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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兒: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 올해 가장 정성을 들였던 저의 시간, '말랭이 동네글방 선생'으로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머물고 있었을까요. 어찌 보면 '일벌'유전자가 제 몸속에 있는지도 모르죠. 지난 8개월 동안 마을 어른들과 글과 시로서 만든 '인연의 그물'을 더욱더 짱짱하게 당기고 싶어서 오늘의 행사를 합니다."

사람들을 초대하며 아침편지에 썼던 글이다. 

내가 전북 군산 말랭이 마을에 입주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도 만 2년이다. 작년에는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든 빨리 소통하고 싶어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여 마을이야기를 책으로 냈었다.
 
시낭송 잔치를 축하하러 온 방청객들. 손님맞이 의자 50여개가 주인을 맞았던 뜨거운 현장이다.
 시낭송 잔치를 축하하러 온 방청객들. 손님맞이 의자 50여개가 주인을 맞았던 뜨거운 현장이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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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속 얘기를 들으면 더 빨리 친해지는 법. 그분들이 가장 소원하는 것 중 하나가 '공부하기'였다.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 또는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배우면 더 바랄 게 없지'라며 공부를 하고싶어 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일이 올해 열린 '동네글방'이다. 

평균 연령 78세, 마을 거주 평균 45년의 경력을 가진 마을 어머님 11명이 글방 학생으로 들어왔다. 3월부터 10월까지 주 1회(매주 월요일 오전)씩 30여 주간을 만나서 가르치고 배웠다. 문해교육에서 주로 쓰는 기본교과서 4권 중 3권을 이수했고, 매번 시 한 수를 함께 낭독했다. 또 그림책 읽기 시간엔 어른이 읽는 동화의 참맛을 통해 당신들 삶을 드러냈다. 

'우리가 뭔 시를 쓰는가. 우리는 한글도 제대로 못쓰는 고만. 동사무소나 은행 같은 데 가서 뭔 서류 같은 거에 내 이름 석 자 쓰고 말귀나 알아들어도 좋겠어. 그 정도만이라도 알면 다행이제.'라며 시작했던 동네글방 수업이 얼마나 어떻게 발전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마을 어머니들은 수업을 함께 맡은 김정희 시인 덕분에 그림책과 시낭독을 즐겼고, 한글의 자모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두 서명의 어머님들은 서아무개 선생의 별도 보충수업까지 받았다. 그렇게 보낸 8개월의 수업기간. 떨리던 손으로 쓰던 한 단어가 한 문장이 되고, 한 단락이 되더니 이제는 A4 종이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데 두려움이 없는 분들까지 나왔다. 
 
내 말도 시가 될 수 있구나


'시가 뭐여? 우리가 시를 어떻게 써...'라고 했던 분들이 이제는 당신들 말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시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게 살아있는 최고의 시를 당신들이 쓰고 있음을 알았다. 매시간 함께 낭송했던 시의 한 구절을 뽑아내 당신들 삶의 면면과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거친 세상을 살아온 경험이 새겨진 몸과 마음을 글로써 나타냈다. 말로써 토해내면서 당신들의 배우지 못한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올해도 이제 두 달 여 남짓 남은 이 귀한 시간들 속에 특별한 추억앨범 하나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동네글방 시낭송 잔치'를 하겠다고 모두 의무적으로 참석하셔야 된다고 발표했다. 신기한 것은 '못혀 못혀, 아이고 안혀.'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남들 앞에서 시를 낭송한다고 한 게 벌써부터 떨리는 고만. 그래도 한번 해봐. 우리가 어디 가서 시를 말하겠어'라고 말하는 열성 어머님들의 협조에 드디어 잔치마당을 열기로 결정했다. 

각자가 낭송할 시를 정하고, 전문 낭송가를 초빙하여 시 낭송모습을 듣고 보았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켜고 낭송하는 걸 따라 했다. 시를 적어 준 종이가 구겨지고 흐물거릴 정도로 매일 암송한 흔적이 역력했다. 지난 주말에는 중간검사를 요청했더니, 일찍 나와서 공방에서 소리 내어 읽으며 서로가 부끄럽다고 하시는 모습이 마치 신이 난 어린아이들 같았다.

