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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학춤 추는 그림. 혜원 신윤복의 인물 그림을 참고로 해서 붓펜으로 그렸다. ⓒ 오창환
   
동래학춤을 처음 본 것이 딱 10년 전인데,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했던 연세 탈춤연구회 창립 40주년 기념 공연 때였다. '춤패 마구잽이'가 축하공연으로 학춤을 추었는데 어찌나 멋지던지! 까만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너풀너풀 추는 춤이 너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연락을 해서 학춤 강좌를 열었다. 춤을 배우면서 우리도 '춤패 연'을 만들었고, 학춤이라는 레퍼토리를 갖게 되면서 공연 요청도 꽤 많이 들어와서 적지 않은 공연을 했다.

학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두루 공연할 수 있어서 좋다. 좋은 날에는 신명 나는 굿거리장단에 흥을 돋울 수 있고 슬픈 날이나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학의 말없는 동작이 슬픔을 위로해 줄수도 있다. 학춤은 혼자서 추는 홑춤도 괜찮고 둘이서 추는 대무(對舞)도 좋다. 보통 5학에서 7학을 많이 하지만 무대만 넓으면 수십 명이 군무를 추어도 멋있다.

동래(東萊)는 근대이전까지는 부산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초량에 왜관(倭館)이 설치되어 동래가 일본과의 무역 거점 도시가 되었다. 일본에서 오는 외교사절과 무역사절을 위해 수준 높은 기예를 가진 기생이 출연하는 잔치를 열어줬다. 국가에서 교방을 설치해서 관기들에게 예기를 가르쳤다. 그후로 동래교방이 유명세를 얻었다.

게다가 동래에는 온천이 있어서 예로부터 놀이 문화가 발달하였다. 동래 줄다리기 놀이를 하면 2만여 명이 모여서 몇 날 며칠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때 동래야류(野遊)와 동래 덧배기 춤을 추었다. 경상도 지방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춤에 기방예술이 더해져서 동래 한량춤, 동해 학춤이 만들어졌다.

흔히 학춤이라고 하면 학모양의 인형을 뒤집어쓰고 타이즈 같은 것을 입고 추는 춤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궁중학춤이고, 동래학춤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춘다. 궁중학춤은 학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 반해 동래학춤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갓은 학의 검은 머리를 나타내고 도포자락은 학의 날개를 표현한다. 갓과 도포는 지금은 무대의상이지만 당시로는 일상 복이었다.
 
왼쪽은 저의 사진으로 활개짓뜀사위이고 오른쪽 사진은 모이먹는 사위다. ⓒ 오창환
 
춤을 빨리 익히려면 일단 춤 순서를 확실히 외워야 된다. 나는 춤 순서를 크게 써서 벽에다 붙여놓고 순서를 외웠다. 그런데 학춤의 구성을 보면 서사가 있다. 먼저 학이 멀리서 '활개짓뜀사위'로 날아와서 들판에 앉는다. 그리고 마치 인사를 하는 것 같은 동작이 있는데 모이를 갖고 노는 '모이어룸사위'다. 그리고 좌우로 횡보를 하다가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서 땅을 딛는 '배김사위'를 하는데, 그 앞뒤로 '좌우활개사위'와 '좌우풀이사위'를 한다.

그리고 원을 이루어 '배김사위'를 한번 더 하면 일단락이 되는데, 이렇게 끝나면 아쉬우니까 비슷한 동작을 다시 한번 반복하여 '활개짓뜀사위' 뒤에 '모이먹는사위' 그리고 다시 '배김사위'를 한 다음에 '활개짓뜀사위'로 훨훨 날아간다. 일단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순서를 까먹지 않고 잘 외우게 되면 그다음에 어떻게 춤을 추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올해 가을에는 학춤 공연이 많다. 지난 9월 9일은 서강대학교 교정에서 서강대 탈박 창립 50주년 공연에서 춤패 연 11학과 춤패 마구잽이 11학이 모여 22학으로 공연을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인 9월 16일에는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탈춤연구회 창립 50주년 기념 공연을 한다. 봉산탈춤이나 창작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동래 학춤도 주요 레퍼토리다.

또한 아주 특별한 공연이 있는데 어반스케쳐스 수원이 올해에 아시아 어반스케쳐들의 축제 '아시아 링크'를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하는데, 내가 학춤으로 아시아 링크 오프닝 무대에 서기로 했다. 춤패 연에서 나를 포함해서 5학이 날아갈 예정이다.

10월 27일에는 프랑스의 날 행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을 위해 공연을 해야 한다.
 
서강대 공연 장면이다. 위 사진은 배김사위이고 저는 가운데서 약간 오른 쪽에 있다. 아래 사진은 모둠사위 뒤에 손을 내리는 사위이다. ⓒ 오창환
 
여럿이 함께 합을 맞춰서 추는 군무는 특별하다. 학춤에서는 이동하거나 돌 때, 양팔을 쭉 벌리고 추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런 춤을 추면 엉뚱하게도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만든 영화를 보면 왕년의 명배우 앤서니 퀸이 조르바로 나온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춤을 춘다. 양팔을 쭉 피고서. 유튜브에 보면 조르바 플래시 몹이 많은데 조회수도 굉장히 많다. 기쁠 때도 출수 있고 슬플 때도 출수 있는 우리 학춤으로 플래시 몹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동래 한량춤의 대부이신 김진홍 선생님께서는 춤은 가만히 있어도 리듬을 보여줘야 된다고 하신다. 멋을 드러내지 않지만 멋있는 춤, 고요한 파도와 같이 춤을 추라고 하신다. 죽을 때까지 그런 춤을 출 수 있을까?

혹자는 겉모양만 꾸미지 말고 영혼이 있는 춤을 추라고 한다. 어떤 춤이 영혼이 있는 춤일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혼이 있는 춤도 좋지만 나는 영혼이 없는 춤도 좋다. 춤은 춤이니까.
태그:#동래학춤, #춤패연, #춤패마구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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