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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가장 뜨거운 일터는 어디일까? 용광로가 타오르는 제철소를 떠올리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곳은 바로 건설 현장이다. 둘의 차이는 폭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즉 실내기온을 어떻게 측정하고 휴식시간을 주느냐, 쉼터가 제공되는가 하는 지점이다. 뜨겁던 태양이 물러가고 선선해지는 요즘, 한철 내내 폭염에 시달리던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폭염 대책을 논의할 때다. 그래야 늘어나는 폭염 죽음을 막을 수 있다.[편집자말]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지난 8월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지난 8월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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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맞서야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에 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10년 전 폭염 산재를 다룬 글 맨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10년이 지났지만 류 이사장은 매해 여름이면 같은 말을 반복한다. 

류 이사장은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실제 열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WBGT(온열지수로 표기)를 직접 측정했다. WBGT는 일사량, 습도, 기온, 바람의 속도 등을 복합적으로 측정해 인간이 실제 느끼는 열 스트레스를 도출하는 지수다. 온열지수가 기준이 되면 최고기온은 31도지만 실내는 40도를 웃도는 찜통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 

지난 8월 18일 충북 청주시 일환경건강센터에서 만난 류 이사장은 정부가 '있는 법'을 적극 활용을 하는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법 해석에 따라 폭염 시기 노동에 대한 적극 행정 조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열 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 온열지수를 한여름 온열질환에 시달리는 폭넓은 실내·외 노동에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먼저 시행령 개정이나 고시 등을 고민해달라는 제언이다. 류 이사장은 "그럼 최소한 (해당 사업장에선)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사항이 되고, 강제성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래는 류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

"용광로서 측정하는 온열지수, 건설현장에도 확대해야"  
 
류현철 일환경센터 이사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류현철 일환경센터 이사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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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3개 건설 현장에서 온열지수(WBGT) 값을 측정했다. 이 지수는 기존 체감온도 지수와 뭐가 다른가.

"온·습도로 기상청에서 체감온도 지수를 만들기는 하지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건 온·습도만이 아니다. 복사열도 있다. 특히 건설업은 태양광을 받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내뿜는 열의 영향이 높다. 거기다 바람으로 땀이 증발하니 기류까지 더해 온도, 습도, 열, 기류 이 네 가지를 고려해야 인체 부하 정도를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해서 개발된 측정법이다.

개발된 지 꽤 됐다. 고열 작업자 지침을 보면, 이 기준으로 쉬고, 작업하도록 한다. 다만 상시로 열원이 있는 경우만 고열작업으로 분류한다. 용광로나 소각로 같은 곳이 그렇다. 안전보건공단에 제출된 보고(2022년)에서도 이 연구를 했다. (건설, 물류 등) 온열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7개 직종에 대해서다. 그러나 고열 작업을 새로 분류해야 한다고 제안한 보고서만 나오고, 실제 반영되지는 않고 있다."

- 왜 안 되고 있는 걸까.

"기술적 한계가 있다면 못하는 건데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다. 한철이라도, 고온에 노출되는 사람들에게 왜 적용하지 않을까, 용광로가 있어야만 뜨거운 게 아닌데 말이다. 사업주는 고열 작업으로 분류가 안 돼 있으니 온·습도계를 둘 이유가 없다는 거다."

- 지난해 측정 결과는?

"지난해에는 비도 많이 와서 (측정값이) 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매 시간당 25% 휴식, 즉 15분 휴식을 줘야 하는 온열지수 값 기준은 25.9도인데, 건설 현장(중작업)의 경우 측정 226시간 중 82.3%가 기준값에 해당했다. 매시간 50% 휴식해야 한다는 기준치는 46%가 나왔다."
 
일환경건강센터는 지난해 폭염기인 7월 19일부터 8월 19일간 건설현장 13곳에서 온도와 습도, 복사열 등을 복합적으로 측정하는 열스트레스 지수인 WBGT값을 측정했다.
 일환경건강센터는 지난해 폭염기인 7월 19일부터 8월 19일간 건설현장 13곳에서 온도와 습도, 복사열 등을 복합적으로 측정하는 열스트레스 지수인 WBGT값을 측정했다.
ⓒ 일환경건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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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수치다.

"지금은 지역별로 기상청 체감온도에 따라 폭염 주의보면 10분, 경보면 15분 휴식이 주어진다. 그런데 건설현장 온도는 그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온열지수 측정기는 비싸서 힘들다고 하는데 그럼 온·습도계라도 걸게 해서 실제 위험을 파악하고 기준을 맞춰야 한다. 기후는 강제로 조절할 수가 없으니, 휴식이라도 제대로 주자는 거다. (휴식으로도) 조절이 안 될 정도로 높은 온도라면 작업중지를 해야 한다."

- 폭염 산재 판결문을 보면, 다수 노동자들이 증상이 나타난 후에도 계속 작업을 이어가다 사망했다.

