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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 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편집자말]
"꼭 아빠 손을 잡고 다녀야 해. 손을 못 잡겠으면 옷이라도 잡아. 아빠 근처에서 절대 멀어지면 안 돼."

여행을 다니며 신신당부했던 말이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엔 악몽도 꿨다. 유럽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 아빠와 아들 둘만 다니기에 우주는 아직 어렸고 나는 산만했다.

외국에서 길을 잃었던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기간 동안, 한국에서 홀로 되셨던 외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패키지 여행을 다닐 때였다. 이탈리아 피렌체였고 말이 통하지 않았다. 눈물범벅으로 경찰서에서 다시 가족 상봉을 하기까지, 길지 않았지만 영원같았던 모든 순간이 생생하다.

그 순간을 우주한테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신기하고 재밌건, 지루하고 졸리건 간에, 아빠를 손으로든 눈으로든 잡고 있어야 해. 잃어버리면 큰 일 난다.

여행 첫 나흘 동안 지속적으로 당일 혹은 반일 패키지를 신청한 이유도 내가 여행자의 일처리(각종 구매와 예매, 지도 보기, 교통편 찾기 등)를 하다 정신이 팔려 있을 것이 두려워서였다. 어느 정도 여행자의 흐름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우주를 챙기면서 가이드의 안내를 따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가이드 분은 종종 좋은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걸어보라고 제안했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우주야, 사진 찍어주신대. 좀 걸을까? 아침부터 피곤해서 멈출 때마다 내 신발 위에 앉곤 했던 우주는 갑자기 씩 웃더니 내 팔짱을 착 꼈다. 마치 여자친구처럼. 손이나 옷깃은 잡혀도, 안거나 업기는 해도, 팔짱은 처음이었다.

가벼운 전기가 몸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키가 작아 팔짱을 낄 일이 좀처럼 없다. 지금도 약간은 불편하게 매달리는 형태가 된다. 팔짱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아들의 키가 크고 나면, 아빠와는 데면데면해지기 쉽다.

사이가 좋더라도 남자끼리 굳이 팔짱까지 끼진 않으리라. 앞으로 몇 년이나 이런 순간이 가능할까. 아니, 아들의 팔짱이라니 몇 년이 아니라 몇 번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횟수만 남았을 거야.
 
바르셀로나의 고딕지구에서 아빠를 잡으라고 하니 아들이 팔짱을 꼈다.
▲ 아들의 팔짱 바르셀로나의 고딕지구에서 아빠를 잡으라고 하니 아들이 팔짱을 꼈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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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많이 걷고 많이 보는 것? 

삼일째에 비로소 비가 걷히고 햇살을 만났다. 바르셀로나는 산타 에우랄리아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수호 성녀로서 303년 13세에 순교한 소녀를 기리는 행사였다. 축제의 핵심에는 인간탑 쌓기 대회가 있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이 경기는 전통의 계승과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며칠 뒤에 이 곳에서 울려퍼질 함성을 상상했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공동체의 전승을 확인하는 사람들. 카탈루냐 지역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지역과는 언어도 공동체적 정체성도 다르다고 했다. 스페인이 축구에 진심인 이유도 그런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노바 광장에는 인간탑 쌓기와 축제에 등장하는 거인 인형 등을 소재로 피카소가 그린 벽화도 있었다. 어린 아이의 낙서 같은 천진난만한 그림이었다.
  
인간탑 쌓기가 형상화 되어 있다.
▲ 피카소의 벽화 인간탑 쌓기가 형상화 되어 있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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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반일 투어로 만난 여행객들은 고딕 지구에서 이야기가 서린 여러 장소들을 안내에 따라 둘러보았다. 보케리아 시장부터 시작해서 콜롬버스가 돌아와 이사벨 여왕을 만났다던 왕의 광장, 스페인 내전의 총알 자국이 남아있는 산 필립 네리 광장, 거인 인형이 전시되어 있던 대성당.... 신선한 오전 산책이었다. 하지만 난 설명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우주가 슬슬 피곤해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걷고 무슨 설명을 또 듣는 걸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부모가 데려가 주는 여행은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어른들의 코스를 아이의 입장에서 참아주는 느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얌전하다가도 감탄하다가도 조금만 지루해지면 괴로워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일단은 계속 걸어다니는 것이 기본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했다.

