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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제대 후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종로구 어느 소재에 주거지를 잡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모를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가파른 언덕을 수백 미터를 올라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그야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가 바로 그곳이었다.

그 당시 몸 하나 믿고 서울로 올라온 나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밤이슬 안 맞고 잠만 잘 수 있는 그런 방한칸만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어느 허름한 판잣집의 10평도 채 안 되는 쪽방 생활을 자처했다.

사방팔방이 꽉 막힌 방, 대낮에도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금의 고시원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생활 환경이어도 괜찮았다. 여름 장마철이면 유독 심해지는 눅눅한 습기와 벽지 여기저기에 까맣게 피어오른 곰팡이 꽃에도 월세 3만 원의 싸구려 쪽방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빨래는커녕,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것조차도 주인 눈치를 봐야 했던 생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인 화장실조차 마음 편하게 갈 수 없었던 최악의 생활환경도,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있었기에 견딜 만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덜 먹고, 덜 입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현재 살고 있는 빌라를 분양 받았다. 물론 장단기 융자 포함 60% 이상 은행 대출을 낀 사실상 은행 소유의 빌라였지만, 쪽방살이를 청산할 수 있는 어엿한 내 집이 생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해 질 녘 우리 집에서 바라본 노을이 아름답다
 해 질 녘 우리 집에서 바라본 노을이 아름답다
ⓒ 신 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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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저녁 무렵이면 아름다운 해넘이를 볼 수 있는 사방팔방이 탁 트인 시원한 환경,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방 3개짜리 집이었기에 더없이 좋았다. 몸에서 신호만 오면 방 안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집주인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펑~펑~' 쓸 수 있는 물, 특히 겨울철 온수 사용은 이 세상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나만의 특권인 것 같았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현재 우리 집은 아주 오래된 낡은 빌라가 되었다. 안전상의 문제는 없다지만 주거 환경으로 보면 결코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집이라 볼 수 없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사를 갔어도 진즉 갔어야 할 빌라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 집을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 이유는 집이 아무리 오래되고 낡았어도 그 집이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드는 집이 최고의 보금자리라는, 집에 대한 내 나름의 철학이 있기에 이 집을 떠날 수 없다.

태그:#우리집,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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