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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 '진도아리랑'
▲ 세월의 흐름 "진도아리랑" 세월의 흐름 "진도아리랑"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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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벽두에 '유신의 사생아' 전두환ㆍ노태우 일당이 광주시민을 살육하면서 권력을 찬탈하여 5공정권을 수립하는 폭압 속에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상태에서 관제 언론이 춤을 추고 어용문인ㆍ예술인들이 곡쟁이 노릇을 일삼았다. 독일이 히틀러 나치 시대에 이렇다 할 문학ㆍ음악ㆍ예술작품이 나오지 못했듯이 한국의 실정도 다르지 않았다.

광주시민들은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신군부에 저항했다.

아직 <님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기 전이다. 광주의 처절한 저항을 계기로 이후 민주화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런 가운데 각종 저항가요가 생산되고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가져왔다. 

70년대 긴급조치시대를 지나고 80년의 일시적 좌절을 겪은 민주화운동은, 이른바 '대중노선'이라는 새로운 운동원칙 아래 70년대의 전위적 운동방법과 조직원리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흔들리지 않게> <홀라송> <정의가> <해방가> <농민의 노래>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운동가요들이 80년대 들어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이룬 것은 대중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과 대중확보에 대한 운동의 객관적 요구가 결과한 전반적인 변화의 한 양상이다. (주석 1)

이즈음(1983년) 손목인 작사ㆍ작곡, 박재란 노래의 <아리랑 변주곡>이 대학가와 산업현장에서 널리 불렸다. '아리 쓰리'에 유난히 엑센트가 강한, 그래서 시대의 아픔을 은유하는 것처럼 부르고 들었다.

아리랑 변주곡

 아리랑 쓰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쓰리랑 아리 쓰리 아리 쓰리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꼬불 꼬불 첫째고개
 첫 사랑을 못잊어서 울고 넘던 고개
 꼬불꼬불 둘째고개
 둘도 없는 님을 따라 울고 넘던 아리랑 고개
 꼬불 꼬불 셋째고개
 샛방살이 36년에 울고 넘던 아리랑 고개
 꼬불 꼬불 넷째고개
 네가 네가 내 간장을 쓰리살짝 가는 고개
 꼬불 꼬불 다섯째 고개
 다홍치마 첫날밤을 방구뀌고 쫓겨난 고개
 아리랑 고개를 넘어 넘어서
 해방의 고개로 넘어 간다. (주석 2)

광주 민주화운동과 반5공투쟁으로 수많은 시민ㆍ학생ㆍ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투옥되고, 행방불명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85년 박건호 작사ㆍ노래의 <아리랑 처녀>에는 이런 아픔이 배어 있다. 

아리랑 처녀

 오며가며 한 개씩 놓고 간 돌이
 쌓이고 쌓여서 탑이 되었건만
 한번 가신 그 님은 돌아올 줄 모르고 
 무심한 세월만 흘러 가더라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위에서 
 오늘도 님 기다리시는 아리랑 처녀

 기다려도 그 님은 소식이 없고 
 그리움은 탑이 되어 쌓여만 가는데
 내 가슴에 붙은 불은 꺼질 줄도 모르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만 간다

 깊고 깊은 숲 속엔 온갖 잡새가
 저마다 흥에 겨워 노래 부르건만
 천년만년 살자하던 그님의 목소리는
 어이해 안 들리나 나를 울리네. (주석 3)


주석
1> 문승현, <노래운동의 몇 가지 문제들>, <노래운동론>, 70쪽, 도서출판 공동체, 1986.
2> 박민일, 앞의 책, 216쪽.
3> 앞의 책, 21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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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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