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피해자에게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충격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17일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2> 14회에서는 MC 윤종신을 비롯하여 권일용, 장강명, 서혜진, 박지선, 김상욱이 출연하여 '죄와 벌-그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채로운 범죄 이야기를 풀어냈다.

MC들이 책이 가득한 북카페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진행했다. 박지선은 눈에 띄는 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꼽았다. 가난한 청년 라스콜리니로프가 전당포 주인 알료나를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주제는 '범죄자는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죄와 벌>은 150년이 지난 현대의 시선으로 봐도 범죄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범죄는 잘못된 사상에서 출발한다. 극 중 범죄자가 되는 주인공은 사람은 범인(평범한 사람들)과 비범인(특별한 능력을 지닌 극소수)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본인의 대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괜찮고 그것이 '비범인의 권리'라는 잘못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책에서는 이를 영웅주의 혹은 초인사상이라고 정의했다.

초인사상과 더불어 살해의 배경이 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비인격화였다. 고리대금업자인 알료나는 라스콜리니노프의 시선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기에 자신의 살인도 정당하다는 합리화가 성립된다. 범죄를 합리화하고 살인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현대에도 여전한 범죄자들의 단골 변명거리다. 박지선은 자신이 만난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예로 들며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수십 번을 질문했지만 매번 "미안하지 않다"는 대답만 반복했다고. 정남규는 판사에게는 "살인이 즐거웠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장강명은 <죄와 벌>의 메시지에 대하여 '왜 범죄(살인)을 저지르면 안 되는 이유'로 해석했다. 자신을 우월한 비범인으로 여기던 주인공이 사실 자신이야말로 벌레였음을 깨닫는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범죄자들의 허황된 자기합리화를 비판했다는 것.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시인 겸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라는 표현을 썼다. 장강명은 짐승같은 한 인간이 저지른 범죄 사례로 '황영동 연쇄살인사건'을 소개했다.
 
49살의 황영동은 대낮에 공중화장실에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가 비명을 듣고 인근 공사장에서 달려온 인부들에게 제압당했다. 황영동은 경찰에 체포된 뒤 5명을 살해했다는 놀라운 자백을 한다. 피해자는 모두 홀로 있던 여성이었고 심지어 임산부도 잔혹한 수법으로 살해당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황영동이 사건 발생 2개월전 특수강간 혐의로 이미 체포된 적이 있으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는 것. 사유는 녹내장으로 인하여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일생동안 강도, 상해, 성폭행 등으로 무려 14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린 상습 범죄자였던 황영동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또다시 녹내장을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장강명은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이라며 분노했다.
 
황영동을 붙잡는 과정에서 칼을 맞고 큰 부상을 당하면서도 싸웠던 청년 인부가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아닌 누구라도 이 일을 똑같이 했을 것이다"라고 의연하게 답했다고. 황영동과 청년 인부처럼 같은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장강명은 그 아이러니에 대하여 "인간이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특히 범죄 사건일수록 인간의 민낯이 잘 보인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소설가들이 범죄를 모티브로 글을 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황영동 사건처럼 많은 범죄들이 시민의 힘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권일용은 시민의 도움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공개수배'를 언급했다.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 가평계곡 살인의 주범 이은해-조현수가 검거된 것도 모두 시민들의 제보 덕분이었다.
 
2015년 트렁크 여성 시신사건의 피의자 김일곤 역시 공개수배와 시민들의 도움으로 체포할 수 있었다. 권일용은 직접 김일곤을 상대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타인의 행동을 왜곡하는 성향과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편집증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김일곤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러야할 대상들을 조목조목 기록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자신에게 불친절했던 간호사,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과 주소 등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놓고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버럭 화를 내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개수배로도 놓쳤던 범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잡아낸 사례도 있다. 1995년 고양 여관 종업원 살해사건의 범인 김씨를 무려 12년만에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행적이 불분명하여 말소되었던 김씨의 주민등록번호를 매달 한번씩 추적했고 2007년 김씨가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은 사실을 포착하여 주소지를 확인한 결과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권일용은 "공개수배로 올라간 범죄자들은 평균 50% 이상이 검거된다. 그런데 바꿔말하면 절반은 못 잡는다는 거다. 공개수배라는 것은 사건을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도 또다른 범죄를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를 범죄자들을 막기 위하여 시민들의 추적과 신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다음 화두로 떠올랐다. 인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4살짜리 아이를 폭행한 모습이 CCTV에 촬영되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교사는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폭언과 협박, 구타를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훈육 차원이라고 변명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교사가 아이를 직접 때리는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폭력을 행사하게끔 유도한 사례가 나온다. 폭력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서적 학대였다. 한 아이에게만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거나 화장실에 불을 끄고 감금한 경우도 있었다.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고 보육교사의 자격 기준이 강화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박지선은 아이 돌보기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단순히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보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권일용은 보육교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강연을 나갔다가 "누구보다 건강해야하는 건 선생님들입니다"라고 당부했을 때 대부분의 교사들의 눈물을 흘렸던 일화를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강명은 수많은 범죄중에서도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준 사건으로 2017년 10년지기 생매장 사건을 소개했다. 범인 이씨는 남편과 이혼하기 위하여 10년간 알고 지냈던 A씨를 이용하여 성관계를 맺게했고, 이것이 알려질까 두려워 아들과 모의하여 A씨를 납치하여 생매장했다. 모자는 2심에서 이씨가 징역 30년, 아들은 18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A씨와의 친분을 이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장강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인간화'한 것"이라고 분석하며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연민 없이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마주할 때 쉽게 그런 유혹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관계의 변화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2021년 신상이 공개된 악질범죄자 10인 중 5명이 스토킹 및 교제살인범이었다. 박지선은 2012년 울산에서 일어난 김홍일 교제살인 사건을 소개했다. 김홍일은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한 언니에게 앙심을 품고 집을 찾아가 언니와 교제를 반대했던 동생까지 자매 두 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김홍일은 체포된 이후에도 우발적 범행이라며 거짓말을 했지만 여러 정황을 수사한 결과 계획된 범죄였음이 드러났다. 두 자매를 살해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20초였고, 언니를 살해할 때 피해자와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라"라고 언급했던 내용이 119 신고 통화기록에 남겨졌다.

