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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의 불명으로 갓난아기 때부터 평생을 시설에서 자라온 황아무개(가명)씨는, 보육원·그룹홈 등을 퇴소한 이후에야 자신과 같은 자립준비청년(구 보호종료아동)들에게 국가에서 자립수당과 자립정착금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황씨는 경기도 산하 해당 지역의 시청 담당공무원을 찾아 서비스 신청을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씨의 경우) 만 18세 이전에 퇴소하여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돌아갈 가정 없는데, 지원대상에선 제외됐다니 

2004년생인 황씨는 날 때부터 영아원에서 길러졌다. 이후 15세까지 보육원에 있었으나, 선천성 심장병 치료를 위해 A 그룹홈으로 보내졌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A 그룹홈은 다른 아동과의 사소한 다툼을 이유로 황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황씨는 억울하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의료소년원 6개월 처분을 받았다.
 
황씨 사례처럼, 시설에서 조기퇴소하거나, 시설과의 갈등으로 원하지 않게 시설을 이동하는 경우에 놓인 아동은 복지서비스 제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2022년 8월 22일 광주 한 대학교에서는 시설에서 퇴소한 한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기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황씨 사례처럼, 시설에서 조기퇴소하거나, 시설과의 갈등으로 원하지 않게 시설을 이동하는 경우에 놓인 아동은 복지서비스 제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2022년 8월 22일 광주 한 대학교에서는 시설에서 퇴소한 한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기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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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 그룹홈은 황씨 소년원 입소 직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됐고, 원장 측의 아동 학대 정황과 집회동원 등 기행이 알려지고 방송에 보도되면서 작년 5월 관할 지자체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게 됐다. 

황씨는 의료소년원에서 퇴원한 뒤 '아동양육시설'이 아닌 법무부 산하 청소년자립생활관으로 전원됐다. A 그룹홈에서 아동학대가 정황이 강하게 의심되는 한편, 다른 시설에서는 황씨 입소를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소년자립생활관은 아동복지시설이 아닌 법무부 산하의 '기타 시설'로 분류되기에, 황씨가 청소년자립생활관으로 전원되는 것은 곧 아동복지법상 '보호종료'를 의미한다. 돌아갈 가정이 없는 황씨는 굳이 분류하자면 '보호대상아동'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임에도,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법적·제도적인 보호가 종료된 셈이다.

평생을 친부모 없이 살아왔고, 아동학대로 논란이 된 시설 원장 측의 일방적 주장에 밀려 소년원에 간 뒤 청소년생활관에서 18세가 된 황씨는,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결국 자립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관할 시청에서는 '지급불가', 보건복지부는 '지급가능'

애초 경기 관할지 시청 측의 답변은 "지급 불가능"이었지만, 이 결정이 납득되지 않았던 황씨는 경기도청 측에 해당 시청의 지급불가 결정이 타당한 것인지 질의했다. 이에 경기도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심의를 다시 거치면 지급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보건복지부 문의 회신내용 결과, 2023아동분야사업안내에 따르면, 지급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사유로 아동복지심의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경우에는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질의 대상자의 경우 해당 규정에 근거하여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구체적인 지원 결정 여부에 대해서는 자립정착금의 경우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당시 주소지 시군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자립수당의 경우는 대상자 주소지 시군 아동복지심의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시청에서는 '지급불가'라고 판단했지만, 보건복지부의 판단은 달랐던 셈이다. 복지부의 답변 이후 해당시청은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황씨에게 통보했다. 다행히 심의위원회 개최를 앞두게 됐지만, 황씨는 그간 아동시설과 시청이 보여온 불성실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황씨를 조력하는 단체의 개입과 보건복지부의 질의회신을 받고 나서야, 해당 시청이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러 지적이 반복되고 난 뒤에야 겨우 지원금을 받을 가능성이라도 생긴 것이다.​

'중간퇴소아동', 제도 사각지대에 선 이들도 고려해야

아동복지법 제2조에 따르면,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3항), 아동은 아동의 권리보장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이 법에 따른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4항)'라고 써 있다.

현재 자립준비청년은 자립수당 월 40만원과 자립정착금 1000만 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 18세 이후' 보호 종료된 청년이 그 대상자이다. 그러나 황씨는 자칫 여기서 제외될 뻔했다. 결국 황씨와 같은 '중간퇴소아동'은 원칙적으로 자립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 아동복지사업안내' 지침에서는 지급신청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관할 지자체가 보호 종료 아동의 명단을 확보하여 지급대상자가 누락되지 않도록 자립정착금 지급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미신청자에 대해서는 신청안내 등 적극적으로 조치"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침은 누락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인할 것과 실제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라고 담당공무원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한다. 그럼에도 황씨는 제대로 된 안내도 받지 못하고 거절당했다.

보호종료 아동의 자립을 위한 지원책들이 존재하고 다소 예외적 사례로 고려한 정책이 수립돼 있기는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이를 놓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통상 복지부 지침은 이를 맡은 담당 공무원에게 재량이 주어져 있고,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여는 경우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관련 법령에 명확한 규정도 없어 담당 공무원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황씨의 경우처럼, 이제 갓 성인이 된 자립준비청년이 타인의 조력이나 도움 없이 아동복지심의위원회 개최까지 요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시설에서 조기퇴소하거나, 시설과의 갈등으로 원하지 않게 시설을 이동하는 경우에 놓인 아동은 복지서비스 제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일선 공무원들이 아동복지법의 목적에 따라 적극행정을 펼치도록 감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통령은 '중간퇴소아동'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속히 아동복지법 시행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한결·이건희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구성원입니다.


태그:#자립준비청년, #보호종료아동, #파이팅챈스, #중간퇴소아동, #열여덟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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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공익전담변호사. 경기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에서 근무.

현재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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