"여행은 원래 많이 걷는 거야. 많이 걸으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이런 저런 생각하는 게 여행의 재미야."

이야기가 서려있는 아름다운 타국의 길을 걷다가 배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어찌보면 여행은 참 별 것 아니다. 나는 여기에 아들과 지루하지 않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는 목표를 더 가지고 왔다. 생활 공간에 같이 있으면 아이와의 시간은 부모에게도 '일'이 된다.

내가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빼서 아이에게 주는 것 같고, 아이 또한 더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의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실제로는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은 데도.

여행 와서야 비로소 목표를 잊고 그냥 그 시간에 같이 잘 있는 사치에 집중해보게 된다. 별 것 아니라는 걸 잊고 그 별 것 아닌 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피카소의 거침없음, 그림세계 안에서
  
현장학습이 있었던 듯,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도시락을 여는 학생들
▲ 대성당 근처에서 도시락을 펼치는 스페인 학생들 현장학습이 있었던 듯,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도시락을 여는 학생들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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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미술관을 들렀다. 피카소의 미술적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피카소는 천재의 대명사이자 살아서 부귀영화를 다 누린 인물로 늘 거론된다. 미술관에서 제일 놀랐던 것은, 그런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모작을 엄청난 규모로, 다양한 시도로 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시녀들'을 큐비즘적으로 해석하고 각 부분을 따로 또 그린 연작들을 보며 감탄했다. 영화식으로 말하자면 집요한 오마주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개성을 자랑하고픈 자의식에만 골몰하지 않고, 이토록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구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종종 돈이 되지 않거나, 목적이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에 일말의 죄책감이 생기곤 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같은 직업 영역에 있다면, 자존심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피카소는 달랐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좋아하다가 결국 졸업하듯 다음 영역으로 뚫고 나가버리는 그의 그림 세계를 보니 그 거침 없음에 약간의 반성과 감동을 하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주제 별로 나누어 그린 피카소 그림 아래서
▲ 피카소 미술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주제 별로 나누어 그린 피카소 그림 아래서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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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들은 슬슬 미술관에 대한 비호감이 쌓이는 듯 했다. 뭘 보라는 건지, 왜 계속 걸으라는 건지 답답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피카소에 대한 설명에는 그의 여성편력이 빠지지 않았는데, 아이와 같이 들을 수 없는 내용이라 또 다시 분주하게 아이 귀에서 헤드폰을 벗기고 주의를 돌려야 했다.

우주는 업히고 싶어했다. 이제 꽤 커서 여행 전에는 좀처럼 요구하지 않는 일이었다. 어지간히 피곤한 게 아니구나. 앞으로 업어달라는 일이 얼마나 더 있겠나 싶어 흔쾌히 업었다. 그런데 이제 꽤 무겁긴 하구나 아들아. 그리고 여행 내내 업어달라는 일은 매일 있었다.
  
미술관은 그만 보자는 단호한 표정. 그러나 앞으로 더욱 많이 보게 되는데...
▲ 미술관은 이제 그만 미술관은 그만 보자는 단호한 표정. 그러나 앞으로 더욱 많이 보게 되는데...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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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 상점에서 바르셀로나 3대 미술가의 판넬이 보였다. 달리, 피카소, 그리고 후안 미로. 후안 미로 미술관이 좋다는 후기를 많이 읽어서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주에게 하루에 미술관 두 개를 보자고 해도 괜찮을까? 우주는 몬주익 언덕과 FC바르셀로나 홈구장인 캄프 누를 가보고 싶어했다.

좋아, 축구장은 별로 볼 게 없을 테니 축구장 빨리 보고 문닫기 전에 후안 미로 미술관에 가는 거야. 미로 미술관이 몬주익 언덕에 있다니까 그렇게 움직여 보자.

