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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우리집에는 짐이 적은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 육아용품을 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아이들 장난감에, 거실벽 한 면을 책장으로 짜서 채운 책 등. 물건이 우리집에 들어온 후 어디에 둘지는 생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면 있는 힘껏 물건을 사들였다.

그러다 제주 한달살기를 하게 됐다. 꼭 필요한 물건만 들고 가 텅텅 빈 숙소에서 생활하고 나니 깨닫는 게 있었다. 여행이니까 짐을 줄여야 한다며 고르고 골라 들고 온 몇 안 되는 물건들만 갖고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서울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곳곳에 빼곡히 자리잡은 물건에 숨이 턱 막혔다. 그 뒤로 내가 가진 물건을 다 기억할 정도의 양으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가 있도록 물건의 수를 줄여갔다.

원단을 경쟁적으로 사다 보니... 방이 가득 찼다
 
원단
 원단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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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취미생활이 걸림돌이 되었다. 바느질을 하려면 재봉틀, 오버록 같은 기계와 실·바늘 같은 소모품, 단추 지퍼 같은 부자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원단과 패턴도 필요하다. 재봉틀, 오버록 같은 장비는 비싼 것으로 업그레이드 해갈지언정 부피가 무한정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단과 패턴은 무섭게 늘어난다.

옷을 만들어서 돈을 아껴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의 다음 단계는 원단을 싸게 사려는 궁리로 이어진다. 나처럼 평일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유일한 휴일이자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인 주말에 천을 사러 나갈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서 원단 파는 곳을 하나 둘 발견하여 천을 사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원단을 파는 곳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천과 부자재를 파는 곳과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각에 그 주에 구한 원단을 올려서 파는 인터넷 카페의 형태를 한 곳. 당연히 후자가 싸다.

그러다보니 습관처럼 매주 업데이트 시각에 맞춰 경쟁적으로 천을 사야했다. 마음에 드는 천을 언제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댓글을 선착순으로 달고 원단을 찜해서 판매 수량 안에 들어야 원단을 살 수 있었다. 댓글을 늦게 달아 마음에 드는 원단을 못 사게 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고, 재빨리 수량을 선점해 살 수 있게 되면 내 돈 주고 사는데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한 양 뿌듯했다.

현금으로 사야했기 때문에 언제나 사고싶은 양보다는 줄이고 줄였지만 그래도 내 생산능력보다는 항상 넘치는 것이었다. 가로 1.2미터 세로 1.8미터의 책장을 천으로 가득 채우고 맞은편 벽까지 원단 상자를 쌓게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방을 가득 채운 원단보관 상자들
 방을 가득 채운 원단보관 상자들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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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가 천으로 가득 차고 더 이상 천을 둘 곳이 사라지자 나는 엑셀로 구매한 원단의 양과 사용 내역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얼마에 샀고, 수량은 얼마나 되는지, 이 천으로 뭘 만들려고 샀는지, 결과적으로는 무얼 만들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그렇게 내가 산 원단들에 치여 살았다. 집채만한 파도가 뒤에서 몰려오는 와중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뛰는 듯한 모양새로 맹렬히 재단하고 만들어댔다.

어렵게 이룬 원단의 균형 있는 순환

성별이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방 두 개짜리 집 안방에 모두 모여서 자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방이 한 칸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각자 방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 더 이상 내가 방을 하나 차지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이사 갈 집에 이전 집의 짐을 이리저리 배치해 보았다. 정작 방 하나를 가득 채웠던 원단이 갈 곳이 없었다. 작은 장롱 한 짝만 한 수납장에 재봉틀과 기계를 수납해두고 작업을 하는 날만 그 장을 거실로 끌고 나와 펼치면 작업실이 되는 뭔가를 주문·제작해볼까 하고 이리저리 검색도 했다. 또 베란다를 작업실로 만들 수 있을까 싶어 견적을 내보기도 했다.

같은 단지 옆동으로의 이사였기 때문에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후에 옷과, 부엌세간 같은 잔짐은 내가 옮기는 걸로 하고 인터넷에서 값이 싼 용달업체를 계약했다. 짐을 옮기려고 원단을 꺼내자 그간 어디에 원단이 다 들어있었는지 모르게 끝없이 나왔다.

