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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부방을 만들면서 작은방에 있던 가구들을 안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안방은 커다란 베란다 창이 있는 거실을 겸하고 있다. 장롱이 들어오자 소파가 갈 곳을 잃었다. 기분 따라 침대와 바닥을 오가며 침실로 사용하는 나로서는 침대와 바닥 모두 사수해야만 했다. 결국 소파가 창을 등지는 형태로 되었는데, 문제는 이러면 베란다에 살고 있는 식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침대를 두고 주로 바닥에서 자는 편이다. 침대가 아니라 바닥을 선호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베란다에 살고 있는 식물들과 같은 눈높이로 바로 볼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창 하나를 사이에 둔 식물들은 시선만 돌리면 항상 맞닿아 있는 이웃집인 셈이다. 식물은 말이 없으니 소음 공해도 없다. 그런데 소파가 창을 가로막으면서 늘 보던 이웃집을 볼 수 없어 답답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기도 힘들었다.
 
시골집 엄마 선인장. 작년 집에갔을때 꽃이 만개하고 한달후 모습
▲ 겨울에 꽃피는 선인장 시골집 엄마 선인장. 작년 집에갔을때 꽃이 만개하고 한달후 모습
ⓒ 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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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궁리 끝에 소파를 침대 옆으로 이동해 나란히 바싹 붙였더니 드디어 창이 트였다. 침대에 눕는 게 불편해졌지만 바닥에 누울 공간이 생기고, 거기서 식물을 볼 수 있으니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침대를 버릴지언정 식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무적이다. 식물에게도 단단한 애정이 생기다니 나도 날 잘 모르겠다.  

지난 6월, 한 식물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식물 기르기 미션에 참가한 적이 있다. 목적은 온도와 환경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동일한 식물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도전이라 시작도 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전국에 있는 일명 '식집사'들이 동일한 시점에 일제히 똑같은 씨앗을 받아 자신들만의 식물 일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션은 씨앗을 받은 때부터 꽃을 피우는 시점까지였다.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다'라는 꽃말을 가진 '임파첸스(서양봉선화)' 씨앗을 받은 나는 6월 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지를 썼다. 개근상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1등이지 싶다. 한 달 보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나의 임파첸스는 소식이 없었다. 물도 주고 바람도 햇볕 산책도 시키고 나름 잘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더디게 성장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60일째 되던 지난 7월 30일. 애타게 기다렸지만 임파첸스의 봉오리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주말을 이용해 잠깐 시골에 다녀와야겠구나 하고 고향에 다녀왔는데,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발이 묶였다. 집에 다시 돌아올 틈도 없이 엄마 무릎 수술일정이 빠르게 잡혔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가족들 앞에서 차마 '임파첸스' 때문에 집에 다녀와 와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지독한 무더위가 익어갈수록 집에 있을 '임파첸스'가 걱정되었다. 베란다 문은 열어놓고 왔지만, 비와 바람 모두를 맞고 있을걸 생각하니 속이 탔다. 다시 돌아갈 때까지 무사히 있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엄마가 당시 수술에 들어가시기 전 내게 신신당부한 게 있는데 다름 아닌 마당에 내어놓은 화분이었다. 선인장과 난을 기르는 엄마는 비가 오면 비닐을 잘 덮어주라고 했다. 비를 많이 맞으면 안 되는 식물이니 꼭 비닐을 덮어주라고, 그리고 고추에는 물을 매일 한 번씩 주라고 했다. 잎이 아닌 흙에 듬뿍 줘야 한다며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주면서 당부했다.

엄마도 오랫동안 집을 비우긴 처음이셨으니 걱정이 되긴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그런데 평생 가게를 보신 엄마가 내게 '가게 잘 봐라'가 아닌 식물을 잘 부탁하고 가시다니 조금은 뜻밖이었다.

늘 화분에 진심이던 엄마

생각해 보니 엄마는 화분에 진심이셨다. 힘든 몸에도 계절 따라 화분을 지켜냈다. 언제부터 키웠는지 모를 화분이지만 점점 커져 지금은 혼자 들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아무리 바빠도 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바쁜 마음을 돌봤는지 모른다. 기쁨도 주었으니 화분이 엄마를 돌본 것이리라.         

겨울이면 화분을 방 안으로 옮겨놓았다. 그 큰 화분들을 방안에 옮겨놓으면 방안은 반으로 줄어들어 좁아졌다. 방안이 좁아져서 나는 화분들이 싫었다. 봄이면 밖으로 내어놓고 겨울이면 다시 옮기는 일도 싫었다. 귀찮아서 어떨 땐 좀 없었으면 좋겠다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화분이 몇 개 사라졌을 땐 뜨끔하기도 했다.

겨울 이맘때쯤이면 벚꽃처럼 활짝 피우는 선인장 꽃을 보며 엄마가 좋아하실 때도 사실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엄마한테도 화분들한테도 미안하다. 선인장이 꽃을 피워내기에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고, 식물들도 감정을 느낀다는데. 내가 나빴다. 그런 내가 이제 '임파첸스'의 운명에 발 동동 구르다니.  

"어떡하니 이 무더위에, (선인장) 타들어가겠다..."

엄마는 당시 임파첸스를 걱정하는 나를 이해하며 빨리 가보라고 했다.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식물들을 생각하며 차를 타고 집에 왔을 때, 임파첸스는 봉오리를 피우다 말고 지쳐 쓰러져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겠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초록별로 가버린 임파첸스, 2023년의 여름은 지독했다.           

그 지독한 여름 더위에도 버티며 강한 생명력으로 무사히 살아남은 터줏대감들, 다육이와 선인장은 잘 살아있다. 여전히 말이 없는 편이다. 소파를 치우길 잘했다. 창 너머 시선 따라 식물을 바로 볼 수 있어 좋다. 며칠 전 선인장 하나에 무언가 보여 살폈더니 봉오리다. 임파첸스가 피우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봉오리. 꽃을 피울 모양이다.

꼽아보니 약 3년 만의 결실이다. 그저 봉오리에도 법석을 떨다니. 그래도 추울까 싶어 애지중지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크리스마스 선인장(Christmas cactus)이라는 이름처럼 곧 성탄절쯤이면 꽃을 피울 것 같다. 식물은 기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 나는 내 공간을 더 내어줘도 괜찮다.    

꽃은 자신에게 물을 준 사람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엄마와 통화하고는 한다. "엄마, 화분 집으로 들여놓았어요? 꽃이 피었나요? 저는 곧 꽃이 필 거 같아요."라고 말이다.   
 
3년만에 봉오리가 나온 크리스마스 선인장(크리스마스 캑터스) 모습. 아마도 성탄절쯤 꽃을 피울것 같다.
 3년만에 봉오리가 나온 크리스마스 선인장(크리스마스 캑터스) 모습. 아마도 성탄절쯤 꽃을 피울것 같다.
ⓒ 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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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인장,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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