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CHS의 단독 공연 < 00 : ZERO-ZERO >

밴드 CHS의 단독 공연 < 00 : ZERO-ZERO > ⓒ 플립드코인뮤직

 
얼마 전, 지금까지 갔던 공연의 티켓을 모아 정리하는 '티켓 북'을 장만했다. 팬데믹 이전의 나는 최소 매달 한 번씩은 대중 가수나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갔던 퀸(Queen)의 내한 공연 이후 1년 반 동안 빈칸은 채워지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거의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1년 가을이다. 확진자 수는 역대 최다인 3,273명을 돌파했지만, 분위기는 예전처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국민 1차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어선 지금, 치명률과 위중증률 중심의 방역 체계 전환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확진자 수를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의 현상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 역시 모인 것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그 동안 멈춰 있었던 것들의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코로나 시국에 여러 관객이 공연장에 모이는 것은 위험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대중음악 공연장 발 감염자는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위드 라이브'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리고 현재, 전국의 작은 공연장들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이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다. 체온 체크와 QR 인증은 물론, 좌석 간 거리두기 역시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지난 9월 23일, 서울시 용산구의 인공섬인 노들섬에서 밴드 CHS의 단독 공연 <00 : ZERO-ZERO >이 열렸다. CHS는 포스트록 밴드 아폴로 18 출신의 기타리스트 최현석이 결성한 밴드다. CHS는 2019년 첫 정규 앨범 < 정글 사우나 > 이후 '여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밴드'라는 평가를 받아온 밴드이기도 하다. 이 6인조 밴드의 면면은 화려하다. '뉴트로' 열풍과 함께 스타가 된 키보디스트 박문치, 퍼커션 연주자 송진호 등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 밴드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면 'Shower'와 'Last Sunset', '서울몽'을 들어보시라.

CHS는 데뷔 후 자신들의 음악을 '트로피컬 싸이키델릭 그루브'라고 설명한다. 여름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채, 일렁이는 질감을 강조한다. 밴드의 지향점은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소울과 펑크(Funk)의 그루브, 싸이키델릭 음악의 질감, 그리고 포스트록의 강렬한 잔상마저 느껴졌다.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더니, 밤 해변의 밀물 소리와 함께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를 시각화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밴드의 리더 최현석은 관객들에게 '편하게 들어달라'고 했다. 그의 설명처럼 CHS의 음악은 분명히 '칠링(Chilling,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하기에 안성맞춤인, 이완의 음악이었다.

CHS의 음악은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퍼커션 연주가 부각되면서, 춤추기에 안성맞춤인 댄스 음악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박문치의 현란한 키보드를 들으면서,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향수 역시 떠올릴 수 있었다. 공연의 후반을 장식한 곡 'Shower'는 해방감을 폭발시키는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 빛깔로 반짝이는 조명 역시 공연에 대한 몰입을 키웠다. 이것은 라이브 공연만의 현장성이 만들 수 있는 감각의 확장일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춤을 추게 만드는 음악을 앉아서 지켜보아야만 했다는 것. 그러나 관객들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박수를 치고, 이들의 연주에 화답했다.

이번 공연은 팬데믹이 닥치기 직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작업한 6곡을 담은 앨범 < 엔젤 빌라 >의 발매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개최되었다. 발리 해변의 목가적 풍경을 그리는 음악을 듣고 왔지만, 여전히 세상은 팬데믹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을 곱씹으면서 막연한 희망을 함께 품어본다. 그것은 '우리는 상실의 터널을 벗어나, 이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조금씩 되찾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팬데믹 시대에 공연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CHS 인디밴드 라이브 공연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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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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