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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면 종종 아이들이 '계란꽃'이라 부르는 풀이 있다.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여기저기 장소도 가리지 않고 핀다. 계란 프라이처럼 중심부는 노랗고 주변 꽃잎은 하얀데 작고 귀여워 그 이름을 붙인 듯하다. 하지만 이 풀도 엄연히 이름이 있다. 바로 '개망초'다.
 
'계란꽃' 아닙니다. '개망초'랍니다.
▲ 개망초 '계란꽃' 아닙니다. '개망초'랍니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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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에 '매우'를 뜻하는 '개'를 붙여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인 '개망했다'와​​​비슷하다. '개망했다'와 비슷한 개망초라는 이 이름은 망초에서부터 시작된다. 망초는 한자 뜻 그대로 망할 망(亡)에 풀 초(草)이다.

일제강점기 즈음 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풀이 나타나자,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이라 하여 '망국초', 또는 '망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처음 철도가 들어올 때 사용된 철도 침목을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씨앗이 침목에 묻어와 번져간 탓으로 추정한다.

실제 모습을 보면 개망초는 망초와 같은 국화과이나 꽃도 크고 희고 분홍색이 돌며 예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존의 식물이나 대상에 비해 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개'자가 붙어 이런 이름이 된 것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책 <풀들의 전략>을 보면 처음 개망초는 원예용 식물로 일본이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온 풀이었다. '핑크 플리베인'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름도 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귀한 원예용 꽃으로 꽃집에서 팔리던 개망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꽃들에 밀려나게 되었고 들판에서 자라게 되었다.

개망초의 운명은 사람에 의해 많이 달라졌다. 머무는 장소도 꽃집에서 들판으로, 사는 나라도 북아메리카에서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까지 넓어지게 된 것이다. 한때 꽃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개망초지만 이제 빈 땅이라면 가리지 않고 가득하다. 이런 개망초나 망초의 모습을 보면 망초 왕국, 개망초 왕국이 영원히 번성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그 다음해가 되면 망초의 썩은 뿌리에서 생기는 독성 물질이 망초 스스로의 성장을 억제해 '쑥'같은 여러해살이풀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고 개망초밭은 보면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활짝 핀 개망초들이 들판을 독식한다 탓하지 않고 지금 이 한때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싶어진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빈 땅에 가득 개망초가 피었습니다.
▲ 개망초왕국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빈 땅에 가득 개망초가 피었습니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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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뒤덮으며 가득 피어난 개망초는 다양한 곤충들의 대형 식당도 되어 준다. 큰줄흰나비와 양봉꿀벌은 꿀을 얻고, 노린재들은 즙을 마시며, 호리꽃등에와 호랑꽃무지는 꽃가루를 먹고, 남색초원하늘소는 줄기에 알을 낳아 애벌레를 기른다.

꽃벼룩이 개망초 꽃가루를 먹다 기척에 놀라면 뛰어내리고, 개망초 즙을 빠는 진딧물을 먹으러 무당벌레도 모여든다. 빈 땅이 있어야 개망초가 번성하고 개망초가 번성하면 곤충들의 먹을거리도 풍족해 진다.

곤충들이 많아지면 당연하게도 새들과 동물들도 늘어난다. 땅을 놀리지 않고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개망초 가득한 곳은 버려진 땅처럼 보이겠지만 많은 생명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개망초가 피면 곤충 마을은 잔치가 벌어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꼬마꽃등에, 십자무늬긴노린재 2형, 호랑꽃무지, 긴알락하늘소 이다.
▲ 개망초가 먹여 살리는 곤충들 개망초가 피면 곤충 마을은 잔치가 벌어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꼬마꽃등에, 십자무늬긴노린재 2형, 호랑꽃무지, 긴알락하늘소 이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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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인정많은 개망초는 사람들에게도 먹을거리가 되어준다. 맛이 순하고 독이 없어 봄에 어린 잎을 채취하면 가볍게 데쳐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계란말이에 넣으면 계란 특유의 비린내를 잡고 소화에도 도움을 주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개망한' 풀이 아니라 정말 고마운 풀이 아닌가 싶다. 항상 가까이에 늘 있다 보니 몰랐던 고마운 사람들처럼 개망초는 우리 옆에 꾸준히 있어 왔다. 알고보니 더 반가운 개망초를 앞으로도 어느 들판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강릉, #개망초, #여름,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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