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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에서 통장 정리를 하는데, 이장 수당이라는 항목으로 1월 21일에 36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이장 활동에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니 약간 얼떨떨했다.

이장 수당은 지자체마다 금액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울산광역시의 경우 이장 수당은 30만 원인데, 내가 이 액수를 아는 이유는 아주버니가 울주군에서 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청남도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이장 수당이 20만 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수당'이라는 낱말 자체에 거부감이 조금 생긴다. 사전을 보면 수당은 '정해진 급여 외에 특별한 사유에 따라 정기적이거나 수시로 지급되는 보수'라고 정의된다. 즉 수당의 사전적 의미는 '보너스' 혹은 '상여금' 정도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 해석을 따르자면, 이장에게 '정해진 급여'가 지급되는 전제조건이 있어야만 이장 수당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장 수당이라는 단어로 이장의 활동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니가 돈 번다꼬 고생이 억쑤로 많타."

내가 '이장 회의 서류' 사본을 어르신들에게 돌리다 보면 가끔 듣는 소리다. 사실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다면 이장직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장 활동에 대한 수고의 대가로 지불되는 돈이 '이장 수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서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이장 수당'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도 이해는 된다. 이장의 직무가 봉사직이다 보니, 매월 지급하는 돈에다 급여나 월급 같은 명칭을 붙인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봉사를 하는데 급여를 준다면, 그 활동은 봉사가 아닌 게 돼버린다. 따라서 수당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이장에게 매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그냥 '이장 활동비' 정도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월 51만 원

이장은 이장 수당 이외에도 매달 농협에서 12만 원을 받는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함양군의 경우 이장이 되는 순간 당연직으로 마을의 영농회장으로 임명된다. 이 영농회장이 하는 역할은 농협과 마을 농민들 사이에서 가교가 되는 것이다.

영농회장은 농약·퇴비·비료와 벼·콩·팥·씨감자 등 수많은 품목의 수요를 조사하고 종자와 물품들을 농민을 대신해서 신청하고 이것들이 공급되면 주민들에게 이를 알린다. 그리고 차량이 없거나 바쁜 농민들을 대신해서 농가로 직접 배달까지 한다.

참고로 농번기에 접어들던 2021년 3월 23일의 영농회장 회의자료를 한번 보자. 이날 4개의 안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추청벼 모종 신청에서 누락된 농민들을 조사해 농협에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농협 하나로마트의 마을 이동 판매를 주민들에게 홍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세 번째는 5월에 함양농협이 판매할 생멸치에 대한 수요자를 파악하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볍씨 종자 소독약을 공급할 예정이니, 해당 농민이 농협 백전지점 농약 창고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함양농협 백전지점
  함양농협 백전지점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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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이 전국 각 지역의 농촌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면 단위로 보면 실무자들의 숫자에 비해 업무량이 많고, 보직 변경이 잦아서 담당자들이 각 마을의 형편을 상세히 알기 어렵다. 그래서 영농회장은 농협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요구를 농협에 전달하는 활동을 한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대가로 농협은 마을의 영농회장인 이장에게 매달 12만 원을 지급한다. 농협은 '농업협동조합'의 줄임말이다. 따라서 농협이 내게 지불하는 돈은 농협의 조합원인 우리 마을 농민들의 노동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매달 나오는 12만 원의 출처가 우리 동네 이웃들의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농협의 관계자들도 자신의 급여가 농민들의 힘겨운 노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면 참 좋겠다.

어쨌든 이장 수당 36만 원, 영농회장 수당 12만 원 이외에도 '이장 회의비'가 한 번에 1만5천 원으로 매달 3만 원 지급된다. 그러니까 이장 활동으로 한 달에 총 51만 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명절 상여금이 두 번 있는데, 설과 추석에 30만 원씩 지급된다.

통장을 확인하고 며칠 뒤 '백전면이장단'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로 선출된 이장들은 이장단 입회비를 30만 원을 내야 하고, 영농회장수당과 회의비, 명절 상여금 모두 백전면이장단 계좌로 입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매달 영농회장 수당과 회의비를 합친 15만 원과 명절 상여금을 이장단에서 기금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총무는 이 기금이 경조사비와 이장단 활동비, 불우이웃돕기 성금, 퇴직 이장 선물비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남은 기금을 나눠서 16명의 이장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기금의 사용 용도만 공적으로 명확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관행이라며 따르라고 하는데, 신입 이장의 처지에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입회비 30만 원, 영농회장 수당과 회의비를 합친 15만 원을 이장단 계좌로 입금했다. 송금을 하고 나니, 1월에 이장으로 활동하며 받은 돈은 6만 원이었다.