축구장에 무슨 감동이 있겠어? 
  
바닷가 옆에 있는 FC바르셀로나 홈구장.
▲ 캄프 누 바닷가 옆에 있는 FC바르셀로나 홈구장.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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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들과 나는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된다. 트로피와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는 축구 경기장 전시관이 무슨 감동이 그리 있을까, 더욱이 우린 해외 축구의 문외한인데. 그런데 아니었다.

승리와 영광의 역사, 그리고 전시관 안의 음악과 사진은 우주와 나의 가슴을 달구기 시작했다. 락커룸과 기자 회견장을 지나 경기장 입장로를 쩌렁쩌렁 울리는 바르셀로나 응원가를 들으며 걸으니 우리가 검투장으로 들어서는 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복도 끝에 광활한 축구 경기장이 펼쳐졌다. 우주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혼자 발놀림을 하다가 급기야는 잔디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FC바르셀로나 맞은 편에는 '클럽 그 이상'이라는 FC바르셀로나의 모토가 크게 채색되어 있었고 바닷가로부터 놀러온 갈매기가 날았다.

우주는 관중석에 앉아서 빈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상상으로 메시의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흥분을 함께 했다. 그 상상 경기는 4-3 승리로 끝났다.
  
축구의 신에게 절을 하는 것일까.
▲ 흥분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나온 행동 축구의 신에게 절을 하는 것일까.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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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나오는 길에는 영광의 경기 장면들을 편집한 화면이 거대하게 펼쳐진 수평 스크린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린 넋을 잃고 스크린을 보았다. 바르셀로나의 어린이들은 이렇게 축구 팬이 되겠구나. 멍하니 걸어오는데 블루 스크린 앞에서 웬 직원이 우리를 잡는다. 사진 코너다. 여러 선수와 우승컵, 구장과의 합성 사진을 찍어 준단다. 일단 찍고, 나갈 때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합성할 선수를 고르라는데 아는 선수가 지난 월드컵 때 주워들은 레반도프스키 밖에 없다. 이 선수가 바르셀로나 선수였어?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다 보니 영혼 없는 표정이 속출한다. 출구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사진을 한 장만 살 것인가, 아니면 한 장의 두 배 가격에 다섯 장을 앨범에 넣어 받고 사진 파일도 받고 열쇠 고리까지 덤으로 받을 것인가.

이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질문인지 모르겠다. 바르셀로나 굿즈를 가슴에 품고 후안 미로 따위는 멀리 날린 채 경기장을 나왔다. 그래, 이제부터 우리는 바르샤(이렇게 부른다는 걸 이때 알았다)다. 일단 마드리드에 도착할 때까지는....
  
소년은 기쁘다. 특히 보호자가 정신이 나가 있는 사진이 많이 찍혔다.
▲ 기념 합성 사진 소년은 기쁘다. 특히 보호자가 정신이 나가 있는 사진이 많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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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이 날은 며칠 후 마드리드에서 완성되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마주한, 벽면을 가득 채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관전. 하지만 이 날은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다. 아직 정해진 일정이 아니었기에. 고딕 지구 야경 투어까지 마무리한 우린 일단 밥을 먹어야 했다.

피곤한 다리를 달래며 피카소가 첫 전시를 했다는 4cats 식당에서 빠에야를 먹었다. 후안 미로 미술관을 보지 못한 게 여전히 조금 아쉽긴 했다. 스페인에 많은 카이사뱅크의 로고가 후안 미로의 작품이라고 하니, 그 로고 아래서 사진 찍은 것으로 미로에 대한 아쉬움은 잊으라고 우주는 내게 조언해주었다. 슬슬 장기 여행자의 정체성이 우리 둘의 몸에 배고 있었다.
  
빠에야를 먹은 곳
▲ 피카소가 첫 전시를 열었다는 4cats 앞에서 빠에야를 먹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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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바르셀로나, #여행, #아이와 유럽여행,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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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출합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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