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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마운트 레이니어 선라이즈에서의 레이니어는 웅장하고 신령스러웠다. ⓒ CHUNG JONGIN

사철 산봉우리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마운트 레이니어(Mount Rainier)를 찾았을 때는 휴가철이 끝나가는 8월 말이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아침 7시경에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으나 레이니어는 안개속에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레이니어 최고 인기 등산로인 스카이라인 루프(Skyline Loop) 트레일은 8월이 무색하게 쌀쌀했고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햇빛을 가리려 준비한 모자는 방한모가 되었고 몸은 촉촉하게 젖었다. 트레일을 걷노라니 연극무대 조명 아래에 있는 느낌이었다. 길 양쪽의 이름 모르는 야생화와 나무와 들판은 선명했으나 멀리 보여야 하는 레이니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근교 어디서나 보인다는 레이니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어버리는 산이었다. 날씨가 흐리면 당연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맑은 날씨에도 새벽의 찬 공기가 수증기로 변하면서 오전 중 산은 안개로 덮여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우리가 레이니어를 찾은 날은 8월이었지만 아침 공기가 10도 아래에 머물러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해발 4,392m의 마운트 레이니어는 워싱턴주의 상징으로 시애틀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누구나 흰 눈으로 덮인 신비의 산봉우리를 마주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16곳 중 하나이지만 신령스러운 산봉우리가 보고 싶어 매년 16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감히 정복할 생각은 못 해도 가까이 다가갈 수야 있지 않겠는가?

18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운트 레이니어는 방문객들이 레이니어를 탐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섯 곳을 개발했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 파라다이스(Paradise)와 선라이즈(Sunrise)다. 
 
스카이라인 루프 트레일에서 본 비경 안개의 방해로 눈 덮인 레이니어 산봉우리는 포기하고 안개 속에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비경에 만족해야 했다. ⓒ CHUNG JONGIN
 
특히, 레이니어 남쪽 중턱의 파라다이스는 가장 붐비는 곳이다. 그곳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파라다이스인((Paradise Inn)이 있고 레이니어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여러 개의 길고 짧은 등산로가 있다. 그중에서도 파라다이스 경관을 일주하며 볼 수 있는 스카이라인 루프(Skyline Loop) 트레일은 으뜸이다.
  
10km의 다소 힘들다고 할 수도 있는 트레일은 시계방향으로나 그 역방향으로 걸어도 모두 레이니어의 신비한 설경과 빙하, 그리고 시선 아래 펼쳐지는 초원과 야생화, 무표정한 마멋(marmot)에 매료되는 곳이다. 이런 풍광을 상상하며 아침 일찍 분주히 준비하여 찾은 곳인데, 그만 안개의 방해로 레이니어산의 설경을 포기해야 했다.
 
레이니어 없는 눈밭 눈밭 너머 보이는 마운트 레이니어가 가장 멋있어 보인다는 지점이다. ⓒ CHUNG JONGIN
 
역 시계방향을 택한 우리는 안개속에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비경에 만족하며 여러 번의 오르내림을 거치고 작은 냇물을 건너며 레이니어 없는 눈밭을 구경했다. 바위를 헤치고 돌밭을  통과하느라 다리가 피곤해질 무렵 트레일의 랜드마크인 파노라마 포인트(Panorama Point: 약 2,100m)에 도달했다.

하늘은 맑았으나 캐스케이드산맥의 여러 산과 심지어 오리건까지 볼 수 있다는 곳에서 안개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습은 행복해 보였고 안개와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Nothing'이라고 외치며.
 
파노라마 포인트 등산객들은 레이니어 없이 안개와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 CHUNG JONGIN
   
파라다이스 건너편의 산세 안개가 사라지면서 하산길에 파라다이스 건너편의 산세를 볼 수 있었다. ⓒ CHUNG JONGIN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제야 안개가 점차 사라지면서 파라다이스 건너편의 산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잖게 앉아 있는 마멋을 만났다. 레이니어는 오후에 방문한 리플렉션 레이크와 벤치 레이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레이니어는 호수 저편 위에서 부끄러운 듯 구름 속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었고 그 모습이 호수 위에도 나타났다.
 
