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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널방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바다가 아득해 보였다.
▲ 미역널방 아래의 해안 절벽 미역널방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바다가 아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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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초, 한반도의 날씨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초여름의 날씨가 이어졌다. 길에 나온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웠고 심지어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를 입은 젊은이도 있었다.

쌀쌀한 날씨를 예상하고 미국 엘에이에서 온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금오도 여행을 앞두고 날씨가 비바람을 몰고 급행으로 달려왔다. 여수에서 배를 타야 도달할 수 있는 금오도 여행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강풍으로 출발 날짜를 하루 연기한 11월 7일 오후의 남쪽 바다는 다행스럽게도 잔잔했다. 여수 신기항에서 출발한 25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금오도 서남쪽 직포에 여장을 풀었다. 몇 년 동안 벼르던 금오도 비렁길 하이킹은 이렇게 시작됐다. 

생김새가 자라 모양을 닮았다는 금오도의 서쪽 해안은 옥빛 바다를 배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벽 사이의 품속에 안긴 여섯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884년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이 공식적으로 풀리고 섬에 거주가 허용되면서 지역주민들은 땔감을 구하고, 미역을 지고 다니며, 낚시를 하기 위해 벼랑 위에 길을 내고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 길이 지금은 연간 30만 이상이 찾아오는 남해안 최고의 트레킹 코스가 되었다. 그리고 여수 지방의 사투리를 빌려 이 길을 비렁길이라 부른다.

함구미마을 뒤 산길에서 시작하는 비렁길은 두포, 직포, 학동, 심포를 거쳐 장지까지 총 18.5km지만, 이박삼일의 일정을 잡은 우리는 여수까지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여 5코스를 뺀 4코스까지 총 15.2 km만을 걷기로 하였다.
 
비렁길 탐험에 나선 11월 8일,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 연청색 빛을 띠고 바다는 진한 옥빛이 햇살 아래 반짝였다.
▲ 함구미 선착장 비렁길 탐험에 나선 11월 8일,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 연청색 빛을 띠고 바다는 진한 옥빛이 햇살 아래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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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비렁길 탐험에 나선 11월 8일,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 연청색 빛을 띠고 바다는 진한 옥빛으로 햇살 아래 반짝였다. 첫날은 펜션 사장님의 친절로 함구미에서 시작하여 3코스 중간 지점인 비렁다리까지 약 11km를 걷는, 쉬엄쉬엄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느림보 일정으로 시작하였다.

넓은 바다가 펼쳐진 함구미 선착장을 지나자, 동백꽃 없는 동백나무 숲길이 우리를 이끌었다. 어두컴컴한 숲길을 벗어나니 환한 햇살 아래 넓은 바위 마루가 나타났다. 옛날 미역을 채취해 말렸다는 미역널방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바다가 아득해 보였다. 절경이다. 우리가 이렇게 높은 길을 걷고 있었구나.

배산임수의 기본적 지형인 송광사 절터를 지나고 신선이 노닐었다는 신선대에서 한숨을 돌리니 멀리 포구가 보였다. 5km에 달하는 1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되는 두포마을이다. 금오도의 명물 방풍나물 칼국수로 시장기를 채우기 위해 두포마을의 소나무가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두포마을은 1884년 사람들이 처음으로 마을을 이룬 곳으로 1985년에 세운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2코스에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촛대바위가 있다.
▲ 촛대바위 2코스에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촛대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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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에서 시작하는 2코스는 편안한 임도 길을 지나 굴등전망대를 거쳐 촛대바위를 찍고 직포로 이어지는 3.5km의 길이다. 컴컴한 숲길과 눈부신 절벽 길을 번갈아 걸으며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허리를 가로질러 힘겹게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촛대바위전망대란다. 위를 올려보니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앞 바다의 삼각산처럼 생긴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2코스 끝 지점인 직포다. 
 
