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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 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편집자말]
택시비를 아끼고 싶었다.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짐이 있다 한들 그 정도 쯤이야 운동하는 셈치고 걸으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야간 열차는 없어졌다. <꽃보다 할배>를 보곤 야간열차를 타자고 주장하는 아들을 달래서 비행기를 탔다. 내려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고속버스를 탄 후 숙소까지 가면 될 것이었다. 숙소는 알함브라 궁전 바로 근처로 예약했다.

이동 당일 날 외곽 마을(알바이신), 다음 날 궁전을 보곤 바로 세비야로 떠나는 1박 2일 일정이었으니, 이동 거리를 봐서건 짐을 맡기고 움직이기 용이한 점을 봐서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조식도 있는 숙소라, 아이를 잘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다른 준비가 조금 허술해졌다. 중세에 무어인들의 정착지였다가 그리스도교들의 거주지역으로 바뀌었다는 알함브라 궁전 외곽의 알바이신 지구는 가이드가 있으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신청해놓고 보니 외국인이 진행하는 영어 투어였다. 외국 투어 앱과 연계가 되는 모양이었다. 비수기라 한국인 가이드 투어는 계속 취소되어 어쩔 수 없이 외국인 투어로 예약을 끝냈다.

뭐 동선이 중요한 거니까... 알함브라 투어 역시 날짜가 맞는 것이 없어, 오디오 투어를 다운 받았다. 궁전 내 지도를 보고 다니면서 숫자 따라 안내 음성만 들으면 되겠지... 여행책에서 동굴 플라멩코 공연을 추천하기에, 바르셀로나 가이드에게 물어 공연 예약도 해놓았다. 바르셀로나 때보다는 훨씬 자기주도적인 일정의 시작이었다.
  
해질녘 알함브라 궁전 맞은 편의 사크라멘토 지구
▲ 알바이신 사크라멘토 지구 해질녘 알함브라 궁전 맞은 편의 사크라멘토 지구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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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이어 고속버스는 우릴 그라나다 시내로 데려다줬다. 숙소까지는 구글맵 상 걸어서 30여분 정도가 나왔다. 나에겐 20kg 여행 가방 두 개와 7~8kg은 되는 배낭 두 개가 있었다. 우주는 아직 어려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래 걷긴 어려웠다. 그런데 왜 도대체 그 순간 나는 택시비를 아끼고 싶었을까.

멀리 가는 여행은 합리적인 계산으로는 늘 손해다. '그 돈이면...'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여행이 삶에서 추억의 기점을 만들어 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그래서 사고 치듯 멀리 가는 여행을 결정한다.

일단 멀리 가려면 길게 있는 게 낫다. 그런데 길게 있으려면 예산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면 여행을 누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가끔, 스스로에 대한 정신적 위안이 필요하다. 난 이렇게 합리적인 예산 운영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자기 확신같은.
  
택시비 아끼려다 시지스프 된 사연
 
아들과 나의 그림자
▲ 알바이신 지구를 걸으며 아들과 나의 그림자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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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 가방 하나마다 배낭 하나 씩을 대강 고정시켜 올려놓고 두 가방을 끌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라나다의 돌바닥은 매끈하지 않았다. 끌다가 밀다가 들다가를 반복하며 십 여분을 걸었다. 계단이 나왔다. 오르막길이 나왔다. 다시 계단이 나왔다. 또 오르막길이 나왔다.

2월의 스페인 남부가 따뜻하다 한들 아직 겨울일진대, 난 온 몸이 땀에 젖기 시작했다. 내가 손이 없어 우주에게 구글 맵을 맡겼더니 우주는 신나서 길 안내를 했다. 너무 가볍게 신나하니 야속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길이 왜 이런 거지? 하긴, 중세 궁전들은 외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보통 산 위에 있다. 그 옆의 숙소를 예약한 건 나였다. 걷기를 선택한 것 역시.

