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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우리 산하에 수많은 줄기와 가지를 치면서 지리산에 도달한다. 지리산의 토대가 되는 기반암(基盤岩)은 선캄브리아기를 기억하며 고생대에 지구 남반구에서 위치하다 적도를 지나서 몇억 년을 여행해 왔다.

지리산둘레길은 원시적인 생명의 박동을 간직한 지리산으로 향하는 여행길을 펼쳐주며 오늘의 생활을 성찰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열어준다. 소박한 모양의 벅수(장승)들이 갈래지은 둘레길 길목에서 양팔을 나침반의 바늘처럼 펼쳐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오늘의 생활을 성찰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열어준다.
 지리산둘레길. 오늘의 생활을 성찰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열어준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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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구심점으로 백 개가 넘는 마을이 서로 손잡고 강강술래 하듯 295km 둘레길의 21개 구간을 이어주고 있다. 마을마다 여행자가 서 있는 곳이 잠시 멈추는 종점이고 다시 걸음을 내딛는 시점임을 깨닫게 한다.

히어리의 노란 꽃봉오리가 개화를 기다리는 2월 하순에 지리산둘레길 1구간과 2구간 25km를 걸었다. 둘레길 하루의 여정에서 새롭게 풍경을 바라보고 산뜻한 의미를 만나기를 기원했다.

운봉고원의 지리산둘레길

고개를 넘고 하천을 따라가며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의 외평마을과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7km 지리산둘레길 1구간의 5시간 여정을 출발했다. 둘레길 1구간을 출발하는 원촌(原村)은 고려 시대부터 숙성치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 길목이었다. 운봉고원으로 올라가는 고갯길 구룡치(九龍峙)의 들머리인 내송마을(안솔치)은 임진왜란 때 조경남(趙慶南, 1570-1641) 의병장의 고향이다.
 
개미정지. 조경남 의병장의 설화가 전해온다.
 개미정지. 조경남 의병장의 설화가 전해온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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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 어귀의 개미정지는 쉼터로서 조경남 의병장의 설화가 전해온다. 옛날에 남원 장으로 오가던 장꾼들이 이곳에서 무거운 짐을 풀고 서어나무 그늘에 잠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으리라. 서어나무숲은 생태계가 안정된 원시림으로 이 나무에 크낙새가 머무르고 장수하늘소가 나무에 구멍을 내고 서식하는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소나무의 바늘잎이 생기 넘치는 구룡치는 주천면 내송마을에서 산기슭을 3km 힘겹게 오르는 고갯길이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인 이 고갯마루를 넘어 산길을 거의 수평으로 진행하면서 내려오면 이름도 정겨운 사무락다무락 돌담이 이어진 숲길 휴식처를 지난다.

구룡치를 넘어서 운봉고원에 내려서는 회덕(會德)마을에 도착한다. 남원장을 보러 이쪽 운봉과 저쪽 달궁에서 오는 길이 이 마을에 모인다고 해서 회덕마을이다. 지리산 계곡인 산내면 달궁마을에서 남원 장에 다녀오려면 2박 3일이 걸려서 3일장을 본다는 표현이 전해온다. 이 마을 집들은 주위에 억새가 흔해서 억새 다발을 엮어서 지붕을 이었었다. 현재는 억새집 한 채가 향토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있다.

노치(蘆峙)마을은 수정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마루금에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이 주위에 억새가 많아서 갈재라고 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을 거쳐 1400여 km를 드높은 기상으로 휘달려 온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눈앞에 두고 고개를 한껏 낮추어 거의 평지처럼 산맥을 연결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정령치 만복대로 솟구쳐 지리산 주능선으로 우뚝 선다.

이 마을 중앙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고 있어 한 마을에 주천면과 운봉읍이 나란히 있다. 눈비가 내려 주천면으로 흐르면 섬진강의 상류이고 운봉읍으로 흐르면 낙동강의 상류가 되는 수분령(水分嶺) 마을이다. 이 마을 앞에서 고기교(高基橋)까지 평원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도로 2km는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으로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다.
 
노치마을 목돌.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하는 이 목돌은 일제의 간교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노치마을 목돌.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하는 이 목돌은 일제의 간교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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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백두대간의 목을 눌러 기운을 끊는다고 이 마을 앞 들녘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목돌 6개를 설치했다고 한다. 목돌 한 개가 무게는 100kg이 넘으며 크기는 가로, 세로와 두께가 120cm, 95cm와 40cm이다. 목돌 5개를 파내어 이 마을 당산나무 옆에 모아두었다.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하는 이 목돌은 일제의 간교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덕산저수지 옆길을 지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하는 지형이라는 가장리(佳粧里)이다. 행정마을에 있는 서어나무숲은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서어나무 군락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숲의 천이에서 극상림을 이루는 서어나무가 운봉고원 여러 곳에 서식한다. 돌장승이 마주 보며 서 있는 서림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의 입구에 지리산둘레길의 1구간 종점이며 2구간의 시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반갑다.