"'급박 위험' 기준 자체를 협소하게 해석하면, 정말 급박할 때 그 사람은 이미 죽는 거다. 중증으로 가지 않기 위해 '급박'의 기준을 판단해야 한다. 그럼 지수나 온도로 할 수밖에 없다. '작업중지 해도 되나요?' 묻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다. 현장마다 기상 특보를 듣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볼 수 있게 (측정기기를) 걸어 놓고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정도면 쉬자, 해야 한다."

- 시멘트 양생이나 철근 작업처럼 노동자들이 쓰는 장비 때문에 체감온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원재료에 대한 위험 개선 조치가 안 되면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 중지를 명령하라고 한다. 건설 현장의 원재료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닌가. 그런 조건들을 감안하지 않고 기상 특보만 이야기하자고 하면 답이 없는 거다. 비닐하우스 속 이주노동자들은? 냉방장치 없는 창고에서 일하는 분들은 또 어떤가. 복사열 때문에 (실내)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 폭염 특보 이전에도 이미 높은 상태다. 그런데 폭염특보에만 (관리 기준을) 맞추자고 하니 답답한 거다. 실제 현장 온도를 측정하는 게 가장 맞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열작업이 아니면, (측정) 의무가 없다."

- 다른 나라는 어떤가.

"독일은 실내 작업의 경우 최고와 최저 기온을 정해 놓는다. 어떤 식으로든 온도를 맞추라는 거다. 그럼 처음부터 (작업장 건물) 설계를 온도를 맞추도록 하는 거다. (온도 조절이 불가능한) 조건이라면, 휴식 시간을 (측정 기준에 맞춰) 더 관리하라는 거다."

"노동부장관령으로도 충분히 가능... 의지의 문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환노위 나온 이정식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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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정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고열작업 (항목) 중에 '고용노동부장관이 인정하는 장소'라 돼 있다. 그럼 장관이 (거기에) 령을 두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고시로도 할 수도 있다. 그럼 최소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사항이 되고, 강제성이 생기지 않겠나. 시정조치와 작업중지 명령을 할 때도 '우리는 이렇게 해석하니 시정 조치하고 작업중지 발동한다' 이런 권한을 발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거다. 의지의 문제다."

-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고열작업 장소'를 '폭염기 온열질환 건설현장 또는 온열질환 위험이 있는 장소' 식으로 넣으면, 의무를 사업주가 지게되고, 보건 규칙 사항이 되지 않겠나. 몇 년간 말해왔지만, 여전히 기상청 예보에 따른 기준만 적용된다. 법을 만들자면 한참 걸린다. 7, 8월이면 (폭염관련) 법안 이야기로 들끓곤 한다. 지금 올라가 소위 통과해봤자 연말인데, 그렇게라도 하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법안으로 다 해야 맞는 건가 싶다."

- 법안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나.

"우리나라 법 구조는 안전보건규칙을 두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노동부의 행정규칙에서 다시 규정을 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특정한 상황에 맞는 안전 보건규칙에 온열질환 예방 조치를 위한 디테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 기준이 없다면, 지금 있는 권한으로 시정조치라도 좀 하라는 것이다."

- 법안 말고 규칙으로 하자는 얘기같다.

"맞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고열 장소에 하부규정을 두자는 것. 이미 진행한 연구도 있고 당장 할 수 있다. 시정 조치 등 강력한 행정조치 권한 행사를 할 생각이 없는가 (노동부에) 묻고 싶기도 하다. 제발 실태에 맞는 디테일한 조치를 좀 찾아보라는 것. 우리도 했는데 노동부는 못하겠나. 걸어놓고 얼마나 변하는지 보고 어찌할지 숙의를 좀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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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부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동부가 가진 권한을 계속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어진 권한을 최소한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노동부의) 시정 조치 자체가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건설물이나 기계 설비'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후 문제가 왜 거기 들어가느냐고 하는데, 아니 공사 중 건설물 자체에 폭염에 대피할 장치가 안 돼 있다면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 식으로 (법을) 적극 해석하면 '건설 구조물에 온열질환 위험이 높으니 적절한 조치를 해라, 안 이뤄지면 작업 중지 명령할 수 있다' 하면 좋은데 그러지 않는 게 문제다."

- 우선 있는 법을 활용한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같다.

"그렇다. 노동부가 (관련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권고만 한다. 당연히 법률 상 해석의 문제 아닌가. 행정부 권한을 다툴 때 보면 '~등'의 조치 이런 걸 두고 싸우지 않나. 법무부는 시행령 정치로 난리라는데... 노동 안전 보건을 두고 전향적으로 싸워야 하는 게 노동부다. 혹여 법적 분쟁이 생긴다해도 적극 방어하고 논리를 설명해야하지 않을까."

- 이정식 장관은 폭염 노동에 대한 근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계속 밝혀왔는데 현장에서 변화가 있나.

"사실 오히려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조가 역할한 것들도 거의 없어져서 (현장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 노조가 악마시되고 역할을 제로화시키니... 특히 대통령이 건폭과 싸우는 과정에 행정이 어떻게 개입하겠나. 그런 상황도 있다고 보고, 주변 말도 그렇다."
 

태그:#폭염, #노동, #폭염, #고용노동부, #열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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