구글맵에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등산길 같은 끝이 안 보이는 경사로였고, 오른쪽은 더 가파른 계단길이었다. 우주는 내게 계단길로 가야한다며 지도를 보여주었다. 양 손에 각각 30kg에 육박하는, 총 네 개의 짐을 들고 있던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높은 계단을 한 칸 씩 짐과 함께 오르는 걸 십여 계단쯤 시도하다 포기했다. 우주야 우리 어떡하지? 찻길을 한참 지나와서 여기서는 택시를 부를 수도 없는데.

그런데 경사로와 계단길은, 갈림길이라기에는 너무 붙어 있었다.

"우주야, 이거 길이 딱 붙어 있는데 꼭 계단으로만 가야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니?"
"아니에요. 계단이 맞아요. 이거 보세요. 갈림길의 오른쪽! 이잖아요."

  
사진은 실제 경사도와 나의 절망감을 표현할 수 없다.
▲ 숙소로 올라가던 갈림길 사진은 실제 경사도와 나의 절망감을 표현할 수 없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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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단을 내려와 지도와 현장을 번갈아 살폈다. 자세히 보니 계단 옆에 담 너머 높이 찻길이 하나 나 있었다. 지도의 갈림길은 그 찻길이었고, 그럼 우리는 그냥 경사로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우주야! 아니었네! 아빠 진짜 쓰러질 뻔 했잖아!'
"아니 저는 진짜 이 길인 줄 알았어요."


우주는 그제서야 이게 아빠가 아예 못 해낼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만큼 며칠 사이에 발전한 우주의 길눈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땀에 절은 겉옷을 벗어 가방에 묶고 셔츠를 풀어제치고, 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짐가방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오던 젊은 관광객들이 날 보며 웃으며 박수치면서 응원을 보냈다. 놀린 것에 가까웠지만 응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경우에 택시비를 아끼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2시간 반. 구글맵으로 도보 30분 거리를 <피지컬 100> 촬영이라도 해낸 기분으로 간신히 숙소 입구에 도착했다. 앱에서 표시된 숙소 이름과 실제 이름이 달라 또 한참 절망 속에 우왕좌왕하다 간신히 체크인하고 숙소에 들어가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여기가 '궁전 뷰'라는 글이 떠올라 커튼을 걷어 창 밖을 보았다.

창 밖에는, 정말 알함브라 궁전이 있었다. 있기는 했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어서 거대한 벽면만이 보였다. 그 어디 어느 시대의 벽이라고 해도 대강 믿을 만한 그런 벽이. 그러니 홍보문구는 참말이었다. 벽만 덩그러니 보이는 게 너무 웃겨 우린 한참 웃었다.

케밥을 밥으로 착각한 아이

알바이신 사크라멘토 투어의 핵심은 일몰 감상이었다. 오래된 흰 색 집들로 가득한 산동네 마을을 거니며 먼 발치에서 노을이 떨어지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는 것이 이 투어의 백미였다.

우린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씻은 뒤 숙소를 나섰다. 배가 고팠다. 투어 집결 장소 근처에 메뉴가 무척 많고 소박한 식당이 있기에 들어가 앉아 우주가 먹을 만한 메뉴를 살폈다. 케밥이 보였다.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우주야, 케밥 어때?"
"좋아요!"

  
시키지 않았다.
▲ 집필 중인 우주 시키지 않았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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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 대답하곤, 우주는 연습장을 펼쳐 나름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난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보다가 밖을 둘러보았다.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다. 관광지의 정취. 그리고 케밥이 나왔다.

"아빠 이게 뭐에요?"
"케밥. 왜? 아까 시킨다고 얘기했잖아?"
"밥은 어디 있어요?"


아... 우주는 케밥이 밥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 반가웠을 수밖에. 그런데 이게 내 잘못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내가 우주에게 보여준 메뉴판에는 엄연히 메뉴의 사진도 실려 있었다. 우주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케밥이 밥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면 우린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킬킬 웃고는 한다. 아주 맛있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잘 먹어주어 마음이 놓였다.

찾기 쉬우라고 분홍색 양산을 들고 있는 투어 가이드를 찾았다. 가이드의 이름은 '카르멘'이었다. 캐나다에서 온 장성한 아들과 어머니가 우리의 동행이었다. 알바이신 투어도 일종의 등산 같은 산책이었다. 사크라멘토라는 말 자체가 신성한 산을 뜻했다.

