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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산책을 나서면 언제나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꽃과 나무들, 바삐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동네 주민들,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 몸을 씻는 노숙자들, 야광봉을 들고 근무 중인 경찰들, 기둥 혹은 벤치를 꼭 껴안고 잠든 주취자들, 한때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었을 쓰레기들, 그리고 길가의 고양이들이다.

퇴근길 허겁지겁 달려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사라진 뒤 밤이 되고 나면,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는 고양이들의 도시가 된다. 블록마다 고양이가 보이고 빌딩의 대리석 난간을 조심스레 걷다가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춘 고양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밤이 되면 돌아오는 고양이들의 무대 
 
같은 길을 꾸준히 다니면 시간대마다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처럼 인도로 다니는 고양이, 담벼락을 걷는 고양이, 차도에 멈춰 서서 사람을 구경하는 고양이 등 매우 다양하다.
▲ 해가 지면 도시를 활보하는 길고양이들 같은 길을 꾸준히 다니면 시간대마다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처럼 인도로 다니는 고양이, 담벼락을 걷는 고양이, 차도에 멈춰 서서 사람을 구경하는 고양이 등 매우 다양하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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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과 인사동의 고양이들은 지붕 위 산책을 즐긴다. 낮은 한옥의 지붕에 누워있거나 천천히 걷는다. 기왓장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친 모습을 보면 아찔한데, 정작 고양이들은 너무 편안해 보여서 '고양이와 할아버지'(영화)를 생각하게 만든다.

종로구청에서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걷다 보면 빌딩 입구의 잘 꾸며진 화단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얼굴 전체가 검은색이고 눈이 반짝거리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다. 어리지만 야무지고 사람을 쉴 새 없이 경계하며 자기 밥그릇을 챙긴다. 아무래도 길에서 나고 자란 듯해서 볼 때마다 '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스의 장편 소설)를 생각하곤 한다.

반면 세종문화회관 난간을 걷는 고양이는 특별히 조용하다. 집회나 행사로 광화문 광장이 시끄러울 때는 숨어있지만 자정이 넘어 사람들이 사라지고 광장 주변의 노숙자들도 잠자리에 들면 활동을 시작한다. 세종문화회관의 불이 꺼지고 가로등과 경찰의 불빛만 남은 광장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의 난간을 사뿐히 걷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캣우먼'(미국 DC코믹스의 캐릭터)이다.

나무나 풀숲이 거의 없는 무교로의 고양이들은 쓰레기 더미와 자동차 사이를 활보한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거리의 무법자처럼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를 활보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지만 그걸 쓰레기봉투를 찢는 일에는 잘 쓰지 않는 듯하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쌓인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곳을 가볍게 뛰어넘고는 맞은편에 주차되어 있는 차 밑으로 사라진다. 마치 뮤지컬 '캣츠'(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의 무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정동길의 고양이들은 정동 로터리를 사람처럼 지나간다. 산책하는 사람들처럼 인도와 차도를 구분 없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정자세로 앉아 사람을 구경한다. 화단의 난간을 따라 걷기도 하고 화단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정동의 모든 장소를 편안하게 돌아다닌다. 관람료 없이 덕수궁 출입이 가능한 것 정도가 사람과 다른 점이랄까.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남작 바론'이 생각난다. 

하얀 고양이들과의 만남
 
9월 8일 저녁에 처음으로 만난 고양이다. 다른 고양이들의 텃세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풀숲에 숨어 가냘픈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며 먹이를 전혀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픈 건지 다음부턴 주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 9월에 만난 길고양이 9월 8일 저녁에 처음으로 만난 고양이다. 다른 고양이들의 텃세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풀숲에 숨어 가냘픈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며 먹이를 전혀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픈 건지 다음부턴 주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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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치듯이 산책을 계속하던 지난 9월 8일 저녁, 서울 정동에서 보송하고 하얗고 깨끗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길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청결한 두 마리의 고양이는 다른 정동길의 고양이들과는 달리 사람이 있는데도 울음소리를 냈다. 둘째 아이가 깜짝 놀라서 다가가자 애교를 부리며 작게 울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편의점에서 먹이를 사서 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앉아서 얌전히 먹이를 먹고는 울음을 멈추었다.

