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해의 말미,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죠. 신출내기 정원생활자에게 겨울은 고난의 길목입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다 보니 단열이 시원찮습니다. 자연스레 난방비 문제가 따라오죠. 뜨끈하게 난방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한 달 심야전기 요금이 50만 원에 육박한 적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폭탄'이죠. 어쩌다가 기계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핵폭탄이 되겠고요.

창틈으로 새는 것이 돈인지 바람인지 

화목 벽난로를 거실에 설치했습니다. 낭만적인 '불멍'을 떠올리겠지만 거실 난방을 위한 목적이 더 큽니다. 한데 장작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쯤 되면 창틈으로 새는 것이 돈인지 바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문풍지와 틈막이로 곳곳을 막고 보일러실은 아예 뽁뽁이로 봉했습니다. 돈샐틈없는 준비로 추위와 일전불사의 태세를 갖춘 겁니다.

추위는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듭니다. 날씨는 차갑고 바람도 세차니 바깥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집안에 틀어박혀 음악과 책으로 며칠씩 보내기도 했습니다. 겨울잠 자는 짐승이 돼버리면 자칫 지루하고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한낮에 두세 시간 규칙적인 활동을 해야 활기가 돋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죠. 다행히 시골 정원엔 일거리가 널렸습니다.   
 
주목에 핀 눈꽃과 벽난로의 불꽃
 주목에 핀 눈꽃과 벽난로의 불꽃
ⓒ 김은상

관련사진보기


사람만 추위에 약한 것이 아닙니다. 야외 급수 설비, 즉 부동급수전(不凍給水栓)은 얼지 않는 마당의 수도꼭지인데, 말이 그렇지 지하수 또한 강추위에 얼 수 있으니 보온재로 감싸줍니다. 마대로 감아준 홍가시나무와 금목서도 뿌리가 얼지 않도록 주변에 왕겨를 듬뿍 얹어줍니다. 수국과 무화과도 같은 이불을 덮어주고요. 우선 살아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움을 틔우려면 거름이 필요합니다. 일 년 내내 썩힌 퇴비를 유실수 주위에 뿌려주고 마른풀과 낙엽으로 덮어줍니다. 거름은 양분을 가져가는 뿌리 끝(나무의 가지 끝과 거의 일치한다고 하네요) 주변에 주는데, 햇빛 다툼을 하는 지상의 모습과는 달리 땅속에선 미생물을 통해 평화롭게 양분을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겨울엔 하얀 눈이 꽃입니다. 초록의 침엽수에 소복이 핀 꽃은 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다른 의미의 탄생이죠. '겨울이 되어야 솔 푸른 줄 안다'던가요? 다른 계절엔 무심히 보아 넘기던 상록수들의 생기가 빛나는 때입니다. 눈꽃 속에 피어난 동백은 그 절정이죠. 다산의 상징으로 여긴 것이 꼭 많은 열매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태아였습니다. 탄생을 준비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네요. 세 개의 계절을 위한 잉태의 시간이죠. 지난해 많은 꽃을 보았고 그들이 떨군 무수한 씨앗이 있으니 봄을 기대하게 됩니다. 과연 그들과 똑닮은 자손들로 이어질까요?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던 때 말이죠. 꿈을 깨게 하는 각성제가 현실이라면 반대로 혹독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미소 짓게 하는 기다림으로 힘든 계절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태그:#정원생활, #정원, #전원생활, #시골살이, #은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