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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조톤>의 유일한 오브제로 사용된 냉장고는 무심코 여닫는 물건에서 착안했다. 빙하가 녹는다는 사실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면서 일상 속에 있는 냉장고도 무관심하지 않은 것에서 착안했다.
 <28조톤>의 유일한 오브제로 사용된 냉장고는 무심코 여닫는 물건에서 착안했다. 빙하가 녹는다는 사실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면서 일상 속에 있는 냉장고도 무관심하지 않은 것에서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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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금자리는 뭘까요?"

6~7미터 정도의 높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길게 뻗은 기둥(이것은 서커스에서 사용되는 도구인 '차이니스폴'이라 부른다)의 끝자락에 한 남자가 앉아있다. 그가 응시하는 장면과 암전된 무대를 번갈아 바라보는 사이에 막이 오른다.

공연을 제작한 단체(초록소)가 서커스의 대표적인 창작공간에서 교육받았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기 때문에 무용에 서커스가 결합됐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나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생각보다 몸동작에 집중한 오리지널 무용을 관람했다.  
 
무대 위에 덩그러니 하얀 냉장고가 놓여있다. 일곱 명의 무용수가 리듬을 타며 등장한다. 알수 없는 효과음이 분위기를 유도한다. 무리에서 한 명이 도태된다.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냉장고의 문도 열렸다 닫힌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낙하하는 물방울 소리마저 들린다. 비스듬하게 설치된 냉장고를 걸어 올라가지만 이내 미끄러진다. 떨어지는 이를 남자가 막아선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하나둘씩 무너진다. 째깍 거리는 초시계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암시하듯 간격이 더욱 짧아진다. 

막이 오르자 무용수와 냉장고만 등장한다. ASMR처럼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마음에 안정을 찾아주는 잔잔한 음악만 귓가를 맴돈다. 만약 공연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들어섰다면, 관객이 상상해야 하는 주파수는 상상 이상으로 넓을지 모른다. 차라리 공연장보다는 현대미술을 보러온 갤러리에 들어선 느낌이 맞겠다.

연출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 작품의 화룡정점은 각자가 생각한 느낌에서 완결된다. 우리는 이를 위해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오래간만에 최소의 오브제와 출연자만으로 완성된 무용에 오롯이 빠져든 시간이다. 

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에 선정된 <28조톤>(1월15~1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무용의 본질을 강조했다. 소문난 식당에 가면 조미료를 쓰지 않더라도 신선한 재료만으로 정성을 다한 음식을 볼 수 있다. 마치 그런 공연이랄까. 과한 수식어가 필요 없고, 무용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몇 명의 무용수와 냉장고, 그리고 조형물이 무대를 채울 뿐이다. 공연장에 잔잔한 음악이 깔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들 뿐이다. 

제목인 28조톤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녹은 빙하, 빙붕을 포함한 얼음의 총량'이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던져온 정성택 연출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예술은 삶의 희망'이라는 모토 아래 끊임 없이 환경을 고민해왔던 '초록소'의 신작이다. 이것은 "예술가는 희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역할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관성을 지켜온 정 연출가의 전작들에 대한 연장선이라 설명했다.  
 
<28조톤>의 후반부는 녹은 빙하로 인해 인간의 집도 결국엔 지붕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긴다는 설정을 했다. 환경의 파괴는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28조톤>의 후반부는 녹은 빙하로 인해 인간의 집도 결국엔 지붕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긴다는 설정을 했다. 환경의 파괴는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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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 있는 펭귄의 보금자리가 빙하인데, 우리의 보금자리는 뭘까요?"