방금 전까지 몸이 부서질 것 같았는데 뭐라도 먹고 좋은 풍경 안에 서니 또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 오히려 우주가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많이 업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시한부니까. 급격히 사라진 후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니까.

멀리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과 오래된 마을의 정취는 사람을 감상에 젖게 한다. 비오던 날, 동아리방에서 슬레이트 지붕 위 빗소리를 들으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기막히게 치던 선배와, 그 와중에 자장면을 시켜 나눠 먹던 것 같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떤 후배는 그 기타치던 선배 때문에 이 좋은 장소를 와도 그 형 생각만 나는 부작용이 있다며 툴툴거리기도 했다. 나는 우주에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게 저 궁전을 보고 만든 음악이래 우주야.
  
기하학적 모양이 현대미술 같기도 하다.
▲ 알함브라 궁전 기하학적 모양이 현대미술 같기도 하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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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바뀌었으니, 우주는 '가우디'에 이어 사진 찍힐 때 외칠 새로운 구호를 마련했다. '알바이신!'. 그라나다에 머무는 1박 2일 동안의 구호였다. 사진 찍힐 때마다 외치는 알바이신은 우주의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주었고, 외국 관광객들의 미소도 더불어 샀다.

한 터키 커플이 중간 합류했다. 우리는 터키 대지진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전쟁과 권력에 따라 마을의 종교적 구성원이 바뀌어 온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우주는 종교를 두고 싸우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게 우주야. 사람이란 참 이상도 하지.
  
외국인 가이드 역시 사진 스팟과 촬영을 중요시 한다.
▲ 구호는 알바이신! 외국인 가이드 역시 사진 스팟과 촬영을 중요시 한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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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발 위로 떨어진 것의 정체

노을 속의 알함브라 궁전을 보며 알바이신 투어를 끝냈다. 다음 차례는 동굴 플라멩코 공연이다. 과거 무슬림들이 도망쳐 숨어살던 동굴에서 저녁을 먹고 플라멩코 공연을 보는 코스였다. 우리가 간 곳은 미셸 오바마가 며칠간 머물며 플라멩코를 배웠던 곳이라고 했다.

우주는 식탁에서 계속 잤다. 나도 피로가 몰아닥쳤다. 억지로 우주 입과 내 입에 음식을 떠넣어, 허기가 가실 만큼만 간신히 먹고 동굴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동굴 양 쪽 벽면으로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늘어서 있었다. 공간이 너무 좁아서 조금 당황했다. 자는 우주를 깨워서 데리고 오느라 우리가 제일 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자리는 바로 연주석 옆이었다. 말이 연주석이지 결국 똑같은 의자인데, 무희와 바로 어깨를 맞대고 앉는 자리였다.

플라멩코 공연이 시작됐다. 비나리 같기도 하고 인디언 제의같기도 한 구슬픈 음성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무희들은 힘차게 박자를 맞추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뭣 모르는 관객들이 따라서 어설피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무희들은 가만히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동굴이라 박수와 악기 소리는 귀와 심장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악기 연주와 박수에는 굉장한 물리적 힘이 느껴졌다. 박수는 박수라기 보다, 리듬의 고저 강약을 조절하는 일종의 타악기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가장 선배로 보이는 무희가 첫 차례로 나섰다. 이곳의 플라멩코는, 캐스터네츠와 탭댄스로 주로 상상되곤 하는 여성적인 춤이 아니었다. 지축을 박차고 격렬한 동작을 소화하는, 무술의 품새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제의적이면서 물리적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춤이었다.

첫 번째 무희가 춤을 추는 동안 내 신발 위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분홍색 캡슐 알약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집어서 자세히 보니 캡슐의 세로 절반 같은 플라스틱이었다. 알약은 아니었다. 곧 그 출처를 깨달았다. 내 옆에 앉았던 젊은 무희가 격렬하게 치는 박수에 날아와 떨어진 인조 손톱이었다.
  
