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여름, 오랜만에 둘째 아들 녀석과 함께 드라이브에 나섰다. 아마 근처 맛집에서 든든하게 소머리국밥 한 그릇씩 먹고, 강변을 따라 정취도 즐기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던 것 같다.

유난히 더운 여름 날씨 탓이었던지 오래 된 우리집 SUV 자동차가 소음도 없이 부드럽게 너무 잘 나갔다. 그 느낌에 취해서 제비아빠(남편)가 한 마디 했다.
 
17년된 우리자동차가 달려온 거리
 17년된 우리자동차가 달려온 거리
ⓒ 임은애

관련사진보기

 
"아! 오늘은 정말 부드럽게 잘 나가네. 이 정도면 뭐 폐차시키기는 아깝다."
"그렇지? 외관도 이 정도면 깨끗하고, 아직 14만키로도 안 탔는데... 정부 조치만 아니면 한 3년 더 타서 20년 채우는 건데.... 정말 아깝긴 해!"


우리 부부가 17년을 탄 경유차 폐차를 두고, 아깝네, 잘 나가네, 아쉽네 하며 맞장구에 열을 올릴 때, 아무런 반응없이 보조석에 앉아 창틀에 팔을 얹고 손으로 턱을 괴고 무심히 앞만 보던 녀석이 툭 하니 한 마디를 던졌다.

"차 한 대 사서 20년을 탄다?? 하~~ 그건 욕심이다!!"
   
제 눈엔 아무리 봐도 낡고 오래된 구닥다리 구형차를 두고 나누는 대화 내용이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숨 쉬듯 무심히 혼잣말로 탁 뱉어낸 그 한 마디에 우리는 "빵"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정곡을 콕 찔린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또 울 아들의 말투가 백 마디 설명이 필요없이 그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온 탓이기도 했다. 민망함에 나는 '쌍용이 차를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니냐? 적당히 만들었으면 중간에 고장 나서 몇 번은 바꿨을텐데...'라고 응수했다.

2006년 봄에 우리 둘째가 태어나고, 그해 12월 이 차가 우리집 새 식구가 됐으니, 따지고 보면 둘이 동갑내기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의 오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 덩어리이기도 하다. 잔고장 한 번 없이, 사고 한 번 없이 우리와 함께 안전하게 17년을 달려왔고, 지금도 늙은 티(?) 안 내고 조용히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차다.
 
렉스턴
▲ 2006년 12월 우리가족이 된...그차 렉스턴
ⓒ 임은애

관련사진보기

 
당시 세 살이던 우리 첫째는 대한민국 1%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형 SUV 차량의 선두주자로 화면 가득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던 그 차에 반해서 쌍용의 광팬이 됐었다.

놀다가도 광고 음악 소리만 들리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와 티비 앞에 시선을 고정했다. 쌍용차 홈페이지에 가서 보고 또 보고 그렇게도 좋아라 했다. 맨날 아빠처럼 돼서 아빠만 따라다닐 거라더니 하루는 진지하게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 아빠처럼 안 돼면 안 돼?"
"왜?"
"나 쌍용자동차 가서 자동차 만들게!"


그 질문이 너무도 진지하고 심각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었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더니, 아빠가 쌍용차에 밀렸다고 농담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 첫째는 그렇게나 그 차를 좋아라 했다.
 
   우리차도 빨리 그렇게 하래~~
▲ 저공해조치로 프리패스 하세요  우리차도 빨리 그렇게 하래~~
ⓒ 임은애

관련사진보기

 
그런 차가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이 되었다. 그 전엔 그런 줄도 모르고 다녔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로부터 우리차가 5등급 경유차이며 노후 경유차 운행단속 시행으로 위반시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그 금액이 10만 원이니 저공해조치를 하라는 안내장을 몇 년 전부터 받아왔다. 조기폐차나 매연저감장치 부착시 지자체에서 일부 금액을 지원해주니 저공해조치로 프리패스하라고 말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이런 게 다 있어 했는데 정부 시책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 차를 운행하는데 직접적으로 제한을 많이 받게 됐다. 주중에 미세먼지경보 발령이 뜨는 날이면, 차를 몰고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또 한겨울부터 초봄까지 한 4개월 동안은 주말만 빼고 지하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어야만 했다.

