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랜기간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로 활약하다 도의원이 됐다.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라는 다소 이례적인 삶의 경로와 그에 따른 시각으로 경기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의정활동 중 마주하는 사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기자말]
첫인상부터 교장의 그것이 아니었다. 교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 패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색한 캐주얼 복장도 그랬다. 머리는 단정했지만 잘 정돈한 것이 아닌 곱슬머리 때문이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 그가 교장으로 있는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역시나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회장님 스타일의 책상, 회의를 하기엔 지나치게 불편한 소파, 이 모든 가구를 담을 수 있는 너른 공간,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무용 책상 하나와 회의 테이블과 회의용 의자들, 여느 사무실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한쪽 공간에 쌓여있는 초등학생용 보드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보드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그가 말했다.

"교장실을 학생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교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들어와 보드게임을 했다. 물론 시끌벅적 떠들면서. 그는 일상인 듯 아이들과 인사를 했다. 경기도의원, 그것도 교육청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교육행정위원회 소속 도의원과 이야기 중이었지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옆에서 아이들이 떠들어도 그와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초등학교이고, 초등학생이 조용하면 되레 이상하지 않겠는가?

운동장에 숲을 만들고 싶다는 꿈
 
2021년 5월 25일 산림청의 '운동장을 숲속학교로, 변신을 위한 첫걸음' 보도자료에 첨부된 도개고 학교숲의 모습.
 2021년 5월 25일 산림청의 "운동장을 숲속학교로, 변신을 위한 첫걸음" 보도자료에 첨부된 도개고 학교숲의 모습.
ⓒ 산림청

관련사진보기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같이 기존의 상식, 아니 나의 상식을 깨는 것들이었다. 그중에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운동장에 숲을 조성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풀풀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에서 축구공 하나 가지고 수십 명의 친구와 뛰어놀던 곳, 내 기억 속 운동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곳에 숲을 만들고 싶다니.

"요즘 학교는 대부분 체육관이 있어서 운동장을 사용하지 않아요. 운동장에서 뛰어놀리고 싶어도 미세먼지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수십 명의 아이가 뒤엉켜 공놀이하던 운동장의 모습을 담고 있던 내 기억은 이미 꼰대의 그것이었다.

"학교는 지역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시작은 운동장이 될 수 있을 것이에요. 하지만 지금 운동장은 기껏해야 조기축구회 아저씨들 정도와 공유할 뿐이죠. 생각해 보세요. 담장을 허물고 숲을 만든다면 운동장은 마을주민이 모이는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교사만이 아니라 온 마을주민들이 키우게 되겠죠."

학교 담장을 허물고 운동장을 숲으로 가꿔 학교를 마을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이 처음에는 '몽상가의 잠꼬대'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헤어져 조사해보니 이미 운동장에 숲을 조성한 학교는 여럿 있었다.

운동장 숲에 대한 평가는 하나 같이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운동장 숲을 지역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학교를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만든 사례는 없었다. 문득 잠시나마 몽상가의 잠꼬대라 생각했던 그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시 그를 찾았다.

"혹시 운동장 숲 이야기는 학부모님들과 나눠 보셨나요?"
"그럼요."
"학부모님들도 좋다고 하세요?"
"당연하죠. 학부모님들과 논의하지도 않은 것을 도의원님께 제안했겠어요?"


몽상가의 잠꼬대 같은 상상에 학부모들도 동의했다니 놀라웠다. 아니,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기적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2021년 5월 25일 산림청의 '운동장을 숲속학교로, 변신을 위한 첫걸음' 보도자료에 첨부된 동방학교 학교숲의 모습.
 2021년 5월 25일 산림청의 "운동장을 숲속학교로, 변신을 위한 첫걸음" 보도자료에 첨부된 동방학교 학교숲의 모습.
ⓒ 산림청

관련사진보기

 
매우 험난한 길이겠지만... 작은 희망을 봤다

알고 보니 기적의 원동력은 그가 교장직을 수행하게 된 과정에 있었다. 그는 수십 년간 점수를 쌓아 교장으로 승진한, 또는 시험을 통해 장학사가 돼 교감·교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는 '공모제 교장'으로 평교사 신분에서 바로 임기가 정해진 교장이 돼 혁신학교에 배정됐다.

교장이라고 하기엔 유독 젊어 보인 그의 외모는 공모제 교장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교장으로 근무한 지난 4년 그는 끊임없이 학부모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학부모에게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야기했고 학교 운영방안을 설득해 갔다. 그 결과 그는 몽상가의 잠꼬대가 통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장 숲이라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우선 사업비가 문제가 있다. 구체적인 견적을 내어 봐야 알겠지만, 수십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물론 그의 생각과 같이 사업을 통해 학교가 마을의 중심이 돼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학교가 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투자일 것이다. 그러나 예산을 책정하는 교육청과 이를 심사하는 도의회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교장과 도의원 한 명이 의기투합한다고 해서 쉽게 헤쳐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만약 사업비가 지나치게 많다면 교육청이 아닌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교장은 이미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나를 설득시켰다. 그렇다면 그를 도와 진심을 다한다면 교육청과 도의회 역시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지만 강한 희망을 느꼈다.

2009년부터 시작된 혁신학교라는 어찌 보면 무모했던 실험, 그는 온몸으로 혁신학교가 무모하지 않았음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소속 의원이며 현직 변호사이기도 하다.


태그:#혁신학교, #운동장 숲, #공모제 교장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