다음 날 먹이를 챙겨 같은 시간에 찾아갔더니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양이 한 마리는 온 몸에 나뭇잎을 묻힌 상태로, 우리를 보자 놀란 듯 후다닥 숨어버렸다. 다른 한 마리는 아직 깨끗한 상태였지만 울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넓은 정동길을 잘만 돌아다니는데 이 고양이들은 같은 위치를 벗어나지 않은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우리는 매일 저녁이면 고양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처음보다 조심성이 늘어가고 하루가 다르게 털이 지저분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고양이들은 원래 누군가의 집에서 살던 고양이었으리라 짐작했다.

털 상태와 행동거지로 볼 때, 처음엔 깨끗한 곳에서 사랑받으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버림받은 고양이들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는 매일 고양이를 보고 싶어 했고, 산책 때 만나서 어제보다 더 더럽고 지쳐 보이는 듯한 고양이를 보면 슬퍼하면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에게,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 먹이를 두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고양이가 식사를 마친 후에는 주변을 깨끗이 치워야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가 묻는다. 

"고양이를 사랑하는데 왜 길에 버리지? 그리고 버려진 고양이들을 사람들은 왜 싫어하지? 고양이가 사랑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버려달라고 한 적도 없을 텐데...

고양이도 사람말을 하면 좋겠어. 그럼 누가 버리고 갔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할까."


'쾌적한 도시환경을 위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작고 어리고 여린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두 가지 주장 중 더 교육적인 것은 무엇일까.

물과 먹이를 주지 않으면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천연기념물의 생명은 소중하지만 인간이 버린 고양이의 생명은 하찮은 것인가. 도시의 미관과 전염병 예방을 위해 버려진 동물들을 '제거'하는 것을 옳다고 봐야 할까. 

후각 좋은 고양이가 다시 집에 오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버리고 가는 전 '집사'와 남이 버린 고양이를 가엾게 생각해 밤마다 먹이를 주는 '캣맘' 혹은 '캣대디'의 모습을 동시에 그려본다. 둘 중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엄마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한 명의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 인간의 모습을 고민하며 길고양이들을 마주했다.

고양이를 보면 '귀여운 냥냥이다!'라고 외치며 사진을 찍고 인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그 냥냥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늘 배가 곯은 상태라 애처롭게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고 나니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고양이는 물건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쓰다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공장에서 생산하고 바코드를 찍어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러니 키우기로 한 사람들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맞을 텐데도 그러지 않고 물건처럼 버리기도 한다. 집도 먹이도 없이 맨몸으로 버려진 고양이들은 사람이 만든 도시에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영물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odd-Eye)의 페르시안 고양이부터 삼색 얼룩고양이까지, 많은 고양이들이 버려지고 길고양이로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길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품에 안겨 길거리를 떠나는 고양이도 있고, 길고양이의 삶과 집고양이의 삶을 반복하며 늙어가는 고양이도 있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 사람만큼 많이 본 동물이 길고양이인데, 그들 삶을 외면하고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를 설득할 능력이 내게는 부족했다. 아이 뜻대로 밤마다 먹이를 주러 나가면서도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약 두 달 간 지속된 우리의 길고양이 보살핌은 그러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끝났다. 고양이들이 거주하던 풀숲은 가지치기로 바닥을 드러냈고, 은신처를 잃은 고양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곧 입동(11.8)이 다가오는데 이 추운 계절을 어디에서 보내려 하는 것일까. 내년 봄에 풀숲이 다시 우거지면 돌아올까. 그때까지 잘 살아 있어야 할 텐데.

지난 8월 농립축산식품부는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했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은 2022년 기준으로 4조원 이상이며 2027년에는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자료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반려동물을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무덤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아져 관련 산업까지 커지고 있는데, 동시에 어떤 동물들은 쉽게 길거리에 버려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그 즈음 아이들이 경험하게 될 서울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지금처럼 보이는 대로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버리거나 죽이고, 고양이가 인간을 향해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는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추고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평화롭게 사는 미래, 그런 미래가 과연 가능할까.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길고양이, #고양이, #반려동물, #캣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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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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