그:#민족대표33인, #최성모목사, #변절박희도, #삼일운동, #기미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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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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