촛대바위전망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삼각산처럼 생긴 봉우리 앞바다가 직포다.
▲ 촛대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직포 촛대바위전망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삼각산처럼 생긴 봉우리 앞바다가 직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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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포마을은 코앞에 있건만 가는 길은 고달팠다. 대나무로 굴을 이룬 숲길이 나오고 계속 오르막길이다. 다리가 뻐근할 즈음에야 숙소가 있는 직포에 다다랐다. 이제까지 약 8.5km의 산길을 걸은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바다를 비추자, 바다는 불그스레한 빛으로 환하게 답했다.
▲ 화답하는 바다 오후의 햇살이 바다를 비추자, 바다는 불그스레한 빛으로 환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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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정된 일정의 종착지는 2km 이상을 더 걸어야 하는 3코스 상의 비렁다리였다. 어느덧 시간은 4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바다를 비추자, 바다는 불그스레한 빛으로 환하게 답했다.

금오도 비렁길 필수 코스라는 3코스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숲길을 걷다 보면 밤인 듯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환하게 시야가 트이면서 오후의 바다가 보이기를 반복했다.

갈바람통전망대를 지나 동백나무 숲을 넘어가니 이미 저물어 가는 해가 바다 위 해안단구를 붉게 물들이고 매봉전망대에서는 석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하늘과 구름, 바다를 조화롭게 물들이며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석양은 우리의 종착지인 비렁다리 위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물어 가는 해가 바다 위 해안단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석양에 물든 금오도 저물어 가는 해가 바다 위 해안단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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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전망대에서 석양은 하늘과 구름, 바다를 조화롭게 물들이며 해는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 매봉전망대에서의 석양 매봉전망대에서 석양은 하늘과 구름, 바다를 조화롭게 물들이며 해는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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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은 우리의 종착지인 비렁다리 위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비렁다리에서 본 석양 석양은 우리의 종착지인 비렁다리 위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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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탐험은 이틀째 계속되었다. 4코스의 종점인 심포에서 시작하여 학동을 지나 비렁다리까지 4코스와 나머지 3코스를 걷는 일정이었다. 아침의 심포마을은 고요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바다는 나무 뒤로 물러났으나 그 사이로 보이는 옥색 빛이 찬란했다. 컴컴한 대나무 숲 터널을 벗어나자 햇살이 따가웠다.

밤 사이 올라간 온도에 온금동전망대에서 아침에 입고 나온 웃옷들을 벗고 반소매 차림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은빛 파도가 찬란하게 빛났다. 저녁이면 파도는 금빛을 띠겠구나. '온금동'이 아니라 '은금동'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은빛 파도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온금동’이 아니라 ‘은금동’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 온금동전망대에서 본 은빛 파도 은빛 파도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온금동’이 아니라 ‘은금동’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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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두운 숲길과 환하게 트인 절벽 길을 오르며 사다리통전망대에서 다리쉼을 하고 나니, 학동의 몽돌해변이 나타났다. 4코스가 끝나고 전날 못다 한 3코스를 마무리할 차례였다.

학동의 해변 길을 지나 다시 비렁길로 올라 바다 쪽을 바라보니 층층이 쌓아 올라간 검은 빛을 띤 바위가 연갈색의 갈대와 함께 푸른 바다와 어울려 절묘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학동에서 직포로 가는 방향이기에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이었다. 다시 비렁다리를 마주하며 하루 하고 반나절을 걸은 금오도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층층이 쌓아 올라간 검은 빛을 띤 바위가 연갈색의 갈대와 함께 푸른 바다와 어울려 절묘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 학동에서 직포로 가는 방향에서 마주한 절경 층층이 쌓아 올라간 검은 빛을 띤 바위가 연갈색의 갈대와 함께 푸른 바다와 어울려 절묘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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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땅에 살면서 사람을 품어주는 한국의 섬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섬은 여전히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숲과 해안절벽, 푸른 바다의 조화로움과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마을이 언제나처럼 우리를 포근한 미소로 반겨주고 있었다.

태그:#금오도비렁길, #공도정책, #매봉전망대, #해안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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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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