빙하와 집의 연관성을 표현한 <28조톤>의 정성택 연출가는 이렇게 물었다. 펭귄의 보금자리가 빙하라면, 인간의 보금자리는 집이란다. 만약 지금의 속도로 빙하가 계속 녹으면, 조만간 우리도 기후난민이 되지 않겠냐 되묻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일상과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현대인을 정처 없이 떠도는 빙하의 파편에 비유했다. 일곱 대의 냉장고를 시각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빙하가 녹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그로 인해 지붕만 남겨버린 집은 극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그동안 무의식과 무관심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자신을 마주하며 미래의 기후난민을 떠올렸다. 지난 14일, 공연을 마치고 정 연출가로부터 <28조톤>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빙하가 녹고 있는 걸 풍경처럼 풀고 싶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날인 14일 드레스리허설을 마치고 초록소의 정성택 연출가로부터 <28조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날인 14일 드레스리허설을 마치고 초록소의 정성택 연출가로부터 <28조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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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냉장고'가 부각된 전반부와 '집'을 형상화한 후반부로 구분된다. 
"그렇다. 처음에는 후반부에 '집'이라는 형상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연습을 하면서 점차 발전했다. 후반부에 보는 모습은 집의 지붕이라고 보면 된다. 네모의 집은 수면 아래 잠겨있고,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가정 하에서. 이것은 마치 거대한 빙산의 일각만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냉장고는 왜 선택했나? 프레온가스가 분출되는 환경오염과 관련이 있는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깊게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은 아예 안했다. 그린란드의 빙하를 무대로 가져올 수 없으니까. (웃음) 일상의 빙하가 뭘까 생각했을 때, 냉장고를 떠올렸다. 예를 들면, 우리는 기후에 대해서 무의식적이고 무관심하다. 관심이 있더라도 여기에 대해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밤낮으로 냉장고의 문을 여닫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의도적으로 여닫는 것도 있지만, 막 열고 뭐 없으면 닫고 이런 식이다. 이런 행동이 기후를 대하는 자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무대와 객석 사이에 차이니스폴은 왜 설치했는가?
"차이니스폴과 같이 서커스 구조물은 대부분 많은 기술과 기예를 보여주겠다는 전제 하에 설치한다. 그런데 공연장에서는 빙산의 높이가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면, 냉장고를 아무리 쌓아도 3층밖에 안되고, 구조물도 기껏해야 3미터 밖에 안된다. 그래서 더 높은 빙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이니스폴은 공연의 처음과 마지막에만 나오는데, 빙산의 높이도 보여주면서 현대인을 상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난민이 발생한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기후변화로 낭떠러지까지 내몰린 현대인을 상징한 것이다. 갈데 없고 마지막 지점에 몰린 느낌이다. 마치 얼음 한 조각이 남았는데 그 위에 펭귄이 서 있는 것이다." 

- 무용수 외에 다른 퍼포머가 참여했다고 들었다. 
"순수 무용이 전공인 여섯 명의 무용수와 서커스를 전공한 (차이니스폴에 올라간) 한 명의 퍼포머가 함께 만든 공연이다."  

- 서커스가 현대무용에 어떻게 도움이 됐는가?
"현대무용에 도움이 됐다기보다 다른 관점으로 봐라봐야 한다. 무용수들은 이런 작업을 처음해봤다. 저도 연극으로 시작해 무대에서 작업을 해왔지만, 거리예술과 서커스의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무대에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무용수의 움직임에 대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거리예술과 서커스의 장르적 특성을 무대에 적용해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지점은 상충되는 것이지 일방향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라고 볼 순 없다." 

- 직접적으로 드러낸 다른 무용과 다르게 이 작품은 최소의 오브제를 활용해 공연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관객이 상상해야 하는 부분이 큰 것 같다. 
"공연을 보고 있는 이 시점에도 빙하가 계속 녹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다. 우리가 단순히 사랑을 표현할 때도 많은 방식이 있듯이 빙하가 '녹는' 것도 'melt'도 있고 'break'가 있다. 빙하가 녹는 사실을 때로는 냉장고로, 때로는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이 우리 공연을 보고 '빙하가 계속 녹고 있지. 우리가 일상을 변화해야 한다'라는 것을 느껴주면 고마울 뿐이다."

-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의 화면이 단순한 느낌이 들었다.  
"무용 공연에 설명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연출을 한 이유는 시각적인 요소가 강했던 전작들과 연관 있다. 현대미술처럼 효과를 냈다. 공연예술이라면 퍼포먼스가 많아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반면, 나는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고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음악도 화려하진 않지만 앰비언트(ambient, 반복적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멜로디 구조를 부각한 일렉트로닉 음악)적인 것을 사용했다. 마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을 풍경처럼 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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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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