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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실개천마을학교 체육교실 ⓒ 월간 옥이네
 
그네, 미끄럼틀, 시소가 펼쳐진 풍경. '놀이터'를 말할 때 으레 떠올리는 그림이다. 어린이에게 '진짜' 놀이터는 어떤 곳일까? 사실 모든 장소가 놀이터가 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할 때 도로 위 횡단보도는 폴짝폴짝 뛰어갈 징검다리, 골목길은 미로 같은 탐험길,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쓰레기는 훌륭한 만들기 재료가 된다.

그러나 함께 놀 친구가 없다면? 도무지 흥이 나지 않을 테다. 함께 놀 친구 없는 재미없는 하루. 이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이다.

어린이가 놀이터를 좋아하는 것은, 그곳에 함께 놀 친구와 놀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만들어 놓은 대부분의 '놀이터'에는 친구도, 재미있는 놀거리도 없다. 이들에게 '진짜' 놀이터는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 방과 후 어린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곳, 이들을 위해 마련됐다는 공간을 찾았다. 학부모들이 중심이 돼 마련했다는 '진짜' 놀이터다.
 
실개천마을학교는 우리의 쉼터

어린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시간,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에서 가까운 실개천마을학교(구읍 복지회관 건물)를 찾았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공간, 신발을 벗고 들어가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구분됐다.

두 번째 공간을 들여다보니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본래 식물에 물을 주기 위한 용도였을) 분무기를 들고 서로에게 칙, 칙 뿌린다. 분무기 세례를 피하려 눈을 꼭 감으면서도 깔깔깔 웃는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이곳은 어린이들의 열린 놀이터다.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매일 여기로 와요. 맛있는 간식도 먹고 친구들하고 놀고 여러 가지 체험도 해요."

단짝 친구라며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잡는 김리아(9), 신유니(9) 어린이다.

"프로그램이 없을 때라도 가끔 시간이 남거나 갈 곳 없으면 여기로 와요. 다른 곳보다 편하고 재밌어서 좋아요." (신희성, 11)

"여기 오면 간식도 주시고 친구들, 형들이랑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주변에 놀 공간은 있어도 '진짜 놀 데'는 별로 없는데, 여기에서는 진짜 놀 수 있어요." (최현세, 10)
 
충북 옥천 실개천마을학교에서는 단순한 놀이 외에도 전통놀이·경기민요·캘리그라피·공예·체육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 월간 옥이네
 
이들에게 실개천마을학교는 학교보다 편안한 쉼터인 동시에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 중학생까지 다른 나이대의 어린이가 한 공간에서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쉼터다.

단순한 놀이 외에도 전통놀이·경기민요·캘리그라피·공예·체육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날 다 같이 참여한 프로그램은 체육 교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야외, 근처 상계공원에서 할 수 있어 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 시합을 하는데, 학년이 높은 어린이가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이 인상깊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덧 해가 질 무렵. 학부모들도 퇴근할 시간이다. 다시 만난 이들은 '오늘 하루는 어땠냐'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실개천마을학교는 2019년, 구읍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돌봄공동체다. 구읍은 옥천읍에 속하면서도 인근에 학원 등 교육 시설이 부족했던 탓에, 방과 후 어린이가 마땅히 머물 공간이 없었다. 이에 죽향초등학교 학부모 5명이 운영진이 돼 자녀와 마을 어린이들이 잠시라도 편안히 쉬어갈 공간, 놀다 갈 공간을 구상했다.

구읍 번영회, 고시산 청년회 등 도움을 받아 마을 단체가 사용하던 복지회관을 활용하고 옥천행복교육지구 돌봄형 마을학교, 미래교육지구 마을 방과후 학교로 지정되면서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마을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년 학교 공문 등을 통해 신청자를 모집, 무료로 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15명을 정원으로 하고 있다.
 
"마음 놓고 자녀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안심되죠. 저는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옆에서 봐도 프로그램이 참 알차고 좋아요." (노정은, 46)
 
실개천마을학교는 학교보다 편안한 쉼터인 동시에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 중학생까지 다른 나이대의 어린이가 한 공간에서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쉼터다. ⓒ 월간 옥이네
 
어느덧 운영 4년째,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운영진 학부모의 자녀들도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됐다. 다른 어린이와 학부모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인지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개천마을학교 이은숙 운영회장은 그간 이곳을 운영하며 보람 있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피구를 무서워하던 친구가 있었죠. 학교에서 체육을 할 때마다 공이 무서워 한 번도 공을 잡아본 적이 없었대요. 여기에서는 서로 비난하지 않고 용기 주는 말을 하는 게 규칙이거든요. 차근차근 도전해 보도록 했는데, 이제 무섭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지원받는 예산으로 강사비는 제공되지만, 운영진은 봉사직으로 활동하며 회비를 모아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시설 유지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때로는 지칠 때도 있지만, 이들은 한 팀이 되어 어린이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었다.