떨어진 직후 그 위치 그 상황 그대로 촬영했다.
▲ 발등 위로 떨어진 무희의 손톱 떨어진 직후 그 위치 그 상황 그대로 촬영했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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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무희가 공연을 마치고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플라멩코 공연은 논스톱이었다. 계속 음악과 박수, 노래가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는 구성이었다. 내가 무희들과 제일 가까운 자리였으나 너무 가까운 나머지 민망해서 무희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춤을 마치고 들어온 선배 무희가 내 옆에 앉아있던 막내 무희의 얼굴에 팔을 뻗어 손을 갖다 댔다. 이게 무슨 뜻이지? 혼내는 건가? 아니면 어떤 공연적 몸짓? 고개를 똑바로 돌릴 수가 없어 영문을 찾아 곁눈질로 열심히 바라보았다.

막내 무희는, 울고 있었다. 선배의 공연을 보다가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이다. 손톱이 날아가도록 리듬 박수를 치던 무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나오자, 메이크업이 흉하게 얼룩질까 봐 선배가 손을 뻗어 눈물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흐르는 자기 땀방울 대신 후배 눈물을 닦아주는 선배의 엄숙한 얼굴과 울컥 터진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후배의 모습이 엄숙하고 숭고해보였다.

알바이신 사크라멘토 지구에서 본 플라멩코는 그랬다. 비애를 이겨내는 격렬하고 아름다운 몸부림이었다. 막내 무희는 감정을 수습하고, 자기 차례에 나섰다. 박자에 맞춰 그 역시 격렬하고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다.
  
눈물을 닦은 막내 무희는 자기답게 선배와는 다른 자신의 춤을 펼쳤다.
▲ 막내 무희의 공연 눈물을 닦은 막내 무희는 자기답게 선배와는 다른 자신의 춤을 펼쳤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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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동안 엄청난 음량이 귀와 가슴을 때렸다. 그런데 우주는 그 시간 내내 내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 잠들 수 있는 음량이 아닌데, 수면욕이란 대단한 거구나.

우주는 자세를 여러번 바꾸어가며 그 좁은 공간에서 나름의 안락함을 추구했다. 중간에 데리고 나갈 수도 없는 구조라 우주한테 미안했다. 어차피 푹 자지도 못할 거 공연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서 중간에 좀 깨워보려고 했다.

"우주야, 피곤해도 좀 봐봐. 네가 보고 싶다던 동굴 플라멩코야."

동굴 안 음량이 너무 커서 아마 잘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았을 것이다. 우주는 다 귀찮고 그냥 누워있겠다는 뜻을 작은 몸부림으로 내게 확실하게 전했다. 공연 내내 나를 베고 몸을 꺾어 누운 우주를 토닥였다. 피곤할 만하지. 오늘 너무 많이, 힘든 코스를 오래 걸었어.

공연을 보고 나오며 대화를 나눴다.

"많이 피곤하지? 그래도 아쉽다. 조금만이라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봤어요."

"에이 언제? 너 계속 누워서 잤잖아?"
"한쪽 눈으로 계속 봤어요."

"그래?"
"그리고 동영상으로 다 찍어 놨죠?"
"응? 다는 아니고 조금 찍어놨어."
"네, 제가 편집해서 프로그램 만들 거예요."

  
조명과 함께 하는 밤의 아름다움이 따로 있다.
▲ 조명이 켜진 알함브라 성벽 조명과 함께 하는 밤의 아름다움이 따로 있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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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머리 속에는 우리 여행이 <꽃보다 할배> 같은 프로그램으로 수렴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주가 본 어린이 여행책의 소개를 따라 가는 여행. 그래. 아빠 머리 속에도 너와 함께한 순간을 써내려갈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으니까. 경험을 기록할 각자의 틀을 상상하며 시간을 같이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구나 아들아. 

조명이 켜진 알함브라 궁전도 노을 아래의 모습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비록 숙소로 돌아가는 우버가 늦게 잡히는 바람에, 슬슬 추워지는 날씨와 피로에 결국은 울어버린 우주를 달래는 고비가 있었지만.
  
알바이신 지구에서 바라본 노을 속 알함브라 궁전
▲ 노을 속 알함브라 궁전 알바이신 지구에서 바라본 노을 속 알함브라 궁전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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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플라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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