행사를 공고한 후, 동네글방수업의 과정을 지켜본 지인들은 행사진행에 들어갈 비용으로 쓰라고 소소한 후원금을 보내주었고, 재능기부로 가야금병창을 하며 행사를 축하하고 싶다는 예인도 있었다. 책방에서 보내는 아침편지를 읽고 글방 수업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있는 분들은 답글로서 격려의 말을 보내주었다. 

드디어 '말랭이동네 글방학생 시 낭송 잔치'의 문이 열렸다. 행사 제목은 <낙엽 따라 찾아온 시성(詩聖) 그대 목소리>로 정했다. 행사를 기억하기 좋게 10월 30일 오전 10시 30분으로 했다. 이날 아침 일찍 나온 마을 주무관들은 행사장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해 주고, 떡이 날아오고 꽃차가 준비되고 지인들은 꽃다발을 들고 왔다. 

정말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최고령 방자님(87세)의 리허설 모습. 김소월 시인의 <먼훗날>을 낭송한 방자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듯하다.
 최고령 방자님(87세)의 리허설 모습. 김소월 시인의 <먼훗날>을 낭송한 방자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듯하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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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행사 30분 전 리허설을 가졌다. 가장 잘 암기하시던 M어머님은 자신이 첫 번째 주자라고 도저히 떨려서, 숨 막혀서 못하겠다고 했다. 정말로 마이크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내 다른 분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암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가 써진 종이를 보고 읽으셔도 좋다고 긴장을 풀어 드렸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암기한 당신들의 열정을 믿었던지 본 식이 시작되면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손님들이 얼마나 올까 싶어 의자를 30여 개를 배치했는데, 혹시 몰라 더 준비한 의자들까지 약 50여 개 의자가 모두 주인을 맞았다. 동네글방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말랭이 어머니들의 변화과정을 종종 전해 들었던 터라, 정말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러 행사장을 찾아 들어오셨다. 

군산의 전문 시 낭송가 분들, 가야금 병창을 비롯하여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 축하 찬조출연을 해주셨다. 간단히 동네글방 수료식의 개념으로 열었던 행사가 마을을 넘어 지역의 문화 인장처럼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명희님은 윤동주의 <서시>, 대순님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덕순 님은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정자님은 고은의 <가을편지>, 흥례님은 나태주의 <풀꽃 1,2,3>, 방자님은 김소월의 <먼 훗날>, 흑자님은 김소월의 <개여울>, 승자님은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정엽님은 김춘수의 <꽃>을 낭송했다.
 
1등상 흥자님의 낭송 <개여울> 시간. 또박또박 김소월 시인의 마음을 잘 전해준 최고의 낭송. 큰 박수를 받았다.
 1등상 흥자님의 낭송 <개여울> 시간. 또박또박 김소월 시인의 마음을 잘 전해준 최고의 낭송. 큰 박수를 받았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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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 한분 낭송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어머님들의 얼굴엔 함박꽃이 피어났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형식상 가장 잘 암송하고 감정표현을 잘 나타낸 분에게 최고상을 주었는데, 흥자님의 <개여울>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손과 발, 입술이 떨려서 말도 잇지 못하겠다는 어머님, 백발이 머리에 내려 앉은 이 나이에 이런 시낭송 자리에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마을에 와서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했던 내가 마을 어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되고, 그 끝을 시낭송 잔치라는 형식으로 갈무리하며 아름다운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이제 그들의 자작시를 전시하는 일만 남았다. 내 인생의 가을 수확치고는 최대의 결실, 최고의 결실이니 어찌 이보다 더 행복하랴!
 
시 낭송가가 된 9명의 마을 어머님들. 동네글방 수업 30주간을 마친 어머님들의 아름다운 모습
 시 낭송가가 된 9명의 마을 어머님들. 동네글방 수업 30주간을 마친 어머님들의 아름다운 모습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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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낭송, #말랭이마을, #동네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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