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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재료로 급히 만든 소고기 육전
 있는 재료로 급히 만든 소고기 육전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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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을 마친 후 소주 한 잔을 위해 준비한 소고기 육전과 돼지 목살을 넣은 두부 김치입니다. 소고기 육전은 원래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도톰하게 썰어 전을 부쳐야 하는데 냉장고에 있던 불고기감을 대충 펴서 밀가루와 계란물을 씌워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단골로 이용하던 전집에서 배달시켜 먹으려고 했었는데 그날은 식당 매출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직접 만들어 먹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식당 사장이 되고 나서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면, 돈을 쓸 일이 생겼을 때 '이 돈을 내가 오늘 써도 되나?'라는 생각을 매출과 연관지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배달 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느냐, 제가 직접 만들어 먹느냐도 그날의 매출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좀 부끄럽고 치사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자영업자와 월급을 받는 직장인과의 차이일 겁니다. 직장을 다녔을 때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월급날이 되면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니 '당장 오늘 뭘 아껴야겠다' 하는 생각은 크게 안 하고 살았거든요.

배달앱 켜기를 망설이는 이유

제가 하는 와인바 역시 자영업이다보니 코로나 시국에는 영업시간 제한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님이 줄어들었고, 여름 휴가철, 가을 행락철, 궂은 날씨 등의 영향을 받을 때도 매출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경우 자연스레 배달 앱을 켜는 손가락이 멈칫거리게 되지요.   

그래봐야 3만 원이면 모둠전 한 판 먹고도 남겠지만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장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아마 자영업 하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매출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날이라 하더라도 내일은 또 장부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를 내다볼 수 없기에 이런 날도 사실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자리를 잡은 가게라 하더라도 기복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매출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월 임대료와,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납부분을 하루치로 계산해서 매일매일 적금 붓듯이 따로 떼어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미리 조금씩 마련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현금으로 결제해야 할 식자재 대금이며 와인 대금 등등 미리 마련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일도 수두룩합니다. 그렇다 보니 얼마간의 지출을 할 때면 '카드로 일단 긋고 월말에 보자'라고 했던 월급쟁이 시절의 마음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하루하루 나갈 돈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니까요.
 
직접 만들어 먹는 파스타 안주
 직접 만들어 먹는 파스타 안주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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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내가 어쩌다 2~3만 원 안주에도 부들부들 떠는 신세가 되어 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사장이 되어 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조금은 뿌듯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내 주머니에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졌다는 증거니까요.   

식당 사장의 복안
 
마감 후 뭔가 해 먹기도 피곤한 날에는 대충 차려 허기만 때우지요.
 마감 후 뭔가 해 먹기도 피곤한 날에는 대충 차려 허기만 때우지요.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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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도 또 한 가지! 역시 먹는 장사는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것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직접 만들어 먹은 요리들이 나가서 먹으려면 꽤 돈이 드는 안주들이거든요. 그런데 냉장고 안의 재료로 다 해결했으니 이런 것이 바로 '먹는 게 남는 장사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지요.

자영업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가 보면 날씨가 궂은 날이라든지 어쩐지 저녁에 손님이 없을 것 같은 '감'이 오는 날에는 아예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혼자서 가게 지키자고 냉난방하고, 조명 켜고 있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예전엔 몰랐지만 자영업을 시작하고 나니 이젠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가는 돈, 들어올 돈을 꼼꼼히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매출이 좋으면 마감 후에 참치회를 시켜 먹자. 만일 폭망이면? 냉동실에 닭발이나 볶아 먹어야지 뭐.'

식당을 그만두는 그날까지 아마도 사장의 머릿속에는 늘 저녁 메뉴는 2가지가 자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만일 매출이 폭망이면?'에 대한 복안 메뉴말이죠.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사장일기, #식당일기, #창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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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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