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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국가를 아리랑으로 지정하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통일을 바라보면서 남북한과 해외 교민들이 정서적으로 합치되는, 역사성이 깊은 아리랑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여기서는 아리랑의 역사와 후렴의 의미, 각 지역(해외 포함)에 분포된 사력 등을 살피면서 한류열풍의 중심에 아리랑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말]
물항아리에 담긴 바가지를 두드드리며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
 물항아리에 담긴 바가지를 두드드리며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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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장소 가리지 않고 부담감없이 손에 손잡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아리랑이다. 여기서 '우리'의 범주에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 고려인· 한인· 코리언은 물론 이땅으로 귀화한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나는 여러 해 전 평양과 삼지연, 연변과 태항산, 카자흐스탄, 하와이, 사할린 등에서 그곳 동포들이 부른 아리랑이, 노랫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 조국을 떠난 1세는 물론 2, 3세들에게 이어지는 그 아리랑의 맥락에서 하나의 겨레임을 실감했다.

모국어를 몰라도 아리랑 노래는 스스럼없이 불렀다. 어원도 잘 모르고 누가 체계 있게 가르치지도 않는데도 이 노래는 구전을 통해 한국 혈통이면 누구나 부를 줄 아는 국민가요 아니 민족가요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전통 구전민요로, 해외에서는 망향가처럼 그리고 귀화인들은 한국인이 되었음을 인증샷이라도 하듯이 부른다. 

긴 세월 그칠새 없는 외우내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리고 쓰렸으면 아리랑의 노래가 태어나고, 이것이 수백 년 동안 종횡으로 이어졌을까. 따져보면 '아리고 쓰린' 대목은 건국신화의 쑥과 마늘이 연상되어 그 연결성을 찾게되고, 별리와 상봉의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요이고 명실상부한 한국문화의 상징적인 노래인 아리랑은 문화적 독자성과 민족적 동질성으로 향후 통일한국의 '국가'로 지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분단시대에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면 스스럼없이 함께 부르고 각종 회의나 행사에서 적대감을 보이다가도 끝자락에 아리랑을 합창하면 얼싸안고 하나가 되는 노래이다.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국제경기에서 양측의 국가 대신에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망국시대에 독립 운동가들이 만주벌판과 시베리아 빙원에서 국가나 군가처럼 부르며 왜적과 싸운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1929년 12월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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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버트의 세계최초 아리랑악보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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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11년 아리랑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2012년 6월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7차 무형문화유산위원회에서 한국정부가 신청한 아리랑의 등재를 확정하였다. 2014년 11월 북한의 아리랑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포악했던 시절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여 독립정신을 고양시켰으며, 구한말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는 1896년 2월 영문 월간지 <조선류기>에 처음으로 아리랑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1919년 3.1혁명 때에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아리랑을 합창하였으며 만주의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전투 중에 '광복군 아리랑'을 불렀다. 

그런가하면 만주에서는 '아리랑 만주'라는 친일 아리랑이 작곡되기도 했다. 한말 '의병 아리랑'이 있었고 '독립군 아리랑'도 몇 종류가 있었으며 '연변 아리랑'도 많이 불렸다. 님 웨일즈는 중국 연안에서 우리 독립운동가 김산을 만나 그 혁혁한 투쟁사를 담아 <아리랑>을 저술하였다. 20세기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조정래씨는 대하장편소설 <아리랑>에서 민족의 혈맥을 유려한 문장으로 전개하였다.
 
1941년 뉴욕에서 출간된 님웨일즈의 <아리랑>. 1937년 말 중병에 걸린 조선인 항일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을 스물두 차례 인터뷰 끝에 님웨일즈는 김산의 치열한 삶과 고결한 영혼을 복기했다. 뉴욕 초간본 제목은 <아리랑의 노래>이다.
▲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원작 표지 1941년 뉴욕에서 출간된 님웨일즈의 <아리랑>. 1937년 말 중병에 걸린 조선인 항일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을 스물두 차례 인터뷰 끝에 님웨일즈는 김산의 치열한 삶과 고결한 영혼을 복기했다. 뉴욕 초간본 제목은 <아리랑의 노래>이다.
ⓒ 님웨일즈,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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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외에서 채집된 아리랑은 약 186종 2277연이 조사돼 있다. 자생한 민초들의 노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발굴될 것이다. 정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 시대에 따라 노랫말이 바뀌어도 그 본래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이 대표적이지만 '경기 아리랑' 등 지역마다 달리 불리는 것도 수없이 많다. 

음악적 관점에서 아리랑을 분류할 때 토속민요 아리랑과 신민요 아리랑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고, 아리랑의 뿌리 찾기와 뿌리로부터 생겨난 갈래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 또 아리랑의 어원에 관한 전거를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행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적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국가를 아리랑으로 지정하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통일을 바라보면서 남북한과 해외 교민들이 정서적으로 합치되는, 역사성이 깊은 아리랑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여기서는 아리랑의 역사와 후렴의 의미, 각 지역(해외 포함)에 분포된 사력 등을 살피면서 한류열풍의 중심에 아리랑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자 한다. 

그동안 아리랑 연구에 크게 기여하신 강무학, 김연갑, 박만일, 오태환, 권희덕, 김열규 선생 등 선학들의 노고에 경의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 겨레의노래, #겨레의노래_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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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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