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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는 생각외로 많다.(자료사진)
 노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는 생각외로 많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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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허경영 전 대선 후보가 운영 중인 종교시설 '하늘궁'에서 80대 남성이 썩지 않는다는 '불로유'를 먹고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 허경영 '불로유' 사건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어리숙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뻔한 내용에 왜 속을까 싶겠지만, 사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유사한 사기행태가 의외로 많이 일어난다.
     
지난해 봄, 내 또래인 70대들이 참석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한 수강자가 정체불명의 생수 한 박스를 가져와서는 건강에 효험을 봤다며 이 물이 필요한 사람은 연락처를 남기라 했다. 한 입 시음해 본 수강생이 생수 속에 건강에 좋다는 고로쇠나무 성분이 들어있는지 약효를 묻자, 그는 "궁금하면 따로 연락하라"고 했다.
     
문제의 생수를 오래 마시면 소화가 잘 되는 것은 물론 부스럼이 없어지고 풍치까지 낫게 하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무료로 나눠준 그 물을 당시 가져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판촉을 미끼로 사기판매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사기도 있다. 나는 퇴직 후 직업상담사로 한때 근무했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노인들을 당시 제법 많이 만났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는 건강과 활력을 상징한다. 이런 일 욕심을 악용해 사기꾼들은 직종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설명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키고, 보수도 사전에 이야기한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문제는 노인들이 취업사기를 당하면, 그 즉시 사회를 불신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일할 의욕이 사라진 뒤엔 막상 일할 기회가 와도 쉽게 포기하는 경우를 여럿 봤다. '노인 자살률 OECD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 대상 취업 사기, 여행 사기... '엉터리 물건' 파는 사기꾼들

지금 경비로 일하는 한 지인은 "과거 취업사기를 항의했다가 되레 면박을 당하고 만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황당한 심정"이라 말했다.  
    
사기꾼들은 여행을 빙자해 노인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노인복지관에서 잠시 노인일자리 참여자를 관리하고 이들을 돌볼 때다. '노인들을 여행시켜 주겠다'는 말만 믿고 자리를 알선했다가 사기당한 적이 있다.  
    
내용은 심플했다.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원하는 이들을 모아 바닷가 한번 구경하고 오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귀경할 때는 일정에 없던 사슴농장과 건강식품 제조공장에 들러 노인들이 엉터리 물건을 사야 했다.
     
물건을 안 사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업자들은 노인들의 약한 심리를 파고들어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강매를 권하는 것이다. 효과를 떠나 물건 팔아주는 것이 노인들의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악용하는 상술이다.
    
사기꾼들은 '소탐대실'을 노린다.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건강식품을 홍보하거나 가수 행사에 초대해 싸구려 경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하도록 유인하는 고전적인 사기 수법 또한 2023년인 현재도 여전하다. 행사장에서 비싼 건강식품을 구입했다가, 자식들과 그걸로 다툼을 벌였다는 어르신들을 주변에서 자주 봤다.
     
나도 당한 적이 있다. 과거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을 모시고 위로차 정기적으로 행사를 할 때가 있었는데,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 일정을 알았는지 찾아와서는 어르신을 상대로 물건을 홍보하거나 판매에 나서곤 했다. 이 경우에도 물건들은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들이다. 

한 번은 관광버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휴게소에 잠시 들렀는데 잠시 나갔다 와 보니, 얼굴을 모르는 두세 명 사람이 버스에 올라 조잡한 생필품을 선전하고 있었다. 관리자인 내게 허락도 받지 않고 탑승해 홍보와 판매를 한 것이다. 나중에 나는 관리 소홀로 어르신들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피라미드 다단계' 판매를 목적으로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단체와 친목회원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떠난 지인도 있다. 그는 서로 돕기 위해 다단계를 소개했다고 변명했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외롭고 쓸쓸할수록 사기에 취약하다
 
외로운 노인일수록 사기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자료사진).
 외로운 노인일수록 사기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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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피싱'과 '차명 계좌'는 노인들이 당하는 전형적인 사기유형으로 언론에도 자주 보도된다. 아무리 예방교육을 강조해도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사기에 걸려들고는 한다. 노인들의 부주의가 원인이라고 타박하는 것도 무리일만큼, 요즘은 그 사기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남의 말에 의심하는 버릇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심은 냉철한 판단력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십중팔구 되레 자기 꾀에 그만 걸려 당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사기꾼이 '어르신들은 돈 없고 물건을 살 처지가 아니다'라고 엄포를 놓으면, 자존감이 있는 노인은 그 말에 별반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여기 반발해 돈 많은 척하려고 애써 돈을 쓰고야 마는 심리가 발동하기 쉽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노인들 대부분 공짜라는 유혹에 속아 사기에 걸려든다.그러나 사기행각은 노인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유명 펜싱선수가 재벌 아들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믿기 힘든 희대의 사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 않았나. 
     
불로유라니, 생각해보면 우유가 상온에서도 썩지 않으며 그걸 마시면 마실수록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허경영 불로유 사건의 핵심은, 외로운 노인들일수록 물정에 어두우며 그만큼 친절과 감언이설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노인들이 누구보다 사기에 취약한 대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립돼 외롭고 쓸쓸한 노인일수록 사기꾼에게 더 취약하다. 우리 주변 노인들의 일상에 보다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 입니다.


태그:#허경영논란, #불로유, #소탐대실, #보이스피싱, #차명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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