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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웰가어린이집 원장 양미숙
 함양웰가어린이집 원장 양미숙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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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구만마을 기와집 딸 양미숙씨의 꿈은 '여고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8남매의 여섯째로 동생들 돌보느라 초등학교도 9살에 입학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하고 가축을 키우며 집안일을 도우면 남들처럼 당연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여력이 없다 하신다.

도시락도 가져가지 않고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께 무언의 반항을 했던 양미숙씨. "그래, 미숙아 학교 못 가는 네 마음도 많이 아프제, 못 보내는 내 마음도 아프다." 딸의 손을 꼭 붙잡은 어머니의 말에 그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머니께 화도 낼 수 없었다. 밤새 울고 나서 '나 어떡해? 나 어떡하지?' 수십 번을 되뇌다 '나 어떻게 하면 되지?'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당시 마산 한일합섬에 우리나라 최초 산업체 부설학교였던 한일여자실업학교가 있었어요.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가 성적도 안 되면서 원서를 써 달라며 버텼죠."

그해 시험에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홀로 주소 한 장 들고 마산 한일합섬을 찾아가 일을 하며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던 양미숙씨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일하면서 입학시험을 준비했어요. 집에선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했는데 8시간만 근무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죠. 농사일에 비하면 일도 힘들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던 그 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죠."

도서관에서 기출문제를 풀며 시험공부를 하던 그는 그때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도서관에 있던 그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전까지의 제 삶은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거든요."

시, 에세이, 소설 문학을 접하게 된 뒤로,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농촌계몽 운동을 펼치며 아이들에게 글과 노래를 가르치던 영신과 같은 삶을 꿈꾸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울고 계셨어요. 엄마의 우는 모습을 숨죽여 들었어요. 엄마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어 알아서 집안일 농사일을 하며 철이 빨리 들었던 것 같아요."

치열하게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유치원도 못 가는 시골의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유아교육을 꿈꾸게 된다.

고등학생이 되겠다는 꿈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양미숙씨는 이후 천만 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도 달성하고 방송통신대에 진학해 유아교육을 전공하게 된다. 결혼 후 직장생활과 출산으로 공부를 잠시 쉬었지만 보육교사자격증을 따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다시 입학해 방통대를 5년 만에 졸업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23년간 매주 찾아가 자식의 역할을 다했고, 그가 간절히 원했던 대학원 학위도 취득하게 된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 말하는 대로 된다는 걸 믿어요.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꿈이 현실이 된다는 걸 제가 경험했잖아요. 지금도 말의 힘, 긍정의 힘, 감사의 힘, 책의 힘을 믿어요." 양미숙씨에겐 책이 스승이고 아버지였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책 속에 답이 있었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다.

25년간 영유아들과 함께 생활해 온 양미숙씨는 자신을 공감해주던 어머니처럼 아이들을 공감하고 내 아이를 키웠듯 부모의 마음으로 함양웰가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함양웰가어린이집을 맡게 된 첫해부터 매월 30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함양군 고향사랑기부제 기금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 양미숙씨는 유치원(만 3세~만 5세)에 지원되는 필요경비(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등 부모 부담경비)를 어린이집(현재 만 5세만 지원)에도 지원 연령대를 낮춰 형평성에 맞춰줄 것을 제안해 상금 30만원을 받았다. 

그는 상금에 30만 원을 더 보태 성민보육원에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베풀고 기부하는 것도 처음엔 적응이 필요해요. 하다 보면 꾸준히 하게 되죠. 저에게 나눔이란 한달 한달 저축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든든함과 자신의 소중함! 삶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남편인데 기부를 한다고 하니 선업을 쌓는 거라며 칭찬해 줬어요. 이렇게 작은 일이 알려지는게 쑥스러웠지만 이 기사를 읽고 12월 어려운 시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어요."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듯,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향해 생각하고 말하고 계획한 대로 이루는 경험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는 양미숙씨는 상록수의 주인공 영신이 돼 함양에서 늘 푸른 삶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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