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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원 라이딩이 있던 날이었다. 집에서 아주 먼 위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학원에서 수업이 있었다. 오랜만에 차를 써야 한다는 남편이 차를 가져갔기에 우리는 택시로 학원에 가야했다.

나름대로 서둘러서 출발했건만 그래도 택시 이동은 자차 이동보다 시간도, 비용도 더 들었다. 대략 3km 이동에 카카오택시 기준 총 8700원이 들었다. 택시비가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서 거의 두 배가 뛰었다. 우째 이런 일이... 너무 놀라서 돌아올 땐 망설임 없이 버스를 선택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매일 자차 이동하면서 한 주머니엔 차 키를, 다른 주머니엔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살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버스도 당연히 삼성페이가 된다고 착각했다. 지하철을 삼성페이로 탔던 경험이 오만함을 부추겼다. 지갑을 깜빡 잊었던 날, 급히 삼성페이에 대중교통을 추가하고 문제 없이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했던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삼성페이 대중교통 기능이 여전한지 확인했다. 대강 인터넷을 검색하니 티머니 혹은 캐시비(cash bee)를 등록하고 NFC를 카드 모드로 바꾸면 된다고 한다. 얼른 캐시비를 등록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제 열 살이 된 아이는 버스에 오르고도 얼른 운임을 결제하지 못하는 엄마가 불안한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흔들리는 버스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버스를 탔는데 요금을 내지 못하는 난처함.
 버스를 탔는데 요금을 내지 못하는 난처함.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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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일단 앉으라고 간신히 안심시켜 앉혔다. 그리고 결제를 시도했는데 실패! 하아... 아니, 왜 이러는 거지? 창피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울리는 남편의 전화... 집으로 잘 출발했느냐는 안부 전화인데 마치 버스 결제를 방해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일단 전화를 끊으라고 하고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를 했다. 이미 두 정거장을 지나온 상태였다.

NFC 카드모드까지 확인하고 다시 결제를 시도했다. 어린이 한 명, 어른 한 명 꾹꾹 버튼을 눌러주시는 기사님, 그리고 부끄러운 기분에 고개도 들지 못하는 나. 그러나 결제는 여전히 불발이었다. 계좌이체가 가능하냐고 여쭤봤다. 안 된다고 하신다. 당연하지... 교통비를 계좌이체하는 경우는 마을버스 빼고는 못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여기서 내릴게요." 아이에게도 어서 일어나라고 말했다. 아이는 짜증을 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그냥 남편에게 데리러 오라고 하거나 택시를 타고 카드결제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어서 이 버스에서 내려서 차가운 겨울 공기를 한아름 들이켜고 안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기사님이 손사래를 치신다. 손가락 두 개로 브이를 만드시면서 다음에 두 배로 결제하면 된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냥 가라고 말 없이 앞으로 손을 내미신다. 다른 승객들이 듣지 않도록 무임승차한 우리를 배려하신다. 내 눈을 의심했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인데...? 이런 배려와 아량이 왜 여기서 갑자기 나오는 거야......

그런데 안심하는 대신 나는 더 죄송하고 더 미안해졌다. 이번엔 부끄러움 대신 미안함이었다. 이 커다란 버스를 매일 같이 운전하는 힘든 일을 하시는 기사님에게 이런 선한 마음을 주시다니요. 부끄러움으로 이미 벌겋다 못해 식은 땀이 맺힌 얼굴로 감사하다며 고개를 몇 번이고 숙였다. 그리고 더듬더듬 버스 내부에 비치되어 있는 운전면허증(?)에 기재된 기사님 성함을 봐두었다.

차를 타면 잠시만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멀미를 하곤 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여덟 정거장 내내 핸드폰으로 버스 카드를 검색하고 또 검색하느라 고개도 들지 못했지만 멀미는 전혀 나지 않았다. 온 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선 것 같았던 십여분이었다.

한 정거장이라도 빨리 내리고 싶었지만 원래 내리던 정거장에서 꼭 내리고 싶어하는 아이의 뜻까지 받아들여 우리집 앞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인자한 미소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우리가 내리고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 한참이나 버스가 서 있었는데, 버스 옆면 전체가 다 기사님 얼굴 같았다. 마치 우리가 잘 가는지 계속 바라보고 계신 것만 같았다. 모퉁이를 돌면서 비로소 부끄러움과 미안한 감정에서 조금 도망치는 듯했다.

집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겠다. 매일 큰 긴장 없이 하루를 살아서 시간이 빠르다고만 생각했는데 버스를 탔던 십여 분의 시간은 정말 길었다. 일초일초가 아직도 뇌리 속을 맴돈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님의 인자한 미소와 손사래가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다. 다시 뵙게 되면 여지 없이 알아볼 것만 같다. 그리고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버스를 운전하시면서도 인자함을 잃지 않는 버스 기사님은 내게 아량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셨다. 내가 느낀 이 아량은 민들레 홀씨 같은 씨앗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로 또 퍼져나갈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마음 속 깊숙이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라앉아있던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힘든 상황에 돌발변수로 인해 돈을 조금 더 쓰게 되었던 경험, 그리고 화내고 원망했던 적이 있다. 그런 내게 괜찮다고 대답해주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다음에는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괜찮다고 대답해 주라고 가르쳐주었던 나를 사랑하던 누군가.

좁아터진 내 마음 한구석에 이해심이 쌓인 걸 느낀다. 이런 거구나, 세상을 원망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버스 기사님이 마음으로 주신 선물의 진동이 꽤 크다. 웅웅~. 마치 진동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랏, 이 소리는 진짜다. 윗집의 알람 진동이다.

윗집은 왜 매일 핸드폰을 바닥에 두고 그것도 모자라 알람 진동을 이십 분이 다 되도록 안 끄는 걸까? 버스 기사님의 친절에 마음의 진동을 느끼고 있던 내게 청각의 진동을 선사하는 윗집을 이번에는 용서해야겠지?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태그:#버스기사님의친절, #대중교통이용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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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 사회와 나의 부족한 면을 바라보고 채우는 방법을 생각하고 씁니다. 꿈을 꾸고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책을 통해 배워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공유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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