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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4년만에 휘날리는 만국기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 가을 운동회 만국기 코로나로 인해 4년만에 휘날리는 만국기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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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 즈음이면 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난다. 콩주머니 던지기, 줄다리기, 큰 공 굴리기, 차전놀이 등 운동회 종목은 매년 비슷했지만, 옛날 그 시절 운동회는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깨진 박에서 '점심시간' 문구 펼쳐질 때의 환호

옛날 초등학교 운동회가 생각난다. 운동회는 주로 가을 추석 전에 했다. 운동회를 위해 한 달 정도는 연습했던 것 같다. 뜨거운 운동장에서 연습하느라 얼굴도 탔다. 특히 무용이나 마스게임 연습을 많이 했다. 단체 게임 연습도 여러 번 해야했다. 특히 포크댄스 연습할 때 남학생과 여학생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잡기가 싫어서 소매를 잡거나 작은 나뭇가지 양쪽을 나눠 잡았던 기억이 난다.

운동회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은 꼭두각시 춤과 부채춤 그리고 저학년의 콩주머니 던지기, 고학년의 차전놀이, 줄다리기, 기마전 등이었다. 장애물 넘기와 손님 모시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콩주머니 던지기로 박을 깨야 하는데, 잘 깨지지 않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 깨진 박에서 '점심시간'이란 글이 주르륵 내려오면 환호성과 함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운동회 당일에는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동네잔치를 했다. 김밥 이런 것은 없었고, 엄마가 싸 오신 밥을 함께 나눠 먹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게임을 했다.

운동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청백 계주다. 어릴 적 나는 달리기를 잘해서 늘 청백 계주 선수로 뽑혔다. 청백 계주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어지기에 늘 엎치락뒤치락했다. 청백 계주에서 한 명이 넘어지면 역전이 되어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이 울린다. 역전으로 이길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우리 학교는 이번 주에 가을 운동회를 했는데, 단 하루도 연습하지 않았다. 2학년 우리 반 학생들도 담임인 내게 운동회 하는데 연습은 안 하냐고 물어본다. 요즘 운동회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운동회라기보다는 놀이마당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운동회는 운동회다.

아침에 출근하니 만국기가 달려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만국기다. 감회가 새롭다. 코로나로 4년 만에 운동회를 한다. 요즘 운동회는 위탁업체가 학교에 와서 만국기도 달아주고 진행도 해 준다. 사전에 학교에 와서 한 번 브리핑을 해 주고 간다. 그게 다다. 참 편리하다.

연습 없이 즐기는 요즘  운동회, 아니 이벤트
    
요즈음엔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위탁업체를 불러 이벤트처럼 운동회를 한다. 위탁 운동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자이고, 교사는 흐름이 끊기지 않게 프로그램 순서대로 줄을 세워서 준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진행자도 순발력 있게 잘해서 즐거운 운동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 학교는 대도시 학교지만, 전교생이 250여 명 되는 작은 학교다. 큰 학교의 한 학년 정도 된다. 작은 학교라서 좋은 점도 있다. 전교생이 한자리에서 함께 운동회를 진행할 수 있다. 운동회가 오전에 모두 끝나고 급식을 먹고 하교한다.

운동회날 아침, 운동회를 축하해 주듯 날씨도 정말 좋았다. 국민의례와 교장 선생님 축사로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니 가을 운동회 느낌이 제대로 났다. 준비 체조를 하고 스탠드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회여서 그런지 학부모님께서도 많이 오셨다.
 
1,2학년 운동회 종목으로 부모님이 들어주신 구름다리를 신나게 뛰어가고 있다.
▲ 구름다리 건너기 1,2학년 운동회 종목으로 부모님이 들어주신 구름다리를 신나게 뛰어가고 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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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년이 두 반이라 홀수 반은 청군, 짝수 반은 백군이다. 우리 반은 짝수라 백군이 되었다. 위탁 레크리에이션 회사에서 놀이 기구를 가져와서 1, 2학년과 3, 4학년, 5, 6학년 군으로 묶어 게임을 진행했다. 학년군 별로 모두 세 종목 정도의 게임과 전체 게임이 진행되었다. 

"영차! 영차!" 어른들 기합소리, 아이들은 "우리편 이겨라"

먼저 1, 2학년 경기가 시작되었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전교생 학부모님께서 도와주셨다. 일명 '구름다리를 건너' 놀이이다. 학부모님께서 들어주신 긴 천막 위를 구름을 걷듯 뛰어가는 게임이다. 가벼운 학생은 괜찮은데 몸무게가 조금 나가는 친구들은 힘드셨을 것 같다. 청군이 이겼다. 누가 이기든 오늘은 점수판이 없기에 문제없다. 그저 재미있게 즐기면 된다.

오늘 운동회에서 학부모님 줄다리기도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님들도 많이 참가하셔서 오랜만에 운동회 기분을 내셨다. "영차! 영차!"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학생들도 우리 편이 이기라고 목청 높여 응원을 한다. 
 
5, 6학년 경기로 큰 공을 머리 위로 굴리는 경기이다.
▲ 지구를 굴려라 5, 6학년 경기로 큰 공을 머리 위로 굴리는 경기이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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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경기도 있었다. 혹시라도 다치시면 안 되기에 신경을 썼다. 어르신 경기는 일명 '고무신 양궁'으로 고무신 던지기였다.

가운데 동그라미에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을 던지면 100점인데, 100점을 받으신 어르신도 네 분이나 되셔서 선물도 두 배로 받으셨다. 나는 쌍둥이 손자가 2년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나중에 손자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나도 어르신 경기에 참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어본다.  

운동회가 계획한 대로 깔끔하게 끝났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운동회도 바뀌는 것이 맞다. 옛날 운동회는 보여주는 운동회라 거의 한 달 정도를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학습 결손도 많았고, 더운데 연습하느라 학생도 교사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운동회라는 말보다 체육대회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보여주는 운동회가 아니라 즐기는 운동회다. 연습을 안 하니 자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학부모님도 좋아하신다. 학습 결손도 없다.

이번 운동회가 끝나고 학부모님도 교사도 학생도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화합의 장이 되었다. 연습에 치중하느라 스트레스도 받을 필요도 없고, 수업 결손도 막을 수 있었다. 분명 장점이 많다. 한번 업체를 부르면 3~4백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여기에 학교 예산이 들긴 하지만,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가끔 옛날 운동회가 그리운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만국기 휘날리며 즐겁게 진행된 가을 운동회를 보며 오래전 운동회를 추억해 보았다. 그때가 오늘은 많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할 예정입니다.


태그:#가을운동회, #체육대회, #위탁운동회, #줄다리기, #만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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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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