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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충청남도 유성 지역에는 2개의 커다란 국가 시설이 조성됐습니다. 하나는 대덕연구단지로 1973년 계획이 수립된 이후 1974년에 공사가 시작해 1980년대를 거치며 완성됐습니다. 대덕연구단지는 27.8㎢(840만평)에 걸쳐 기초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수십 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고등교육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충남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입니다. 대전현충원은 1976년 4월 14일에 조성이 결정됐고, 1979년 4월부터 건설공사를 시작해 1985년 11월 13일에 준공했습니다. 규모는 330만9553㎡(약 100만평)의 부지에 10만 위에 달하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전현충원의 과학자들
 
대덕연구단지 전경. 앞쪽 주차장을 포함해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곳은 국립중앙과학관이다. 국립중앙과학관 왼쪽 뒤편 성두산 너머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 편 탄동천을 따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조폐공사, 한국생명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멀리 뾰족뾰족 보이는 산이 대전현충원 뒤로 자리한 갑하산, 신선봉, 우산봉, 흔적골산이다. 그 왼편 뒤로 계룡산도 보인다.
 대덕연구단지 전경. 앞쪽 주차장을 포함해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곳은 국립중앙과학관이다. 국립중앙과학관 왼쪽 뒤편 성두산 너머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 편 탄동천을 따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조폐공사, 한국생명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멀리 뾰족뾰족 보이는 산이 대전현충원 뒤로 자리한 갑하산, 신선봉, 우산봉, 흔적골산이다. 그 왼편 뒤로 계룡산도 보인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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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서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과학자 중에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들도 있을까요?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의 아버지라 불린 최순달(1931-2014) 박사가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31호에 잠들어 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박사는 1976년 귀국해 (주)금성사 중앙연구소 초대소장, (주)동양나이론 전자사업부 상무,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초대소장,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소장, 한국전력공사 초대 이사장을 거쳐 1985년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의 KAIST 학부과정) 초대학장이 됐습니다. 이후 체신부장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후 1989년 KAIST에 복귀해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인공위성의 불모지에서 처음부터 국내 개발은 힘들다고 판단해 KAIST 학부 졸업생 5명을 영국 써리대학으로 유학을 보내 위성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1년여 간의 공부를 마친 학생들은 1991년 1월 영국 써리대학 써리위성기술회사(SSTL)의 인공위성팀과 공동으로 우리별 1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별 1호'는 인공위성 개발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었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22번째로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타국의 도움으로 쏘아 올렸지만, 이어 자국 기술로 우리별 2, 3호를 쏘아 올리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최순달 박사의 묘비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TDX와 우리별 위성 개발은 단순히 기술개발 성공의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준 겁니다'라는 글이 쓰여있습니다.

TDX(Time Division Exchange)는 시분할 방식 전자교환기를 의미합니다. 최순달 박사가 19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전화 개통 수요가 급증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개통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전화를 신청하고도 설치하는데 1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심각한 적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기통신연구소에 24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TDX 개발을 맡겼습니다.

전기통신연구소 연구팀은 초대형 국책 과제라는 부담과 무도한 도전이라는 우려를 '실패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일명 'TDX 혈서' 각서를 쓰며 혼신의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3년 만에 TDX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TDX 개발은 교환기 부족에 따른 전화 적체 문제를 해소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향후 정보통신강국으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10월 18일, 83세의 일기로 사망한 최순달 박사는 2017년에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습니다. 과학기술유공자는 2015년 12월 22일 제정된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구개발 및 기술혁신 활동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 중에서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현저한 사람 중에 선정합니다. 최순달 박사를 비롯해 32인이 2017년 12월에 처음으로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습니다.

원자력계의 대부와 과학행정가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의 아버지로 불린 최순달 장관과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필순 소장이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31호와 32호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의 아버지로 불린 최순달 장관과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필순 소장이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31호와 32호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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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달 박사의 묘 바로 옆, 32호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필순(1933-2015) 소장이 안장돼 있습니다. 한 소장은 1982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맡은 후 한평생 한국의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한국 원자력 기술자립을 이끈 원자력계의 대부'로 불렸고,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했습니다.

2018년에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그의 묘비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자력이 곧 국력임을 믿은 과학자,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끈 진정한 리더, 그 신념을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여기 잠들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2017년에 최순달 박사와 함께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최형섭(1920-2004) 과학기술처장관도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3호에 안장돼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 대덕 연구단지 조성, 한국과학재단 설립 등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사의 큰 획을 그은 과학자이자 과학행정가였습니다.

최형섭 장관은 1966년에 설립된 KIST의 초대 소장을 지냈고, 1971년 6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습니다. 7년 6개월 동안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있으면서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구축', '산업기술의 전략적 개발', '과학기술의 풍토조성'을 과학기술개발의 세 가지 기본방향 설정해 연구소와 학원이 공존하는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구상으로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됐습니다. 최 장관은 또 기초과학의 육성을 위해 한국과학재단의 설립에 노력을 기울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국가가 요청하는 연구개발 과제를 기초부터 응용, 개발연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연구개발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체제를 정립했습니다.

과학기술을 위해 한평생 힘쓴 사람들
 
대덕연구단지 조성에 애를 쓴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이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3호에 안장되어 있다.
 대덕연구단지 조성에 애를 쓴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이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3호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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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의 묘비에는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연구자의 덕목이 적혀 있다.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의 묘비에는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연구자의 덕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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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국가출연연구기관 등지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한 평생 힘썼던 과학자들이 인근에 자리한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한편,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발견한 의학자 이호왕(1928-2022) 교수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호왕 교수는 병원체 발견에서 진단법, 백신까지 개발한 세계 최초의 과학자로 한 평생 연구와 교육에 전념한 교육자이자 과학기술자로 '한국의 파스퇴르'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2년 7월 5일 향년 95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호왕 교수는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49호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호왕 교수도 2017년에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 중 안장대상심의위원회에서 안장대상으로 심의·결정된 사람만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대덕연구단지가 대전의 대덕구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덕연구단지는 대덕구가 아닌 유성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전은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 5개 구로 나뉘어 있습니다.

1970년대 유성지역은 대전시로 편입되기 전으로 충청남도 대덕군에 속해있었습니다. 1970년대 조성되기 시작했던 '대덕'연구단지는 '대덕'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당시 유성이 속해 있던 '대덕'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덕구는 1989년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주변의 대덕구를 흡수하면서 대덕군의 신탄진읍과 회덕면 일대를 합쳐 신설되었습니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위에서부터 3줄과 맨 아래가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이다.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사이 5줄은 독립유공자 1-1묘역이다. 이호왕 교수의 묘는 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위에서부터 3줄과 맨 아래가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이다.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사이 5줄은 독립유공자 1-1묘역이다. 이호왕 교수의 묘는 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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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최순달,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 : 공학박사 최순달의 삶과 과학 이야기』, 좋은책 행간풍경, 2005.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https://www.koreascientists.kr/


태그:#대전현충원안장과학기술자, #최형섭, #최순달, #한필순, #대덕연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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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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