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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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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밤, 책상 밑에서 발바닥에 계속 골프공을 문지르는 소녀를 봤다. '전교 1등'이라기에 공부하다가 발이 아파서 뭉친 부위를 풀어보려는 건가 싶었다. 의문은 곧 풀렸다. 이번엔 침대에 누운 채 벽에 대고 또 골프공으로 발바닥을 문지르며 소녀는 말했다. "인터넷 보니까 발바닥을 자극하면 자궁이 수축돼서 유산될 수도 있대서." 소녀의 이름은 영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등장인물이다.

그런데 임신부는 체중과 골격의 변화로 몸이 잘 붓는 편이라 발 마사지로 부종을 빼곤 한다. 과한 자극이 자궁수축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게다가 남자친구, 현은 인터넷으로 정체 모를 약을 구해온다. 망설이던 영주는 전화상담 중 '100% 가짜다. 먹으면 큰일 난다'는 간호사의 말에 결국 병원을 찾아간다. 그는 진료 후 "부모 동의서 받아와"라는 의사에게 "낙태죄 폐지돼서 법적으로 부모 동의 필요 없잖아요"라고 묻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아직 정해진 거 없어."

그렇다. 낙태죄는 폐지됐다, 그것도 3년 전에. 그렇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 3년이나 됐는데.

'무소속'이 된 임신중단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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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모든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낙태죄의 목적 자체는 정당하지만 현행법이 모든 임신중단을 일률적으로, 또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다만 선고 즉시 해당 조항의 효력이 사라지는 '단순위헌' 정족수 6명이 채워지지 않아 낙태죄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됐다.

그리고 지금, 2022년 4월이 끝나가지만 드라마가 방영된 4월 23일에도, 현재도, 의사의 말처럼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헌재 결정대로 낙태죄는 세상에 없는 범죄가 됐지만, 임신중단이란 행위는 불법과 합법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만 3년이 넘도록 '입법공백' 상태다. 국회의 무관심 덕분이다.

국회의원 300명 전부 외면하진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박주민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2020년 하반기 각각 낙태죄를 아예 삭제하는 형법 개정안, 임신 주수·사유 제한이 없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면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로 제한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놨고, 국민의힘 조해진·서정숙 의원은 '임신 10주 이내'라는 더 엄격한 조건을 붙여 법안을 만들었다.  

국회는 다양한 의견이 만나 부딪치는 공간이자 그 갈등을 조정하는 주체다. 임신중단에 주수 제한을 둘 것인지, 수술뿐 아니라 약물 임신중단도 허용할지, 미성년자가 임신을 중단하려고 할 때 부모 동의 여부는 어떻게 할지 등 정당이나 세력간 이견이 큰 사안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내는 일 역시 국회의 몫이다. 게다가 헌재가 명령한 헌법적 의무다. 그런데 국회는 2020년 12월 8일 진술인 8명 중 2명만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공청회 한 번 열었을 뿐이다.

헛된 상상
 
2020년 12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2020년 12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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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문제는 그렇다 치자. 적어도 '의사는 인공임신중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때 임산부의 연령 등을 고려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하라'는 모자보건법 개정(권인숙·이은주 안에서 신설)만 이뤄졌다면... '전치태반이 뭐냐'는 질문에 "인터넷 찾아보라"는 식으로 진료 내내 차갑게 말하는 의사에게 영주가 "선생님 왜 나한테 반말해요? 청소년 환자면 반말해도 되는 거예요?"라고 대들었을까? 잠시 상상해봤다.

하긴, 윤석열 당선인 측의 황당한 '검수완박법 국민투표' 제안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헌재가 재외국민 국민투표 참여 제한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실시할 수 없다'고 밝히지 않았나. 그런데 헌재의 해당 결정은 2014년 7월 24일 나왔지만, 대체 입법은 2022년 4월 28일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19~20대 국회에서 나온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박범계·김영배 의원이 각각 만든 법안도 상임위 상정에 그친 채로 있다.

무려 8년째 국회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떠올려보니,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아직 멀었다. 그럼 헌재 결정도 없어서 당사자들이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차별금지법, 장애인평생교육법 등은 어떻게 해야 하나. '헛된' 상상을 '잠시'가 아니라 '또' 해버렸다. 

[관련 기사]
낙태죄 사망 (1953~2020) http://omn.kr/1ij04
"낙태죄 존치가 개정안? 한 방 맞은 것 같다" http://omn.kr/1pec2
낙태죄 보수 첫반응... 조해진은 왜 10주-20주를 선택했나 http://omn.kr/1qmfv
2021년 1월 1일 0시 낙태죄 사망, "큰 기회가 왔다" http://omn.kr/1r3qb
균형 상실한 국회 공청회... "자기결정권=낙태의자유" 주장까지 http://omn.kr/1qw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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