하지만 주말 외에는 딱히 차 쓸 일이 별로 없어서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또 근 몇 년은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핑계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돌아다닐 기회도 딱히 없었다. 그런 까닭에 이런 저런 이유로 차량 폐차를 다음에, 다음에 그렇게 미루다 올해까지 왔다.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조치의 일환으로 배출가스 저감장치(DPF)가 미장착된 노후 경유 차량에 대한 운행제한 조치가 이뤄진 지는 꽤 됐다. 2017년 서울을 시작으로 매년 경기, 인천 지역으로 확대되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확대조치 되었다. 이 낡고 오래 된 늙은 차는 서울 시내 진입이 금지된 지도 꽤 됐다.

오래 된 경유 차량이 뿜어대는 배기가스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미세먼지 경보발령이 뜨는 날만 운행제한이 이뤄지고 어길 시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미세먼지계절관리제까지 실시하여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강제로 운행제한을 한다. 대신 5등급 경유 차량이라도 매연저감장치를 장착하거나 조기폐차를 신청하면 일정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 시책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는 출고시 매연저감장치가 부착이 안 된 4등급 경유차까지 확대하여 조기폐차를 지원하고 있다. 차 쓸 일이 별로 없는 우리집에서 폐차 시키긴 아깝다는 이유로 차량 두 대를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12월이 오기 전에 과감하게 조기폐차를 신청하고 마무리를 했다.

협회로부터 조기폐차 대상임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기폐차를 신청했더니, 그 확인서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그리고 집 근처 차량 폐차장에 전화 한 통 했더니, 차량이 견인되고, 폐차가 완료되기까지 2~3일이면 족했다. 웬만한 노후 경유차들이 대부분 저공해조치를 다 해서 그런가 보다. 이 조치의 정부 지원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나 보다. 

견인차가 와서 꽁꽁 핸들을 묶고 견인해 갈 때, 보내는 내 맘은 아쉬움 가득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는데... 그 일처리는 너무 쉽고 빨랐다. 전화 한 통으로 17년 추억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참으로 편리하고 간단하고 또 쉬운,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맘이 참 씁쓸했다.

가족 모두 모여 기념으로 단체 사진이라도 하나 찍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대신 셋째 막내랑 나는 차량을 깨끗하게 비우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조기폐차를 앞두고!  찰카
▲ 이젠 찌그러져도 괜찮다. ㅋㅋ 조기폐차를 앞두고! 찰카
ⓒ 임은애

관련사진보기

 
둘째에게 시간날 때 기념 사진 한 장 찍어 두라고 일렀더니, 그 사진을 찍어 전송해주었다. 니 동생 보내는 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좀 서운하단다. 그 사이 스무살이 된 큰아들은 자기가 면허증 따서 좀 타고 다니게 두지 왜 폐차 하냐며 서운해하고... 제 인생의 첫 차이니, 손수 한 번 운전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집에 와서 17년을 노력 봉사한 자동차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되돌아보니 긴 세월이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겐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사실 난 이 차량에 매연저감장치를 달고, 차박 전용차로 내부를 좀 개조해서 나만의 캠핑카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좀 있었다.

허나 그 바람은 우리 제비아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차 한 대 사서 20년을 타고자 하는 바람은 진정 욕심인가? 울 아들의 그 한 마디가 뇌리에 박혀, 내가 또 어느 지점에서 그런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잘 가라~~
그동안 수고 많았어!
정말 고마웠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쉬어! 푹~~~~
우리의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사진과 함께 기억 속에 담는다.
2023년 11월 우리들의 오랜 친구가 집을 떠난 날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조기폐차, #20년, #추억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삼남매엄마! 이제 한숨돌려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