아이가 어릴 때 옷을 만들어주려고 샀지만 시기를 놓쳐 아이들이 입기엔 어색해진 캐릭터 원단들, 이걸 왜 샀지? 싶은 인터넷 쇼핑의 실패 사례들, 예뻐 보여서 샀는데 한 번 만들어보니 바느질이 까다롭고 제대로 재단하기도 어려워 '몰라서 용감했지, 다시는 이 걸로 옷 안 만들어' 결론 내린 원단들, 그리고 기타 원단들. 많이 버리고 나눔한 후 추리고 추려서 밤마다 조금씩 원단을 새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맨날 돈 없다면서 다 만들지도 못할 원단을 사들여 쌓았으니 이는 내 약점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같이 옮겨달라고 하기 싫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한 번에 들 수 있는 최대치로 눌러담은 원단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옆 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새 집에 원단을 풀어놓고 돌아오기를 며칠 간 반복했다. 그렇게 이사를 한 후 50만 원을 아꼈지만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끝없이 나오는 원단을 양 어깨에 메고 걷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새롭게 결심했다. '원단 쉽게 사지 말아야지, 외워라, 원단은 사기는 쉬워도 팔기는 어렵다. 사기는 쉬워도 옷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원단은 옷이 아니다.'

그때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베란다 창고에 넣은 약 10개의 공간박스 안에 원단을 넣고 그 위에 작은 책장을 올려 패턴을 보관하고 있다. 조금 더 줄이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원단을 구매한 만큼 만든다는 원칙에 따라 들고 나는 원단의 순환은 균형있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원단이 증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있다.

야금야금 늘어나는 원단과 패턴 위한 몇 가지 팁

원단과 패턴을 보관하는 공간을 정해놓고 그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한다. 원단을 한 번 사면 산 원단들을 다 쓰기 전까지 원단 판매 사이트 발길을 끊는다. 이제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한 기생집으로 데려간 말의 목을 벤 김유신을 생각하면 좋다. 그렇다고 내 손가락과 손목을 어찌할 순 없지만 말이다.

비슷한 원단은 항상 나온다는 걸 기억한다. 이번에 사지 않으면 영영 못 살 것 같다는 조급한 마음은 넣어둬도 좋다. 14년 간의 바느질 인생 경험으로 보면 좋은 물건, 잘 팔리는 물건은 제조업체에서 더 팔려고 다시 만들게 되어 있다. 물건이 품절될까 두려우면 쇼핑중독이라고 하긴 하던데… 아, 아닙니다.

새로운 패턴을 계속 사고싶을 때도 브레이크를 거는 편이 좋다. 신상 블라우스 패턴이 나오면 '님 저번에 산 블라우스 패턴도 아직 못 만들지 않으셨어요?'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신상 블라우스를 사고 싶어서 기존에 사둔 블라우스를 완성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니 손해볼 건 없다.

얼리어답터(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사려는 소비자)가 되지 않는다. 패턴을 판매하는 분들은 원단 고르는 안목도 옷을 만드는 솜씨도 좋아서 새로 나온 패턴과 그 패턴으로 만든 옷을 보면 '어멋, 저건 만들어 입어야 해!' 싶지만 다른 고수들이 사서 만들어 입은 후기를 보고 사도 늦지 않다. 이 원칙만으로도 패턴 과소비를 꽤 줄일 수 있다.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한 것이 천을 적게 사면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도 비례해서 줄어든다. 적게 먹으면 나오는 것도 적은 것과 같은 이치인 듯하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아서 허덕이며 옷을 대지 않아도 된다. 하나가 안 맞게 되거나 못 입게 되면 새로 하나를 만들어 넣는 방식으로 옷장도 원단장도 들고남이 일정해졌다.

이제는 하나를 만들어도 공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가도 된다. 적게 만들고 가진 것을 잘 활용해서, 미니멀하되 그것으로 충분한 옷장을 꾸려가고 싶다. 이제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는 시대가 아니다. 나는 천을 사고 옷을 만드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가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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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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