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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엄마인데, 아빠라고 하기엔 내 나이도 오십이 넘어 좀 아이 같고 아버지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아부지다. 늘 마음은 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닌 것을.

아이 입시가 끝나고 나니 우리 엄마아부지의 연말이 궁금해져 전화를 드렸다. 

"아부지 우리 연말 파티해요."
"바쁜데 뭐 거기까지 신경 쓰냐! 그날이 그날이지. 근데 몇 시에 오냐?"


불과 몇 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씀하시는 아부지의 대화 포인트는 마지막 문장이란 걸 난 잘 안다. 아이 고등학교 3년과 재수 1년 동안 오란 말씀도 못하시고 얼마나 적적하셨을까 싶은 마음에 죄송함이 앞섰다.

엄마가 1년 넘게 심하게 아프신 후로 우린 행사 때마다 외식을 한다. 어제도 맛있는 갈비를 사드릴 생각이었다. 도착 20분 전 옷 입고 기다리시라는 연락을 드렸다. 근데 집으로 들어 오라셨다. 엄마가 점심을 차리셨다고.

몸도 안 좋은데 뭘 하셨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은근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엄마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두 분이 좋아하시는 롤케이크와 초콜릿쿠키를 준비해 집에 들어갔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계란밥과 배추된장국, 시래기볶음입니다.
▲ 엄마표연말파티만찬 엄마가 만들어주신 계란밥과 배추된장국, 시래기볶음입니다.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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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세상에! (계란 빠진) 계란주먹밥, 배추된장국, 시래기 볶음, 잡채와 알타리김치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게다가 아부지가 사랑하는 소주까지 더해져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엄마 계란밥을 오랜만에 조우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1년에 두 번 삼남매가 봄소풍과 가을소풍을 가는 날이면 전날부터 난 무척이나 신났었다. 엄마 따라 시장에 가서 과자도 사고 과일도 사고 사이다도 사고 평소엔 자주 못 먹는 소고기도 샀다.

엄마는 시계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주 특별한 도시락을 만드셨다. 이름하여 계란밥. 없는 살림에 그날만은 소고기와 참기름을 듬뿍 넣은 주먹밥을 만들어 한 알씩 계란으로 돌돌 말아주셨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밥이라며 친구들은 나를 둘러쌌고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참 감사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손에도 스며들어 나 역시 딸아이가 현장체험학습 갈 때마다 계란밥을 만들었다. 한 개씩 꼭꼭 손으로 말아쥘 때마다 엄마에게 받은 깊은 사랑이 우리 딸에게도 진하게 전해짐을 느꼈다. 

어제 엄마표 계란밥은 좀 특별했다. 계란옷을 입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주먹밥으로 했다시지만 난 안다. 허리가 많이 아파 오래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힘드실 뿐더러 손으로 물건을 꼭 쥐는 것도 힘들어서 그렇단 것을.

그럼에도 막내딸과 사위가 온다니 추억을 곁들여 만찬을 준비하신 거였다. 이번 파티의 주인공은 두 분인데 되레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시니 '부모란~'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

계란 없는 이 주먹밥이 여태껏 내가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어디 밥뿐이랴. 된장만 풀었다는 배추된장국은 칼칼하면서 담백했고 시레기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녹아버렸으며 적절히 익은 알타리김치는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오십 넘은 막내딸과 사위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두 분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동안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이 죄송해 마음 한켠이 아렸다. 앞으론  꼭 연말파티를 하자고 말씀드렸다. 
 
원효대교를 지나다 63빌딩 옆으로 지는 해를 찍은 사진입니다.
▲ 63빌딩 옆 석양 원효대교를 지나다 63빌딩 옆으로 지는 해를 찍은 사진입니다.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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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만찬을 즐기고 친정집을 나섰다. 원효대교를 지나며 63빌딩 옆 저물어 가는 해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부지였다.

"차 막히지는 않냐? 오늘 와 줘서 고맙다."

아부지의 이 한마디에 순간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고마운 일인 건가. 용돈을 받고 좋은 옷을 입으시는 것보다 엄마아부지는 자식 얼굴을 자주 보고 싶으셨던 건데... 어렵지도 않은 이 일을 나는 왜 미루기만 했을까! 

'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고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머리속에 맴맴 돌았다.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번엔 내가 엄마아부지를 위해 계란밥을 만들어야겠다. 아침부터 소고기와 당근, 버섯 등 재료를 준비하고 콩나물을 다듬었다. 계란밥만 먹어도 맛있지만 맑고 담백한 콩나물국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잠시 계란밥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자면,

1. 잘게 다진 야채와 갈아놓은 소고기를 볶아 소금으로 약간의 간을 한다. 
2. 여기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뜨거운 밥을 넣어 살살 젓는다. 이때 소금과 깨, 참기름으로 완전히 간을 맞춘다.
3. 잘 섞인 밥을 꼭꼭 쥐어가며 하나씩 정성스레 뭉친다. 
4. 그런 다음 계란물을 만들어 밥을 하나씩 돌돌 말아주면 된다. 

주먹밥들이 하나씩 계란옷을 입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봤다.
 
▲ 계란밥만드는 과정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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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어렵진 않으나 시간은 꽤 걸린다.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너시간은 걸리는 수작업 100% 이기에. 

내일 막내딸의 계란밥과 콩나물국을 맛보실 엄마아부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아부지는 무조건 맛있다 하시겠지만 엄마는 사랑의 조언을 한스푼 보태실 것 같다. 아무렴 어떠랴.

나중에 후회하며 풍수지탄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앞으론 자주 가서 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두 분 좋아하시는 딸기라떼도 사드릴 것이다. 효도란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아주 소소한 행동임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친정부모님, #효도, #자주가기, #계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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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차 일본어강사입니다. 더불어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며 글로 씁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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