김홍일은 피해자가 자신과 가족을 무시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피해자는 끝까지 예의를 갖추며 이별을 통보했고, 누군가를 모욕한 정황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김홍일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자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김홍일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는데 그 사유가 어이없게도 '본인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했고, 다른 전과가 없어서'였다고. 재판부를 향하여 "대체 어떤 흉악범에게 사형을 내릴지 궁금하다"는 피해자 부친의 한탄은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2022년에 3개월간 교제했던 여자친구를 살해하여 큰 충격을 안긴 조현진도 교제살인범으로 신상이 공개됐다. 박지선은 교제살인에서 김홍일-조현진처럼 이전에 전과기록이 없던 사람도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하여 타인의 거절을 두려워하고 자기 반성없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향을 꼽았다.
 
또한 최근 연구된 교제범죄의 요인에 따르면 과도한 자기애적 성격(나르시즘)과 그에서 비롯된 특권의식과 착취성이 거론됐다. 특권의식을 지닌 이들은 자신이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끼며, 누군가가 자신에 대하여 거절이나 거부를 했을 때 분노를 느끼고 폭력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착취성은 사람을 도구로 보고 내가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성향이다.
 
박지선은 오늘 거론된 대부분의 사건들이 "네가 감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보복과 공격이라고 분석하며 "자기애와 자존감은 가르다. 자기애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 자존감은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권의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낮다고.
 
상대가 교제살인을 저지를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오죽하면 요즘은 '안전이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박지선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러게 진작 헤어지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한 건의 데이트 폭력이 발생해도 상대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마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를 지적했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로는 친족 성폭력도 있다. 1992년 일어난 의붓아버지 살인 사건은 친족 성폭력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은 딸A와 남자친구 B였다. 그런데 A는 살인사건의 가해자이면서 12살 때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의붓아버지는 검찰청 간부출신으로 공권력에 신고해도 해결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A와 B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은 국민들은 안타까워했고 대학생, 시민단체, 법조인 등 많은 이들의 구명을 위하여 발벗고 나섰다.

공판 당시 "구속된 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 보다 훨씬 편안했다. 밤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더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 제가 벌을 받을테니 남자친구는 선처해달라"는 A의 고백은 많은 이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B역시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A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걸 알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마다 죽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나는 A의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A를 살린 것"이라고 호소했다. 재판 결과 B는 징역 5년, A는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정부의 대사면 대상이 되어 각각 형선고실효와 감형조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친족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1994년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안이 최초로 통과된다. 이로서 친족 성폭력에 대한 법적 개념이 생겨나고 일반 성범죄보다 더욱 높은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친족 성폭력은 알려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법기관에서 통계를 낸 성범죄 가해자-피해자 분포를 보면 모르는 관계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그런데 성폭력 담당기관에서 통계를 내면 친족 성폭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은 해도 신고는 못하는' 친족 성폭력의 사건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혜진은 친족 성폭력 사건을 맡았던 경험을 언급하며 피해자는 물론 변호사에게도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를 시도하는 친족들 때문에 "내가 가정파괴범이 되었나"는 혼란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변호사에게도 이 정도라면 피해자에게 가해질 압박은 어느 정도였을까. 서혜진은 "친족 성폭력에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가족을 본일이 없다"고 꼬집었다.

친족 성폭력사건에서 보호자들이 쉽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보호자 역시 가정 폭력의 희생자이거나, 가해자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현실적인 생계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서혜진은 2012년 광주에서 두 딸을 초등학생 때부터 7년간 강제 추행해온 아버지와, 여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온 친오빠의 사례를 언급했다. 가족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어졌을 때 친족들은 가해자가 된 가족의 구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친족 성폭력은 일반 성범죄보다 형량이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평균 71.4개월(약 6년)에 불과하다. 가해자가 형의 집행이 끝난 이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무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처벌 수위다.
 
박지선은 피해자들을 위한 조언으로 '기록'을 당부했다. 당장 신고하기에는 두렵고 어려울 수 있지만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언젠가 스스로를 보호할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혜진은 "피해자를 도울 사회적 시스템이 있다. 고민하지 않고 신고하시라"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우리 사회 역시 해야할 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지지해주고 같이 고민하는 것부터 우리가 함께했으면"이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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