가로등과 보안등
 
이장회의서류에 첨부된 가로등 안전관리 및 누전차단기 점검 요령
 이장회의서류에 첨부된 가로등 안전관리 및 누전차단기 점검 요령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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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6만 원이 있든 600만 원이 있든 나는 이장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월 19일에 있었던 이장 회의에서는 마을의 가로등과 보안등의 안전을 확인하고 누전 차단기를 점검해서 가로등 점검부를 작성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가로등은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에 설치하고 보안등은 작은 도로나 골목길에 배치한다. 그리고 가로등은 8m 정도의 높이에서 빛을 밝히고 보안등은 5m 높이에서 작은 길을 비춘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나 포함될 만한 내용이지만, 이장이 안 됐다면 평생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집 근처의 보안등만 살폈지, 동네에 가로등이 몇 개나 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아예 관심도 없던 나였다. 따지고 보면 시골에서는 가로등과 보안등이 대단히 중요한 시설물이다. 도시와 달리 농촌의 밤은 완벽하고 절대적인 어둠이 지배하니까···.
  
보안등 번호와 누전 차단기
 보안등 번호와 누전 차단기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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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나 트럭이 없는 어르신들은 장날이 되면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내려간다. 2일과 7일에 오일장이 서니까 한 달에 6번 정도 어르신들이 읍으로 외출하는 셈이다. 농사짓는 어르신들에게 장날은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저기 멀리 서상면에 사는 친구들도 장날이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면 시장통의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앞에다 두고 쉴 새 없이 막걸리 잔을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는 기본이다. 거나하게 취한 70대의 노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려면 비틀거리며 대략 1리(400m)를 걸어야 한다. 만약 어둠은 깔렸는데 가로등이 고장 났다면, 10리가 아니고 1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날 수도 있다.

우리 마을의 가로등과 보안등 개수는 모두 합쳐서 23개였다. 이장 회의 서류에서 설명한 대로 누전 차단기를 점검했는데, 다행히 고장 난 것은 없었다. 4968번 보안등의 누전 차단기를 확인하며 밤에 불이 제대로 켜지는지 한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뭐하노, 노 이장!"

합천댁이었다. 얼마 전에 농로 포장과 관련해서 합천댁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터라 얼굴을 마주하는 게 편하지는 않았다.

"아, 네, 아줌마. 보안등 점검하고 있어요."
"아이고야, 마치맞게(알맞게) 잘됐뿟네. 요 위에 보믄 우리 밭 앞에 큼직한 거울이 하나 필요하다꼬. 전에 박 이장한테 그마이 야기를 해뿟는데도, 이노무 새끼가 내 앞에서는 네네 캐노코 면사무소에는 한 번도 야기를 안 했다 카더라꼬."


"반사경을 설치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겠죠, 아줌마."
"무신 소리고, 노 이장. 하도 답답해가꼬 내가 면사무소 총무계꺼정 찾아갔다 아이가. 저 밭 앞에 길이 커부(곡선)가 지가꼬 위에서 내리오는 차가 내 네발이(농업용 사륜 오토바이)를 때리박아 뿔라 카이카네, 거울을 쫌 맨들라 달라 안 캤나. 그라이까네 담당 공무원 고 양반이 그리 해준다 카더라꼬. 그란데 아직도 깜깜무소식인 기라."

  
굽은 길에 설치된 반사경
 굽은 길에 설치된 반사경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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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점검을 나온 것이지, 반사경 설치는 이번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합천댁은 막무가내로 내 손을 꽉 잡고 기어코 문제의 그 밭으로 끌고 갔다. 밭의 초입까지 다다른 산모퉁이 때문에 길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반사경이 꼭 필요하다는 합천댁의 말은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아줌마, 여기 보안등도 필요한 거 같은데요."
"고거는 됐다 마. 보안등이 있어뿌믄 밤새도록 빛이 있어가꼬 밭 작물들이 잠을 못 자뿌거든. 소싯쩍에 소평댁 밭 앞에 가로등이 생깃뿟는데, 농사를 배릿뿟다(망쳤다) 아이가. 여다(여기에다) 그노무 거울만 심어주믄 농로 일은 내가 마 다 이자뿌께(잊어버릴게)."


합천댁이 농로 일을 잊어버리든 말든 나는 수첩에다 반사경에 관한 내용을 적었다. 이런 종류의 시설물들을 설치하자고 건의하는 것도 과연 이장의 업무에 속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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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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