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달 중의 으뜸인 정월 대보름 달맞이(음1.15)를 기다렸다. 우리의 세시풍속에서 설날만큼이나 중요한 날로 여겼던 대보름날이 현대화 된 세상에서 갈수록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경향이 있어 매우 아쉽기에...

복 많게도 아직까진 친정엄마가 계셔서 민속명절 음식을 맛볼 수 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전날부터 지역의 당산제와 지인들이 준비한 오곡찹쌀밥과 각종 나물로 점심을 먹으면서 주말 특별여행, '안동 하회마을 정월 대보름 행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전북 군산에서 경북 안동까지의 버스 시간은 약 3시간. 막연히 경상도라 멀겠지 하는 맘이 가벼워지고 왠지 현재에서 오래된 과거로의 귀향길을 보여주듯 버스 창밖의 풍경은 온통 회색빛 담채 산수화가 펼쳐졌다. 지난 며칠 뉴스로 접한 타 지방의 대설 소식을 현장에서 보니 맘속에 몰려왔던 추위가 이내 사라졌지만 여행은 그 자체로 행복한 맛을 주었다.

작년 버킷리스트에 기록한 내용 중에 우리나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서원탐방'이 있다. 책방 오픈 후 근대시인들과 고려 조선 시인들의 시를 매일 읽다보니, 저절로 그 시절 학자들, 공부형식, 장소 등에 관심이 일었다.

현재 총 9곳의 서원 –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논산 돈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대구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이 있는데, 가까이 있는 논산과 정읍은 다녀왔다. 대부분 경상도에 있어서 지역적으로 큰맘을 먹어야 갈 수 있기에, 이번 여행으로 최소 두 곳,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저 멀리 안동호 중앙에 서 있는 솔섬과 주변경관이 아름다웠다
▲ 도산서원에서 바라본 전경 저 멀리 안동호 중앙에 서 있는 솔섬과 주변경관이 아름다웠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도착한 안동의 명소, '도산서원(陶山書院)'.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1501-1570)이 학문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 서당이 모체이며, 선생 사후 4년째 1574년 서원으로 건립되었다. 특히 도산서원 현판을 한석봉이 썼다 해서 눈길이 갔다.

서원 출입구 계단에 올라서니, 작은 매화나무에 꽃봉우리들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관광객과 눈맞춤을 했다. 함께 한 지인(한시번역인, 박무재)으로부터 퇴계의 매화나무 사랑 시와 풍기군수 시절 한 여인과의 사랑 얘기를 듣다보니, 매화로 인해 옛사람들의 사랑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했다.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조린다 - 李滉(이황, 조선시대)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홀로 기대인 산창의 밤빛은 싸늘하고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매화 가지 끝 달 뜨니 정녕 둥글어라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다시 부를 필요 없이 미풍은 이르렀고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절로 있는 맑은 향은 담장에 가득하다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안을 걷노라면 달도 사람을 따르고
梅邊行遶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매화 주변으로 가서 몇 번을 돌았던가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휘망기) 깊은 밤에 오도카니 일어나길 잊었노라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향기는 의관과 그림자 몸에 가득하여라


아름다운 자연풍광 속에서 제자들에게 학이시습의 즐거움을 솔선수범했을 학자 퇴계의 실천적 삶의 태도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안동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근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단체 여행시간에 쫓겨서 구석구석 살피고 사색할 시간이 부족했던 점이 매우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안동호수와 가운데에 서 있던 솔섬(시사단, 정조때 선비들의 과거시험장소)을 보며 책 한 장이라도 읽도록 만드는 도산서원의 마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시사단(선비들이 시험을 보던 곳)이라...서원과 마주하고 있는 풍경
▲ 도서서원 앞 솔섬 시사단(선비들이 시험을 보던 곳)이라...서원과 마주하고 있는 풍경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이어서 방문한 곳은 하회마을. 낙동강이 마을을 회돌아 나가는 유형으로 이루어진 전통마을로 이곳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0년 등재)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마을인 70퍼센트 이상이 서애 류성룡(조선중기학자) 등 풍산류씨 집성촌으로 600년 이상 전통을 고수하며 해마다 정월대보름 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문화활동을 한다고, 지역 가이드의 자긍심이 대단해 보였다.
 
위엄있는 많은 고택들 사이로 낙동강가 앞에 펼쳐진 장터에서 발걸음이 멈추다
▲ 안동하회마을장터 위엄있는 많은 고택들 사이로 낙동강가 앞에 펼쳐진 장터에서 발걸음이 멈추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마을 입구에 놓여진 큰 비석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주요고택 -양진당, 충효당, 병산서원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내 전통마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양반가라 그런지 담이 높은 한옥 채의 안을 들여다보는 마음에는 양반과 함께 부락을 이루며 살았을 다른 이들의 모습에 더 애착이 가기도 했다.

인터넷에 올려진 하회마을 전체 모형, S자 모양의 낙동강이 흘러가며 마을을 품고 있는 그 길을 따라 마을 이곳저곳을 돌고 싶었으나 추운 날씨 탓에 다음을 기약하며 일찍 물러나갔다.

검색어로만 서애 류성룡과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유명인들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하회마을의 정월 대보름 행사가 유명하여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마저도 놓쳐서 처음으로 여행 간 안동길은 정말 아쉬움 투성이었다. 아마도 다시 또 오라는 계시였으리.
 
퇴계와 한 여인의 애뜻한 마음이 매화로 전해지다
▲ 도산서원뜰에 피어난 매화 퇴계와 한 여인의 애뜻한 마음이 매화로 전해지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요즘 열흘 이상 계속되는 비와 추운 날씨는 꽃봉우리 뿐만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피어날 꽃들까지도 움츠리게 한다. 남쪽의 많은 곳에서는 벌써부터 매화가 만개하여 지인들도 봄꽃 관광을 소곤거린다.

신학기를 앞두고 할 일이 태산이지만 혹시라도 갈 기회가 있다면 시간을 쪼개어 나들이하고 싶은 마음. 나이들수록 더하니 '꽃병'이라 부를 수밖에... 안동여행 후 아쉬움에 젖은 벗(한시를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이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선택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왕이면 봄꽃이 가득한 서원나들이를 기획해보길 추천하련다.

태그:#안동하회마을, #안동도산서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