점잖게 앉아 있는 마멋 동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매우 정적인 동물 ⓒ CHUNG JONGIN
      
벤치 레이크 레이니어는 호수 저편 위에서 부끄러운 듯 구름 속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 CHUNG JONGIN
 
첫날 숨어 있던 레이니어는 둘째 날 방문한 선라이즈에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전날과 같은 시각이었으나 날씨는 훨씬 따뜻했고 주차장에서부터 레이니어의 하얀 산봉우리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름 그대로 해가 뜨는 마운트 레이니어 동쪽에 위치한 썬라이즈에는 길고 짧은 트레일이 몇 개 있으나, 우리는 큰 노력 없이 걷는 내내 레이니어의 하얀 봉우리를 실컷 감상할 수 있는 약 9km의 마운트 프레몬 룩아웃(Mount Fremont Lookout) 트레일을 택했다. 
 
마운트 프레몬 룩아웃 트레일에서 보이는 레이니어 산봉우리 산행 내내 레이니어의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봉우리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 CHUNG JONGIN
 
마운트 프레몬 룩아웃 트레일은 전날의 스카이라인 루프 트레일과는 달리 왕복 코스로 레이니어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원주의 아주 작은 부분을 걷는 길이었다. 밤하늘의 달이 우리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걷는 내내 레이니어의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봉우리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해가 점점 높이 뜨면서 밝은 햇살이 봉우리에 쌓인 눈을 반사해 레이니어는 흐릿해지고 프로즌 레이크(Frozen Lake)를 지나 계속되는 가파름에 우리는 땀을 흘리며 헐떡거렸다. 그 순간 멀리 프레몬 전망대가 보였다. 갈 길은 멀었으나 목표물은 눈앞에 있었다. 
 
마운트 프레몬 전망대로 가는 길 갈 길은 멀었으나 목표물은 눈앞에 있었다. ⓒ CHUNG JONGIN
 
전망대(2,182m)에 도착하니 언제 와 있었는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바위틈에 자리 잡고 준비한 점심을 먹는데 손가락만 한 다람쥐들이 같이 먹자고 다가왔다. 다람쥐들은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돌아가는 길 역시 레이니어는 어제의 불친절을 만회하려는 듯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우리를 따라붙었다. 
 
나체스피크 루프 트레일에서의 레이니어 나체스피크 루프 트리엘은 시계방향으로 돌면 내려오는 동안 레이니어의 하얀 봉우리를 계속 볼 수 있는 코스다. ⓒ CHUNG JONGIN
 
사흘째 되는 날 레이니어를  떠나기 전 우리는 한 번 더 레이니어의 산봉우리와 만났다. 길지 않고 무난한 난이도의 나체스피크 루프(Naches Peak Loop)였다. 팁수 레이크(Tipsoo Lake)에서 시작하는 트레일을 우리는 역 시계방향으로 걸었으나 시계방향으로 돌면 내려오는 동안 레이니어의 하얀 봉우리를 계속 볼 수 있는 코스다.

등산로에는 작고 예쁜 호수들이 있어 가족들과의 산행에 적합하다. 등산로에서 만난 한 엄마는 이곳에 자주 오는지 "가을에 꼭 오세요. 단풍이 들면 정말 좋습니다. 제 말을 잊지 마세요"라고 당부에 가까운 말을 했다.

눈 덮인 레이니어산은 두 가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빙하의 소멸이다. 레이니어도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로 국립공원이 된 이후 42%의 빙하가 사라졌다. 언젠가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레이니어 산봉우리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헬멧으로 변할 수 있단다.

또 다른 위협은 화산 폭발이다. 1980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헬렌스가 폭발했기에 활화산인 레이니어산으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눈으로 덮인 레이니어가 폭발한다면 엄청난 홍수가 발생하며 큰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이니어는 여전히 위풍당당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레이니어를 찾아 즐겼듯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레이니어를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마운트 레이니어 일정
첫날: 스카이라인 루프(Skyline Loop) 트레일 -> 나라다 폭포(Narada Falls) -> 리플렉션 레이크(Reflection Lake) -> 벤치 앤 스노 레이크(Bench and Snow Lakes) 트레일
둘째 날: 마운트 프레몬 룩아웃(Mount Fremont Lookout) 트레일 -> 크리스털마운틴(Crystal Mountain)에서의 곤돌라
셋째 날 오전: 나체스 피크 루프(Naches Peak Loop)

태그:#마운트 레이니어, #스카이라인 루프(SKYLINE LOOP) , #마운트 프레몬 룩아웃(MOUNT FREMO, #나체스피크 루프(NACHES PEAK LO, #마운트 세인트헬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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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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