운봉읍 동천리와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km의 지리산둘레길 2구간의 3시간 여정을 새로운 마음으로 걷는다. 운봉고원의 들녘과 람천의 제방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새 무리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비전마을에 황산대첩비가 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통영을 잇던 통영별로의 길목이었다. 이 마을은 판소리 명창 송흥록의 출생지로 판소리 동편제의 시원지이다.

세걸산과 바래봉은 지리산 서북능선의 병풍을 이룬다. 1970년대 섬유산업이 수출을 주도했을 때 바래봉 산록에 면양 목장의 초지가 드넓었다. 이제는 이 초지에 철쭉이 생태계를 지배하여 봄에 바래봉 철쭉 축제로 만발한다.
 
황산대첩지. 운봉읍과 인월면의 경계인 람천의 협애에 황산대첩지가 있다.
 황산대첩지. 운봉읍과 인월면의 경계인 람천의 협애에 황산대첩지가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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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마을 앞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황산대첩지가 있는 협애(狹隘)를 바라보며 람천을 건너 산길로 접어들어서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간다. 잣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한 이곳 휴양림은 지리산 서북능선의 끝자락 덕두봉 계곡에 자리 잡아 지리산의 서북능선, 주능선과 동부능선을 아우르는 태극종주를 시작하는 곳이다.

인월(引月)은 고려말의 황산 전투에서 달이 떠올라 승전하였다는 설화의 중심지이다. 운봉읍과 아영면의 하천이 인월면으로 모여 산내면을 지나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으로 흐른다. 인월은 교통 중심지로서 전라도와 경상도 주민들의 함께 모이는 장터이다.

월평마을은 인월의 동쪽에 있어 달의 기운을 왕성하게 받는다고 하여 달오름마을이라고 했다, 정월보름 날에는 마을 농악대의 흥겨운 풍물 소리에 맞춰 달집태우기는 행사가 유명하다. 이 행사는 고려말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을 배경으로 하여 전승되는 이 지역의 유래 깊은 전통이다.

억새와 장수하늘소, 지리산의 생명력

지리산둘레길 1구간과 2구간의 25km 여정을 8시간 걸려서 오후가 이울어 느려진 걸음으로 마무리하였다. 이 여정을 되돌아본다. 주천면 덕치리의 회덕마을과 노치마을의 독특한 역동적인 지형과 억새집이 인상적이었다. 운봉고원의 여러 곳에 굳건히 서 있는 서어나무에서 지리산의 시원적 생명력을 찾아보았다.
 
회덕 억새집. 억새집은 적설을 고려하여 지붕의 경사가 급하다.
 회덕 억새집. 억새집은 적설을 고려하여 지붕의 경사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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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개 덕치리의 지형을 형성한 지질적 요인은 구룡치와 가까이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지역의 구룡폭포(九龍瀑布)이다. 이 폭포가 원동력이 되어 경사가 급한 주천면 방향으로 하천쟁탈을 진행하면서 백두대간과 운봉고원을 침식하여 현재 이 지역의 독특한 지형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 억새가 무성하여 회덕마을에서는 억새 지붕을 많이 이었다고 한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35호인 덕치리 초가가 안채, 사랑채, 헛간채와 측간에 억새 지붕으로 보존되어 있다. 억새집은 적설(積雪)을 고려하여 지붕의 경사가 급하여 초가집보다 높다.

억새잎은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서 손을 베이기도 한다. 지리산의 억새는 우투리 설화의 소재이다. 지리산의 마을에서 우투리가 태어났는데 칼로도 잘리지 않은 탯줄이 억새로 잘린다. 칼보다 강한 지리산의 억새는 백성들의 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회덕마을 억새집. 지리산의 억새와 장수하늘소에서 우투리 설화의 정신을 본다.
 회덕마을 억새집. 지리산의 억새와 장수하늘소에서 우투리 설화의 정신을 본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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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고원에는 서어나무 숲이 여러 곳에 있다.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며 딱정벌레 종류의 곤충 중에서 가장 큰 장수하늘소는 서어나무, 신갈나무와 물푸레나무 등 오래되고 둥치큰 나무들이 자라는 숲에서 서식한다. 이들 나무줄기의 구멍에서 부화한 장수하늘소의 애벌레는 나무의 섬유질을 파먹으며 성장한다.

장수하늘소는 갑옷을 입은 듯 원시적인 형태이다. 하늘소 종류 중에서 가장 오래 전의 지구상에 출현했다. 이 곤충이 지리산의 생명력을 자양분으로 하여 멸종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 장수하늘소와 지리산 억새에서 지리산의 설화 아기장수 우투리의 모습과 기상을 본다.

민족의 영산(靈山)인 지리산의 둘레길 운봉고원 구간을 걸으면서 지리산을 향한 구심력은 마음속에 기쁨으로 커졌다. 지리산 기슭에 억새가 사계절 내내 생동감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서어나무 등 기주식물이 원시림처럼 무성하고 장수하늘소가 서식하여 화석 곤충다운 강렬한 인상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태그:#지리산둘레길 , #회덕마을 억새집 , #노치마을 목돌, #백두대간 마을, #지리산 운봉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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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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