"내 아이가 크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도 같이 커야 하고 이곳을 둘러싼 환경도 건강해야 하잖아요. 건강한 놀이터, 배움터, 마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계속 힘을 내야지요." (실개천마을학교 이은숙 운영회장)
 
놀이터이자 새로운 경험의 장, 장령공동돌봄
 
마당 한쪽에 있던 낡은 컨테이너는 장령공동돌봄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학습 장소가 됐다. ⓒ 월간 옥이네
 
장령산자연휴양림 인근, 고요하던 이곳이 왁자지껄 금세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군서초등학교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온 어린이들의 목소리다. 익숙한 듯 짐을 풀어놓고 간식을 먹으며 서로 장난을 하기 바쁘다.

군서초에서도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깊숙한 산골, 이곳에서 12명의 어린이는 서로 어울려 놀고 악기연주, 캘리그라피, 요리 교실 등 여러 활동을 한다.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모여 동아리로 시작했죠. 이곳에 워낙 어린이가 없어서 저희 자녀도 학교 끝나면 주변에 어울려 놀 친구가 없었어요. 이곳 금산리에는 어린이가 우리 집 아이들 두 명뿐이었으니까요. 같이 무언가 하면서 놀 수 있도록 해 줘야겠다 싶어 시작하게 된 게 지금의 '장령공동돌봄'이 됐어요."

다섯 명 정도 인원이 한 달에 두세 번가량 모여 여행을 떠나고 놀이 프로그램을 하던 것이 규모가 커졌다. 김복순 운영회장은 펜션이자 개인 주택인 이곳을 돌봄 장소로 제공하며 3년 이상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마당 한쪽에 있던 낡은 컨테이너는 장령공동돌봄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학습 장소가 됐다.

"본래 다 쓰러져가던 낡은 창고였죠. 화사하게 페인트를 칠하고 내부도 깨끗이 정리해서 훌륭한 공간으로 탈바꿈했어요."
 
충북 옥천 군서초에서도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깊숙한 산골, 이곳에서 12명의 어린이는 서로 어울려 놀고 악기연주, 캘리그라피, 요리 교실 등 여러 활동을 한다. ⓒ 월간 옥이네
 
이날 악기 교육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한얼째즈음악학원 김수진 원장이 강사로 나서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등 각종 악기연주를 가르친다. 장난스레 하는 어린이도, 사뭇 진지한 태도로 악기를 연주하는 어린이도 있다. 이곳에서 처음 악기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도 있다고.

이런 활동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노는 시간이다. 마당에서 줄넘기를 뛰고 곤충을 잡는 등 어린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놀거리를 찾는다. 근처 장령산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놀이터 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 오면 평소에 못 했던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어요. 악기연주도 배우고, 친구들하고도 놀 수 있고요." (박지원, 10)

"여름에는 다 같이 근처 계곡에 물놀이 가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집에 있었으면 못 했을 일들을 여기에서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악기연주 하면서 저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백현수, 11)

"만약 여기 오지 않고 집에 있었더라면 아마 방에서 게임만 했을 것 같은데, 여기서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원정연, 13)

장령공동돌봄은 놀이 장소에서 더 나아가 친구와 어울리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주변에 가까운 편의시설은 없지만, 훌륭한 자연환경 덕에 어린이들은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채워나가는 듯했다.

개인 공간을 돌봄 장소로 내어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일. 때마침 군서 국민체육센터와 작은도서관이 이번 달 준공될 예정인데, 이와 함께 장령공동돌봄 역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돌봄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에 군서면 작은도서관이 문을 열게 됐어요. 면장님을 비롯해 마을 분들과 상의해 이곳에서 돌봄을 할 수 있게 됐죠. 학교에서도 가깝고 체육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이곳이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장소인 만큼, 장령공동돌봄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이러한 돌봄공동체는 실개천마을학교(고시산 청년회)와 장령공동돌봄 외에도 옥천에 다섯 곳이 있다. 이들은 옥천행복교육지구 '돌봄형 마을학교'이자 '지역연계 마을방과후'로 선정돼 1년에 4천만 원 예산을 지원받아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전기사] 학교 앞 놔두고, 차 태워 멀리 학원 보내는 이유 http://omn.kr/1z8rz
 
"여기 오면 평소에 못 했던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어요. 악기연주도 배우고, 친구들하고도 놀 수 있고요." ⓒ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59호 (2022년 5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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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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